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든 사랑이야기는

혹시 사랑 사연은 다들 같다고 느껴버리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은 사랑 이야기들에 끊임없이 똑같이 반응하는 날 발견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 처음엔 ‘어? 이상하다?’였어. 실제로 그렇지. 난 우리 개개인의 구성이 정말로 한도가 없을 정도로 무작위적인 걸 알아. 그들과 내가 만들어가는 것들도 하나하나 정말 다른 것들 투성이지.


하지만 상대성은 그만한 동위성이 성립해야만 동시에 성립하는 거야. 모든 상대성은 많은 공통점을 투과한 그곳에 있지. 우리는 우리 개개인의 작위성 속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또 많은 공통점을 가지도록 ‘조화된 사회’를 위한 교육도 받게 되지.


사실 이번 계기가 아니어도 알고는 있었어. 작위적이고 천차만별일 사랑을 우린, 규격화된 것으로 찍어내려는 부분이 있다는 거 말이야. 이른바, ‘암컷과 수컷’이지. 그것은 내 주위의 거의 모든 동식물에게 들어있고, 나도 귀중한 실전을 통해, 이 개념이 거의 완벽한 실존에 가깝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배운 시절도 있었지.


하지만 난,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은 거 같아. 내가 이렇게나 삐딱하게 생각하는 주제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공감해 버리는 이유 말이야. 난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들이 멍청하다는 결론을 내버렸어.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어떤 틀을 강요받는지 알 수 없는, 환경과 이념에 놓인 것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항상 타자화한 거지. 난 그들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버릇 말이야. 한동안은 네 안에서, 그게 통했어. 하지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과 내가 많은 코드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거 같아.


그걸 알게 된 게 최근의 일이라는 거야. 어느 순간 난 예전보다 더, 거의 모든 사랑사연에 거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내게 그 사연을 빗대면서 슬퍼하고, 결국 사랑 문제는 다 비슷한 거구나 하고 느끼고 있었지. 솔직히 자존심 상했어. 난 그런 거에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고, 벗어나고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딴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어. 난 이 주제를 왜 이렇게 느끼게 된 거고, 남들은 나와 어떻게 같고, 동시에 어떻게 다르게 느끼고 있는 걸까?


안 믿어질지 모르겠지만, 내게 1순위의 생각은 이거였어. 어째서 사람들은 이렇게도 다른 사연들을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단숨에 묶어서 공감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로 묶어내서, 수 만 년이나 일괄적으로 즐기고, 억겁의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난, 내가 그 실존을 참으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음에도, 그 정체를 조금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했어.


요는, 내가 요새 사랑 사연이 모두 같은 것처럼 느낀다는 거야. 참 골 때리는 이야기인 거 같아. 1차적으로 너무나 감성적인 나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사랑을 내 인생에서 없는 것처럼 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건 걸림돌이거든. 물론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건 좋은 거지만, 나 자신의 무성애성을 선택하기로 했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수많은 예전 일들도 생각나고 그랬어. 사랑 때문에 내게 상담을 신청해 오던 사람들과, 내가 사랑 땜에 상담했던 사람들 말이야. 최근의 이 생각 때문에 겨우 알게 된 거는, 내가 사랑에 참으로 무지했다는 것과, 내 충고와 내가 그렇게나 혐오했던 ‘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있어, 동일하게 오만했다는 거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라는 곡이 생각나네.


여담이지만 문득, 다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부족함으로 사랑을 상실했다는 것을 잊기 위해, 진통제처럼 사랑에 고통받는 사연에 귀 기울이고, 아직 사랑이라는 주제가 내 마음에 실존한다는 걸 확인하는 위안인지도 모를 일이지.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구역질 날 정도로 나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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