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131인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진정으로 자신이 동경하는 세계관과 살아가는 건, 예상대로 쉬운 일이 아니야. 전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만족하는 인간상에 도달하는 문제니까. 내가 내린 해답은 ‘적정한 선’에 도달하는 거고, 그 방법으로 ‘겸손한 캐릭터 선택’을 얘기해볼까 해.
난 최근까지도 동경할 캐릭터를 선택에 큰 애로사항을 겪고 있었어. 늘 마음 한구석엔 쿨하고 멋진 캐릭터처럼 살아가고 싶어 했고, 부족한 나를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좀먹히고 있었지. 난 그런 증상이 심한 편이라 극단적인 예시가 되었지만, 누구나 본인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나 포지션쯤은 있다고 생각해.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본인의 심리가 어느 정도까지 무너지는지 정도만 공감해도 충분하다는 얘기야.
그런 무너짐이나 좀먹힘 자체는 개인의 성장에 도움을 주지만, 기본 틀이 얼마나 이상적인가는 완전히 다른 얘기지. 난 아직 정물화의 명암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점토로 완벽한 구체 만들기를 요구받는 문제일 수도 있고, 내 천성이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인물상에 동경을 가지는 문제일 수도 있어.
내 예시는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시작되는 얘기지. 모르는 분들에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루피’라는 해적이 ‘해적왕’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여정을 다루는, 여행기이자 모험 만화야. 난 이 만화의 상당한 팬이라서, <원피스>가 어떤 작품이며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추후에 충분히 설명할 거 같아. 오늘은 그저, <원피스>라는 작품이 이른바 ‘소년 만화’라는 장르의 대표주자이고, 덕분에 상당히 황당무계한 세계관의 작품이다 정도로 시작하면 충분해.
이 세계관은 ‘해적’은 자유롭고 ‘해군’은 규정된 정의의 집행관이라는 전제로 성립하고 있지. 흔히 ‘해적’은 인간의 진취적이고 무모한 ‘낭만’을 대표하는 존재고, ‘해군’을 필두로 한 ‘정부’는 그 방해자라는 포지션을 놓치지 않고 있어. 오늘 이 전제를 깊이 파고들진 않을 거고, 이 전제 자체가 상당히 현실과 동떨어진. ‘멋들어진’ 세계를 형성하는 요소로서, 이 만화의 ‘특수한 매력’과 ‘만화다운 억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난 이런 ‘특수한 매력’과 ‘만화다운 억지’의 낌새를 방향제처럼 잊게 하고, 이야기 자체에 몰두하게 하는 장치가 ‘만화’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가장 보편적인 장치는 ‘매력적인 캐릭터’지. 캐릭터는 ‘만화’라는 세계에서, 독자가 ‘롤플레잉’의 일환으로 세계관에 ‘직접’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친근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야.
물론 <원피스>에도 여러 캐릭터가 있고, 오늘은 그 중에서 ‘조로’와 ‘우솝’에게 집중하려 해. ‘조로’는 내가 20여년을 잘못 동경한 캐릭터 중 하나야. <원피스>에서 그의 포지션은 각별한데, ‘이상적인 만화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당신이 <원피스>를 잘 알던 모르던, 내 말이 무슨 의민지 파악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 ‘조로’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고, ‘세계 최강의 검사’라는 험난한 꿈을 향해 확실하게 나아가는 존재니까. 그의 검술인 ‘삼도류’는 정말 비현실적인 전투방식이기도 하지. 그는 주인공 ‘루피’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으로서, 자유와 낭만 속에 숨 쉬는 인물이야. 내가 전편에서 얘기한, ‘쿨하고 멋진 인물’에 속하는 부류이기도 하지.
난 ‘조로’가 ‘밀짚모자 해적단’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 그건 사건이나 상황을 가장 냉철하게 바라보고, 지금 해적단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거야. 선장인 ‘루피’가 중요한 분기점에서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려할 때, 제동을 거는 건 언제나 ‘조로’의 역할이었지.
<원피스>의 작가인, 오다 에이치로 선생이 ‘조로’라는 인물을 루피의 첫 동료로 등장시키고, 쭉 ‘부선장’으로서 이런 포지션을 부여한 데엔 거대한 이유가 있어. 그것은 이 이상적인 세계의 ‘해적단’에 최소한의 조직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는 거야. 일견 너무나 멋지고 자유로우며, 악한 무리와 투쟁하는 ‘해적단’에게 가장 부족한 피스를 채워주는 역할 말이지.
한 마디로 어떤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든, 최소한의 현실성을 챙겨야 한다는 거야. 자유와 우정 속에 다른 인물이 흐물해지는 걸 막고, 이들이 하나의 ‘조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결코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 이 <원피스>라는 세계관을 완성해 주고 있다는 거지.(아주 깔끔하게 마감하는 형태로 말이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조로’가 내게 끼친 영향은, 이 글의 ‘전편’을 보고 왔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거야. 난 언제나 ‘조로’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 그는 ‘현실적’인 동시에 ‘의리’있고, 또한 ‘자유롭고’ ‘의로운’ 인물이니, 안 좋아하는 게 이상할 정도지.
