재은이가 문을 열자마자 소리쳤다.
“선생님, 이 책 흥미진진했어요. 한 번에 다 읽었어요. 선생님 책 참 잘 골랐네요! 혹시 선생님도 읽어봤어요?”
수업 도서가 재밌을 때면 하는 말 3종 세트가 모두 나왔다. ‘한 호흡에 읽었다, 선생님이 책을 잘 골랐다, 근데 선생님도 읽어봤느냐?’는 말이다.
들을 때마다 신선한 말, 선생님도 과연 수업 도서를 읽는지에 대한 의문 섞인 질문에는 웃음으로 화답하고, 책을 잘 골랐다는 칭찬에는 ‘고맙다’고 답하고, 재밌다는 말에는 “재밌었다니 다행이네!”라는 말로 답한다.
수업 도서를 정하며 어린이들이 대체로 재밌다고 말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는 대략 알고 있기에 예상은 하고 있지만 ‘맞아, 맞아. 이 책 참 재밌지?’라고 내가 주체가 되어 너무 흥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늘 그렇지만 그중에도 ‘책이 재밌지 않은 어린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어린이들이 재밌어하는 책이라는 이유로 내가 먼저 “책 재밌지?”라고 물으면 그렇지 못했던 어린이는 생각을 숨기기 쉽다.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늘 솔직하게 말하는 어린이는 “아뇨, 재미없어요. 다시는 안 읽고 싶어요.”라고 마음을 그대로 또박또박 말하겠지만 문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어린이다.
자신에게는 별로였던 책이 라온 독서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재밌다,’ 는 분위기로 흘러가면 분위기에 압도되기 쉽다. 나의 생각과 다른 분위기에 몸을 담고 있으면 생각도 닫힌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배제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재난 상황을 다룬 책을 수업하는 날, 예상대로 책이 흥미진진했다는 말을 쏟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민후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오늘 책 좋았던 사람?”하며 손을 들라는 말은 모둠원 모두가 외향적이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숨기지 않을 때 가능한 말이다. 민후 모둠은 민후를 포함해 다소 의견 표현이 부족한 어린이가 속해 있었기에 비밀 쪽지에 물었다.
책읽기 여부부터 재미도까지 묻는 쪽지에 민후는 ‘그냥 그랬다.’란에 체크했다. 난이도를 묻는 질문에는 ‘어렵지는 않았다.’라고 했고, 그 아래에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어렵지는 않았고 완독도 했지만 민후에게는 ‘그냥 그런 책’이었다는 것을 파악한 뒤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하다보면 ‘그냥 그랬던 이유’도 ‘재밌던 이유’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에 일부러 묻지는 않았다.
늘 책에 쌓여 살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은 애써 마련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사는 직업, 오래전 어느 날인가는 문득 의도적 읽기의 필요를 느껴 온라인을 열심히 검색한 끝에 어느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모임명과 모임장 닉네임에서만도 지식인들 모임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클럽, 게시판을 둘러보다 주말에 신촌에서 독서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참석’댓글을 달고 날이 오길 기다려 길을 나섰다.
밤새 눈이 펑펑 내려 발이 푹 빠지는 길을 헤치고 헤쳐 힘들게 도착한 스터디룸, 10여명이 모인 그 곳에는 일요일이었음에도 정장 차림의 참석자들도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친한 듯 서먹한 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둘러앉아 있었다. 차 한 잔씩 앞에 둔 그들을 보고 눈치껏 차를 주문해 와서 그들 틈에 살며시 앉아 간단한 소개를 했다.
가방 안에 있던 두꺼운 고전을 꺼내들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모임장의 ‘최애 도서’인 듯 한 그 책에 대한 이야기가 찻잔의 김이 피어오르듯 공간을 채웠다. 그 책이 왜 자신의 인생책인지 소개하는 모임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지속될수록 이 공간에서 과연 그 책에 대한 반론을 펼칠 수가 있을지 염려한 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만 했다.
나는 굳이 반론을 펼치고 싶을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 누구도 그 분위기에서는 책에 대해 평가할 수도, 논리에 대해 반론할 수도 없는 듯 보였다. 독서모임에서 생각이 나와는 다른 다수에 의해 묘한 압박을 당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분명 더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두가 좋다고 하니 그래야 할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느새 마무리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질퍽해진 시커먼 눈을 밟으면서 조금씩 더 무거워졌다. 충만함까지 기대하진 않았으나 서늘함 또한 예상하지는 않았는데 마음은 약간 서늘해졌던 것 같다. 분명 훈훈한 듯 한 그 자리에 배제당한 존재가, 배제당한 생각이 있다는 걸 3시간 내내 느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면서 민후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무서움이 싫은 민후에게는 재난 후의 변해가는 삭막한 상황을 다룬 책의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모습은 여린 민후에게는 인정하기 싫은 요소였고,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했고 일어날 수도 있는 그 책 속의 모습은 상상하기 싫은 일이었기에 민후에게는 스토리의 재미를 떠나 책이 별로였던 것이다.
수업을 하는 동안 책의 재미도와 내용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평등하게 전개되었고, 민후는 ‘재난 사태를 표현한 시커먼 어두운 표지부터가 싫었다.는 말로 최종 마무리를 지었다.
다수의 분위기로 인해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오해를 갖고 있는 어린이 독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책 엄청 재밌대!’,‘옆집 개똥이가 푹 빠져 읽은 대박책이래!’와 같이, 책을 건네는 어른이 무심코 할지도 모르는 말을 들었던 것일까? ‘책을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을 밥 먹은 횟수만큼 들었던 것일까? 즐겁게 읽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근심하는 어른의 표정을 보았던 것일까?
지금도 많은 어린이 독자들과 한때 어린이 독자였던 어른들은 온 힘을 다해 줄거리를 겨우 겨우 써 낸 독후감 말미에 영혼 없이 ‘재미있었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펜을 들어 내가 직접 써 내려가는 종이 위에서 나라는 존재와 나의 생각은 사라지고 없다. 책 앞에서, 종이 위에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독자’는 고유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모두가 칭송하는 세기의 고전일지라도 그 독자에게 와 닿지 않는 책이라면 지금은 만나지 않아도 좋을 책이다. 남들이 좋다고 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 읽으면 될 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책일지라도, 지금 나에게 읽히지 않는 책일지라도 그 책을 쓰기 위해 어쩌면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었을지도 모를 작가의 진심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책이 나에게 별로라고 할지라도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는 믿음을 주어 계속 읽도록 돕는 것이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책이 네 마음에 쏙 들어와 웃어줄 수도 있다는, 책의 너그러운 속성도 알려주는 것이다.
책 앞에서 솔직히 드러내지 못한 자기모습이 쌓여갈수록 독서 상처가 생긴다. 책 앞에서 자꾸 솔직해지지 못하면 자신있게 책과 마주할 수 없다. 책이 재미없다는 마음이 죄책감으로 변질될 때 어린이들은 건강한 독자로 자라지 못한다. 책이 계속 삶 옆에 친구처럼 자리하려면 책에 대한 경외심도, 두려움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문을 열자마자 책이 재밌었다며 이야기를 쏟는 재은이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이다. 분위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눈빛도 계속 마주할 것이다. 그럴 땐 지금 하듯 한마디만 하려 한다.
“선생님, 책이 재미없어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