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문명이 도달한 상태를 알아보는 것만으로, 정말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어. 우린 큰 노력 없이, 당연히 옳지 않은 사실들을 분간할 힘을 얻을 수 있지. 더 공부해 보면, 우리가 어디까지 나아갔고 어디부터 모호하게 막혀있는지도 알 수 있게 돼.
우리가 도달한 지금은, 조금 거대한 정체기야. 우린 과학의 힘으로 많은 사실을 분별할 수 있었지만, 과학 이외의 것에는 크게 일관된 원칙을 가려내진 못했거든. 사람들은 이걸 ‘사상’이나 ‘가치’라고 불러.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의 이름이지.
문제는 우리 생각보다 그것들 사이에 우위를 매길 수 없는 지점이 너무 많다는 거였어. 그래서 우린 그 모든 것을, 상대성이라는 도구로 일단 묶어놓을 수밖에 없었지. 바로, 네 생각도 내 생각도, 정답일 수 있다는 주장이야.
더 들어봐. 인간의 수많은 시도와 그 시도의 조합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세상의 진실과 그 모습이 우리에게 같은 발언권을 주게 된 거야. 내게 헛소리일 수 있는 상대방의 말도, 내 맘에 드는 의견과 같은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누구의 어떤 말이 세상의 진실일지, 우린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가 동등하게 검토되는 단계에 도달한 거야.
물론 순수한 의미로, 아직은 모든 게 논란거리인 단계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논의가 끝났다고 생각해. 우리가 당연한 도덕으로 생각해서, 불법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지.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나 ‘참정권은 천부적으로, 성별이나 인종, 계층에 상관없이 주어진다.’라는, 법치 명제들이지.
지금이야 이런 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조금만 역사를 공부해 보면, 이 모든 게 너무나 긴 시간 동안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인류의 가장 값진 성과란 걸 알 수 있어. 역사가 기록되기 한참 이전의 시간 동안, 인류가 동족의 목숨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까지의 과정부터, 타인종과 노동자, 여성에 대한 정치적 폭력을 인지시키고 개혁하는 고난의 연속은, 배움으로는 전부 알기 힘든 지혜 중 하나야.
그런 과정을 논의라고 퉁치는 거 같아 조심스럽지만, 치열한 투쟁 끝에 다수가 동의하는 기본적인 정의들이, 항상 세워지고 교체되었다고 봐. 그중엔 90% 이상 결론을 찾은 지혜들이 있지.
아무튼, 이 짧은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그런 몇 가지만 제외한, 모든 생각할 수 있는 주제들을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끌어들이는 게 가능한 선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우린 잠깐의 대화에도 많은 언쟁을 할 수 있을 만큼 진화했고, 그 모든 복잡한 분석을 일단 깡그리 정리해 보면서, 자연스레 세상을 알아갈 힌트들을 얻어내고 있다는 말이지. 이런 작업을 수천 년간 지속해 온 게, 지금의 문명 세상인 거야.
‘그러니, 부디 퇴보만은 하지 않기를. 다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않고, 핑계의 도구로 삼는 상대주의를 지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