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요 며칠은 참 정신없었던 거 같아.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다음 그리고 다음을 맞이하고 있으니까. 이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번 했지. 언제나 끝이란 거의 행방은 모호해지고, 언제나 다음을 맞이할 뿐이라는 거 말이야.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게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닌 거 같아. 실제로 ‘끝’이라는 관념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를 의미하니까. 아직 내 해석이 완전하지 않으니, 지금 ‘익스트림한 삶’이란 무엇인지, 더 생각해 보려고.
귀찮은 걸 가장 싫어하는 우리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이지만, 그래도 산다는 건 익스트림한 게 가장 좋은 거 같아. 항상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는 거 말이야.
물론 우리에게 그건, 육체적인 걸 의미하진 않아. 우리랑 가장 거리가 먼 성실함이잖아. 물론 우리도 가끔 작심삼일로 운동을 하게 되면, 익숙하진 않아서 잘 표현은 하지 못하겠는, 이른바 육체적 충실감을 느낄 때가 있지만, 우리에겐 거의 평생 이벤트적인 체험으로만 존재할 거야…….
그럼, 익스트림한 게 뭘까? 언제나 그렇듯이, 애매모한 직관에 불과한 거 같아. 굳이 표현해 보자면, 정신없이 사는 거? 아냐, 부족해. 분명 정신없이 사는데, 스스로 착실해지는 느낌. 이게 좀 더 정확한 거 같아. 마치 육체에 이론적으로 충실하기 위해선 근육을 스스로 파괴해 재구성해야 하는 것처럼, 정신도 정신없이 밀가루처럼 반죽을 해버려서, 다시 오븐에 구워보는 나날들을 체험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힘들어도, 힘든 게 좋아서 더 하는 거. 평소엔, 참 변태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했어. 지친 건 지친 거고, 충전이 필요한 건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걸 한동안 무시하고, 다음 일어날 일을 기대하게 되는 일상이라는 게 있어. 예전엔 전혀 믿지 않았던 개념이지. 적어도 난, 내가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도,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처럼 대단한 놈이란 걸 알게 됐어. 아니, 나나 그들이나 다를 거 하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열정적이고 대단했던 시절이, 돌이켜보면 있었더라고.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죄다 흑역사지만, 대학시절엔 언제나 그렇게 다녔어. 처음엔 그냥 단순한 생각이었지.
‘사회를 봐. 네가 하고 싶은 것들, 나중엔 하려야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바로 지금인 건, 너무나 자명해.’
이 모든 흑역사의 원료가, 또한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우연적인 각오라는 건, 참 웃긴 일이지. 난 정말 미친척하고, 다르게 살아보려 했어. 귀찮은 일들도 찾아서 하고, 모호한 감정을 사랑으로 만들어보려 했지. 타인과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관계를 쌓아보려 했어. 심지어 남들과 어떤 형태로든 팀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믿어보기도 했지. 물론 조별과제라는 현실 때문에 가장 먼저 무너진 목표였지만. 아무튼 난 진리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옳은 건 도대체 뭔지, 결론을 내려 보려 필사적으로 공부하기도 했어. 내 나약하고 나태한 정신으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만 골라서 해봤던, 아름다운 시기야~.
물론 이뤄낸 건 하나도 없어. 그리고 사실, 그렇게 끝날 거란 걸 알고 있었어. 난 이런 거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난 그런 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난 훨씬 자기만족에만 사는 놈이니까.
너무 자기 비하라고? 글쎄? 난 결국, 겉으로 각별히 친한척하는 관계를 수 십 개 더 만들어냈을 뿐이었어. 이젠 스스로 경멸스러워서, 아무 연락도 못할 관계들 말이야. 게다가 난, 귀찮은 일을 찾아서 하느라, 정의감 넘치는 나를 연기했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나를 만들어서, 남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던 거지.
다 열거하자면 아마 끝이 없을 거야. 난 감히, 내가 남에게 지시를 내릴 위치에 앉을 만큼 훌륭한지를 테스트했어. 박쥐처럼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모두랑 친해질 수 있다고 믿었지. 심지어 나도 아름다운 이성과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서, 없는 감정으로 만든 관계를 애지중지했어. 멍청하게도, 남과의 공동 작업에 진심으로 열심히 임한 적도 있지. 책임질 각오는 조금도 없으면서, 중요한 일들을 해보겠다고 나서기만 했다고.
결론적으로 이 익스트림한 뻘짓이 내게, 하나만은 확실히 보장해 줬어. 난 다시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세상과 사회를 배웠어. 얼마나 껄끄럽고 구차한 인간관계가 사회를 꽉 채우고 있는 건지, 너무 잘 알게 된 거지. 적어도 배운다는 점에선, 뻘짓하지 않았던 거야.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이 말도 안 되게 단순하고도 복잡한 세상에서, 제대로 된 무언가를 하나라도 얻고 싶다면, 익스트림하게 뻘짓들을 늘어놓고 살아야 한다는 거야. 생존이라는 가장 거대한 실감을 잃은 우리에게 남은, 가장 확실한 실감 중에 하나지.
아무리 정신없고 힘 빠져도, 아무 일없이 편안하게 있는 것보단, 일에 파묻히는 게 몇 배는 나은 일인 거야. 노동가치론은 이런 의미의 말인 거겠지? 뭐가 되었든, 사람은 일을 해야만 자기를 실현하는 법인 거야. 지금 보니, ‘일’을 업무적인 영역으로 볼 게 아니라, 어떤 의미로든 어떠한 행동에 임하는 ‘액션’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일’이나 ‘액션’이란 건, 다 익스트림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