바로 이 점이, 내가 바라온 인간상의 거대한 오류였어. 물론 현실에도 간간이 ‘조로’처럼 멋있는 사람이 있지만, 난 ‘조로’처럼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조로’라는 인물이 이야기의 구성을 탄탄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는 거야!
이것이 무언가를 동경할 때에 가장 주의해야하는 사항이야. 동경의 대상이 허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당신이 받아들인 플롯이 얼마나 객관적인지 알아내는 것이란, 정말로 어려운 작업이거든. 허구인지의 여부와 상관없다고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도 누군가가 동경의 시선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의 플롯(스토리 라인이나 정해진 흐름)이 개입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야. 동경은 어떠한 계기로 일어나는 거고, 계기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박혀버린 그 인식이 거의 언제나 객관성 자체를 흐리게 하는 법이지.
내가 ‘조로’처럼 이른바 ‘쿨한’ 인물에 대해 30년간 가졌던 동경의 모순을 진정으로 알게된 건 지극히 최근의 일이지. 아마 가상과 현실을 막론하고 100여명의 인물에 대해 그런 동경을 품고 있었는데도, 이제야 그런 사고의 문제점을 인지한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그건 최근에 6개월의 오랜 휴식을 끝내고, 다시 노동하는 삶으로 돌아오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지. 난 스스로 노동을 견디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걸 인정하고, 적게 벌더라도 적게 일하는 알바처를 찾았어. 주 6일 하루 6시간만 일하는 치킨집인데, 하루 6시간만 빡! 집중해서 움직이는 게 참으로 맘에 들었지. 바쁜 시간대에 하는 일이라,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일을 착착해가는 것도 성격에 잘 들어맞았어.
물론 새로 일하는 곳에서도 여러 고난을 겪는 걸 피할 수는 없어. 난 6개월간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져서, 6시간의 노동마저 왜 하고 있는 건지 절망하고 있었지. 객관적으로 못난 사고방식이란 걸 아는데, 난 아직도 ‘힘들다 쉬고 싶다 놀고 싶다 죽고 싶다 차라리 남은 돈으로 글이나 쓰고 끝내고 싶다’등의 헛소리가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걸 막아낼 재간을 익히지 못한 놈이지…….
그래도 조금 성장했다면, 그런 ‘마음의 소리’가 업무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적어도 업무 중엔 그런 소리를 off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으려 했다는 거야. 그렇게 작품 활동에만 쓸모 있는 내 인식의 모순을 더듬다보니, ‘조로’같은 캐릭터나 인물에서 시작하는, 내 일그러진 ‘이상적인 인간상’에서 이 사념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걸 발견한 거지.
솔직히 좀 의외의 결과였지만 냉정하게 표현하면, 내가 궁시렁대는 세상에 대한 불만족이란, 내가 ‘조로’같은 멋진 인물이라면 얻어냈을 거 같은 ‘자유’나 ‘항변’의 내용일 뿐이었어. 내가 멋진 인물이거나 세상에 진정한 정의가 있다면, 내가 궁시렁대는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 거라고 믿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거지.
그건 정말 치욕적인 발견이었어. 이렇게나 뻔한 자신의 오만을 이제야 발견하고, 후회가 치민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난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경외하는 모든 객체를 모독하고 있었으니까……. 현실과 이상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나도 손쉽게 쿨한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니…….
난 ‘이상으로 여기는 인간상’을 다시 설정할 필요를 느꼈어. 그 빈자리는 내 현실과 알맞아야 하고,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이어야 했지. 굳이 ‘조로’라는 인물을 깊게 설명한 이유는, 내가 찾아낸 해결책에 ‘우솝’이라는 인물이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야.
‘우솝’은 ‘조로’처럼 ‘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으로, 저격수를 담당하는 인물이야. 그의 이름인 ‘우솝’은 거짓말을 뜻하는 일본어 うそ(우소)에서 왔는데, 이름처럼 허풍과 거짓말을 특기로 하는 인물이지. 그는 동화의 주인공 ‘피노키오’처럼 기다란 코를 가졌는데, 이건 의도적으로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를 캐릭터에 부여하는 장치야. 게다가 그의 배경 설정은 서양의 동화인 <양치기 소년>에서 따온 것인데, 매일 아침 “해적이 나타났다!”고 소리치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인물이었어.
이건 해적인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어린 ‘우솝’을 버리고 모험을 떠난 것과 연결되어 있는데, ‘우솝’은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그런 허풍을 시작했고,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마음의 허전함과 모험에 대한 동경을 채우기 위해(어머니는 아버지를 나쁘게 말한 적이 없었나 봐), 계속 그 거짓말을 이어갔지. 끝내는 마을을 향한 <검은 고양이 해적단>의 오랜 음모를 발견하고, 진짜로 나타난 해적을 알리기 위해 ‘우솝’이 마을을 허무하게 뛰어다니는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잘 뽑아냈지. 이래서 고전은 위대하다니까~~.
