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처음 공개되고, 거의 4개월간 벼르고 있던 글을 이제야 쓰게 되었네. 난 참 게으르고 기회를 쉬이 놓치는 놈이야. 하지만 이런 상당한 뒷북을 감수해서라도, 오랫동안 K팝 시장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만을 터트릴 계기를 완전히 놓치고 싶진 않더라고. 난 또다시 지극히 불편한 얘기를 시작할 참이야.
<케•데•헌>이 처음 성행하기 시작한 시기에 이미 이 글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생각은 끝나있었어. 아마도 내가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또 터지고 있는 거고,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도 그러했지. 하지만 이 글을 써야하는 내게, ‘굳이 이 영화를 봐야할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나의 비호감은 상당했어. 세상에 그래도 ‘감상문’을 쓰려 하는데, 안 볼 꾀를 쓴다는 게 말이 되니? ㅎㅎ…….
그래도 아직 최소한의 양심은 유지하고 있어서, ‘넷플릭스’로 시간을 내며 조금씩 <케•데•헌>을 봐갈 수 있었지. 다행히도 이 영화를 전부 본 지금은, 내가 이 분야에 가지고 있는 혐오와 편견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고, 이 주제에 대한 나의 우려와 문제의식은 더 확고하게 할 수 있었지.
그만큼 <케•데•헌>이 내게 종합적으론 큰 득이 되었다는 얘기야. 우선 영화 자체만을 놓고 얘기할 필요가 있겠지. 내가 <케•데•헌>에서 가장 크게 느낀 강점은 단연코 ‘음악’이야. 다른 좋은 영화처럼 <케•데•헌>을 여러 번 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영화에 나오는 ‘음악’은 흠잡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좋았어. 몇 번 ‘유튜브’뮤직에서 음원을 찾아 듣고, ‘넷플릭스’에 <케•데•헌 싱어롱>이 떠서, 음악이 나오는 부분만 보기도 했으니까.
가사와 내용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물론 ‘음악’ 자체보단 평이하지만, 개인적으론 좋은 ‘음악’에 같이 실리는 ‘메시지’로 시너지를 내었다 정도로 평가하고 있지. (물론 K팝인데 가사의 태반이 영어라는 단점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 글의 다른 부분으로 넘기는 게 좋을 거 같네. 관련해선 할 얘기가 많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할 부분은 이정도가 전부야. 당신이 만약 ‘K팝’과 ‘한류’에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는 것이 유쾌한 경험은 아닐 거란 걸 확신하니, 여기가 마지막 경고문이라고 여겨주길 바라. 결론적으로 <케•데•헌>은 빼앗기는 ‘한류’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어버렸거든.
내가 K팝에 대해서 가진 부정적인 생각은 ‘외모지상주의’나 ‘성차별’적 이미지와도 연관되어 있지만, 이 주제는 다른 주제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거고, 순전히 ‘상업’적, ‘국익’적인 영역에서 K팝과 그에 따르는 한류의 문제점을 짚어볼 생각이야.
K팝은 단연코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업이야. 나라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수많은 외화를 벌어주는 ‘산업’이지. 내가 기억하는 K팝의 전 지구적인 도약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시작되었고, 추후에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같은 아이돌그룹을 필두로 많은 그룹의 앨범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소비되고 있다는 거로 알고 있어.
K팝 시장의 정체나 그것이 어떤 역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이 사업이 우리 대한민국에 가지는 중요도는 거시경제학적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의 규모야. 한때 한국의 ‘게임 산업’에 비교되며 홀대받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있지.
그런 위대한 성공에 매사 부정적인 나도 리스펙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거 수정했고, 이 산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우리에게 득이 되는지를 철학적으로 생각하며, 하나의 인지구조를 재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했지. 마치 다른 분야의 공부에서 새로운 지식을 위해 머리를 깨는 것처럼 말이야! 놀랍게도 이 분야도 내가 정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공부’의 일환이었다고!
그 ‘공부’가 내린 답은 정말 명쾌한 거였어. 우린 K팝과 그에 따르는 한류를 온전히 활용할 전략이나 역량, 철학,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이것에 대한 우리의 ‘정신’은 텅 비어있는 공동과도 같고, 그것이 창출하는 가치를 ‘만족’과 ‘국위선양’으로 승화하는 방법밖에 모르고 있어.
근거 없는 헛소리로 들릴 이야기란 건 알아. 이 글을 읽는 99.99%의 독자가 동의하지 않을 내용이지. 하지만 당신이 K팝이 이뤄놓은 대단한 기록을 ‘결과’로만 판단하고 있다면,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게 도움이 될 거야. 당신이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의 대단함을 그 콘텐츠가 얼마나 방대하게 소비되었는지로 판단하고 있다면, 그 ‘대단함’의 정체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그것들이 세계인의 주목을 끌 수 있었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음악’은 단연코 가장 원초적이고 모호한 예술의 영역이고, 그것이 듣는 이에게 정확하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과학적으로 완벽한 모델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 하지만 비슷한 예시를 모아서 분석하는 것으로, 어떠한 음악이 그 시대를 호령했는지 설명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 국제무대를 겨냥하는 K팝은 아직 서양세계에 만연해 있는 동양(혹은 그들에게 이국적인 ‘한국’의 문화)에의 신비와 수려함, 젊은 세대의 스타일에 크게 기대고 있는 분야야. 남녀를 불문하고 젊고 아름다운 ‘동양’의 미인을 수집하고, 그들의 퍼포먼스와 ‘연예력’을 끌어올려서 좋은 ‘공연’과 ‘이미지’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지.
