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명제엔, 소소하게 덧붙일 수 있는 요소가 정말 많은 거 같아. 내 생각에, 각자가 가지는 ‘꿈’의 비용도 그런 부분이야.
학창 시절에, 조금이라도 만만한 선생에게 대거리를 해대는 내가 있었어. 어느 날은 선량한 수학 선생님과 이런 얘기를 했지.
“여러분 수학이 싫을 수 있지만, 참고 견뎌야 할 때도 있어요.”
다른 친구가
“하지만 전 축구가 좋은 걸요.”
“그게 수학을 안 할 이유가 되진 않아요. 조금만이라도 흥미를 가져볼 수 없을까요?”
난 갑자기,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진 않잖아요.”
갑자기 모두가 조용해졌지. 아니, 그땐 전혀 눈치 못 챘어. 이제 와서 100% 그랬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분명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랑, 영어를 좋아하는 친구는 다르지만 같아야 해요. 하지만 선생님은, 둘에게 전혀 다른 조언을 하잖아요. 그럼, 두 개가 똑같이 중요하진 않은 거죠?”
축구론 돈을 못 벌 거란 말 정도는 삼켜서 다행이야. 선생님은 이미, 돌려줄 말이 없다는 표정이었거든. 난 정말 못난 놈이었어.
하지만 난 여전히, 꿈의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어. 이건 상당히 불평등한 분야고, 그 차이를 피할 수 없다고 말이야.
‘꿈’은 그 자체로,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어. 어떤 정형화된 분야만을 생각해도, 시대별로 해당 분야에 어떤 가치를 두고 있느냐가 너무나 상이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꿈’은 서로, 비용적인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
게다가 개인주의가 가속하는 세상이라면, ‘꿈’이 비정형화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꿈’ 간의 비용적인 상이함이 더욱 커질 거라고 생각해. 시대별로 골프 선수, 성직자, 은둔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조금만 알아봐도 너무나 다르겠지.
이건 단순히, ‘꿈’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돈의 문제는 아니야. ‘꿈’의 달성과 인생의 ‘행복’을 연결할 수도 있고, 얼마나 ‘꿈’에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주제지. 개인이 원하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선, 서로 판이한 기준을 가진 분야 속에서 별도의 전략을 세워야 하고, 골프 선수와 은둔 작가의 최종 목적에 따라, 필요한 꿈의 비용이 역전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이 이상 더 얘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단순한 진리지만, 누구나 이 문제를 한 번쯤은 고려해야만,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인간은 결국 사회적인 동물이니, 정의되어 있는 기준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자신이 원했던 꿈의 비용이 생각보다 크다면, 빠르게 선회의 길을 찾아야 하고, 때론 특정 분야에서 명확한 비용의 하락(투자 가치가 상승하는 것도 같은 거지)이 이뤄지고 있다면, 꿈의 기준을 개조하는 것도 가능해야 하지.
게다가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파악하는 동시에,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최소치가 필수적인지도 알아둬야 해. 이쯤 이 주제를 생각하고 있자면, 얼마나 많은 불평등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더 나아가면, 그 비용으로 구성된 판이란, 누군가의 노력을 탈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란 것을 알게 되겠지. 내가 원하는 것이 자신을 좀먹고 있는 현실도 알게 될 거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느끼는 요즘이야. 적어도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비용의 측면에서 너무나 자유롭지. 물론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만 말이야. 적어도 자기만족하는 삶 중에서, 가장 저렴한 종류의 ‘꿈’이라고 여기고 있어. 자기만족이 없다면, 어떤 꿈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