각설하고, 그의 거짓말은 <원피스>의 세계관에 알맞게, 판타지적 낭만과 연결되어 있어. 그가 마을의 아이들과 흠모하는 여인에게 해대는 허풍은, 구전으로 전설이나 민담을 전하는 이야기꾼의 그것과 유사하지. 난 그의 거대 금붕어의 배설물, 소인족과 거인의 존재, 8000명의 부하 등의 거짓말이 작중에서 실제로 실현되는 걸 보면서, 작가가 ‘우솝’이라는 캐릭터에 특수한 낭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물론 앞의 설명처럼, ‘우솝’이라는 인물도 ‘조로’만큼이나 특수하고 이상적인 설정이 붙어있는 인물이지만, 내게 ‘이상적 인간상’의 기준을 ‘조로’에서 ‘우솝’으로 옮기는 건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어. 비단 두 캐릭터의 외형 격차에서 오는 차이만이 아니라, ‘우솝’은 독자가 훨씬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고안한 부분이 많거든.
대표적인 건, ‘우솝’이 초월적인 힘을 뽐내는 강자들 속에서도 일관적으로 빈약한 전투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는 거지. 위험한 상황에서 언제나, 솔직하게 두려움을 표현하는 점이 극의 과도한 긴장감을 억제해 주고, 때로는 꼴사나운 근성이나 엽기적인 언변으로 적을 제압하는 인물이지. 한 마디로 ‘우솝’은 독자와 가장 닮아있는 인물로서, <원피스>에서 뿜어내는 ‘낭만 자체’에 일말의 현실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거야.
이런 측면을 보면, ‘우솝’은 ‘조로’와는 정반대의 포지션을 가진 인물이지. 분명 두 인물은 <원피스> 세계관에서 현실적인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지만, 지향하는 방향이 명확히 다르기 때문이야. ‘조로’는 비현실적인 세계가 현실에서 크게 엇나가는 것을 막아내고 있고, ‘우솝’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도 현실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두 인물이 모두 멋지고 매력적인 인간상인 건 분명하지만, 두 인물이 수행하는 역할은 명백하게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있지.
여기까지 정말 먼 길을 돌아왔네. 요점은 적어도 업무를 보는 시점에서의 나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이 크게 변화할 필요를 느꼈다는 거야. 기존의 자존심(조로)은 버리고, ‘우솝’처럼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고, 정론이나 의로움보단 거짓됨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한 마디로 일하는 시간의 ‘나’는 이전까지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처음엔 ‘난 일하는 기계다.’나, ‘자유를 위한 7시간의 희생이다.’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훨씬 짧은 표어가 필요하다고 느꼈지. 그야, 표어를 끝내기 전에 다른 생각이 몰려오는 걸 어찌해! 한 박자 안에 각인되는 강력한 표어가 필요했고, 내 경우에 ‘우솝’이 가장 적절한 인간상이었어.
‘우솝’의 효과는 굉장했지. 난 단 두 어절로 힘겨운 노동을 견디는 힘을 얻을 수 있었어. 난 결코 ‘조로’처럼 멋들어지고, 세상에 나만의 룰을 들이밀 수 있는 인간은 아니야. 하지만 ‘우솝’처럼 나약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현실과 타협하며, ‘거짓’의 이중성으로 다른 나를 연기하면서도 세상의 모순을 발견해 나갈 수 있지.
오히려 계속 ‘조로’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는 것은, 내가 당면한 문제를 무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허식에 불과해. 그런 인물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으론 어떤 방법론도 만들어낼 수 없으니, 겉모습이나 태도를 모방하는 허무함에서 끝날 뿐인 거야. 물론 ‘우솝’이라는 해법은 내 생업에 관련한 거의 모든 부조리를 ‘모른 척’하는 나약함에 불과하지만, 아무렴 어때? 그 돈으로 나머지 8시간 정도는 ‘조로’와 가까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걸! ‘자유’의 대가치고는 매우 매우 저렴하다는 걸, 알 사람은 알 거야.
이 해법이 ‘나’라는 개인에게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 사실 상당히 낙관적이고 극단적인 예시지. 난 평생을 동경하거나 부러운 ‘캐릭터’를 의식하며 살아온 인간이니까. 다만 ‘캐릭터’ 선정 기준을 조금 더 자신의 필요나 현실에 가깝게 했기 때문에, ‘이상적인 인간상 설정’이 훨씬 유용해졌을 뿐이지, 이것은 결코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해법이 될 순 없을 거야. 적어도 과학적인 추론 과정을 거친다면 말이야.
난 인간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을 설정하는 것이나, 그 설정한 인간상을 ‘조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유용한 해법이라는 주장을 펼치려고 해. 이제 마지막 후편에서 그 내용을 다룰 예정이지. 부디 기대해 주길 바라.
(‘136. 내가 바란 인간상 – 후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