그런 의미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매우 이례적인 동시에, 그 자체로 ‘싸이’의 오리지널이라는 특징을 가진 사례야. 이 글에서 다루는 주제와는 동떨어져 있어서 간략하게 살펴보면, <강남스타일>의 퍼포먼스는 강렬하고 단순하며, 모두가 따라가고 싶은 그것의 유쾌함이 <유튜브>라는 끝없는 성장에 굶주린 거대 미디어와 완벽한 시너지를 이뤘다는 점이지. 인물, 콘텐츠, 장(場)이 같은 시기 같은 표적으로 만났다는 거야.
<강남스타일> 이후, 이 주제에 관련해서 나의 이목을 끈 다음 타자는 단연 ‘방탄소년단’이었지. 이 그룹은 전전문단에서 얘기한, 이상적인 ‘한국형 아이돌’의 설계에 맞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발전하는 시도’였어. 내가 온전히 그들에 감화된 적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서술하는 것은 상당히 난해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색다른 종류의 ‘선한 영향력’이었지.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본인의 활동에 완전한 열의를 쏟고 있었고, 다른 맴버를 가족처럼 아끼는 공동체였으며, 팬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전하는 집단이었으니까. ‘러브 앤 피스’라는 표어가 생각나는 대목이네.
여러 인원이 공연 퍼포먼스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가무’의 전통을 생각하면,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의 예시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전자는 미형의 추구나 기예를 퍼포먼스로 승화하는 것에 자유롭고, 후자는 그 목적의식이 특정한 목(目)자가 아닌, 모든 관찰자와 기예, 그리고 모든 구성원 자체에 향하고 있어. 두 사례 모두, 인간의 ‘열정’과 ‘추상적 에너지’를 어떻게, 어디까지 승화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지.
이런 주제에 대해서 더 깊이 얘기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지만 이번엔 뒤로 미룰게. 내게 K팝의 현황과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거든. 바로 ‘방탄소년단’의 입대라는 사건이었지.
처음 이 주제가 논란이 되었을 때, 난 왜 그 난리를 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몇몇 ‘방탄소년단’ 팬의 과한 언급이나 그에 대응하는 반대파의 리액션에 놀란 게 아니라, 기업들이 돈을 벌 생각이 없나? 당연히 군 면제를 받아야하는 게 아닌가? 정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 해도, 다른 방향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터인데?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지.
누군가는 그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원해서 군복무를 마쳤다고 하겠지. 절대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장에서의 언급으로 ‘자발성’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대. 이에 대해 이 이상 말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들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거야. 그 막대한 외화벌이의 기회를 왜 사서 놓치려는 거야? 정말로 ‘한류’와 ‘K팝’을 자랑스러워하는 게 맞아? 아이돌 그룹이 가장 잘 활동할 수 있을 때 기회를 빼앗는 건, 무슨 발상이야?
<케•데•헌>이 등장했을 때, 난 그때 느꼈던 의문과 혐오가 다시 고개를 드는 걸 느꼈어. 이건 내 생각대로, 우리가 ‘K팝’을 잘 점유하지 못하고 있고, 이윽고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신호탄 중 하나였지.
본격적으로 <케•데•헌>의 사례로 넘어가기 전에, <케•데•헌>처럼 ‘K팝’의 타이틀을 전면적으로 빼앗긴 선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 이것을 통해 이 글이 비판하고 싶은 틀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야. 그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KDA’라는 ‘가상의 다국적 K팝 걸그룹’에 대한 사례지.
처음 ‘KDA’라는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의 확장을 보았을 때가 생각 나. 뭔가 싸한 불안감 말이야. 때는 ‘강남스타일’ 이후,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K팝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어가는 2018년이었지.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듯이, ‘KDA’라는 확장 세계관 K팝 걸그룹을 발표했어.
물론 K팝을 기반으로 이런 호의를 보여주는 건 감사한 일이고, 이 그룹이 한국에서 개최했던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을 기념한다는 점은 더할 나위 없지. 한국이 K팝에 대한 상업적 권리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니까. 맞아, 나는 우리가 ‘K팝’의 종주국으로서 돈을 벌 무수한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는 얘기를 할 참이야.
‘KDA’의 사례를 더 자세히 살펴볼게. 이 그룹은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내, 네 명의 미인 캐릭터가 맴버야. 그중 한 명인 ‘아리’가 한국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구미호 요괴)로, 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지. 당연히 그룹의 전체적인 스타일링이나 앨범, 뮤직비디오의 구성도 K팝의 그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나머지 3명의 맴버의 설정상 국적이 미국이라는 점이었지. 난 좀 의아했어. 첫 앨범의 뮤직비디오에서 한국어가 꽤나 들렸기에 적어도 2명의 맴버가 한국인인 설정이라고 예상했거든. 찾아보니 ‘아칼리’라는 캐릭터가 일본계(닌자 캐릭터인 점이 반영된 듯 해) 미국인인 설정이고, 담당보컬이 K팝 아이돌인 ‘소연’이더라고.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외국의 자본을 필두로 ‘K팝’이 소화되면서, 당연히 크고 작은 ‘현지화’와 ‘오리지널’의 줄다리기가 발생한다는 점이야. <리그 오브 레전드>는 ‘K팝’이라는 확실한 시장을 겨냥했고, 가상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그들만의 ‘K팝’을 구축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공했다는 거지. 이 작업에선 ‘K팝’스러운 요소가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종주국인 서양권 유저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있어. 이 영역에서의 ‘K팝’은 한국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K팝’과 <리그 오브 레전드>를 소비할 의향이 있는 집단의 시장을 고려해서 짜여진, 새로운 ‘돈벌이의 기회’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이제 내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가 확실히 밝혀졌네. 이 글의 다음 편에서 <케•데•헌>의 예시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