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빼앗긴 한류 - 후편

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빼앗긴 한류 - 중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중편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파트에선 <케•데•헌>이라는 영화를 전반적으로 평가하면서, 이 영화가 ‘K’라는 수식어를 사용함에 얼마나 합당한지를 살펴볼 생각이야.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사항은, <케•데•헌>은 충분히 ‘한국적’인 콘텐츠라는 점이야. 전편과 중편에도 얘기한 사항이지만, 몇 번 더 얘기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요소지. 무슨 말이냐면, <케•데•헌>은 필연적으로 ‘한국적’인 고증을 많이 신경 쓰게끔 기획된 작품이고, 제작사가 신경 쓸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게 ‘한국적’으로 완성되어 있어. 이것은 중편에도 얘기했듯이, 영화의 청각적인 부분의 약점(?)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시행된 작업으로 보이고, 시각적인 측면에서 이 작품의 ‘한국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보단, 소소한 ‘옥에 티’를 언급하는 것이 후편의 진행에 적절할 것이라 판단했기에, 이 문단을 적게 되었어.


내가 <케•데•헌>에서 가장 아쉬웠던 ‘고증’은 한국의 요괴나 귀신에 대한 것이었어. 이 작품은 대대로 요괴를 퇴마하는 여성 그룹에 대한 이야기인데, 전반적으로 요괴나 귀신의 무리는 단순한 악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어. 이건 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작품인 부분이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야. 물론 여러 묘사에서 그런 단순한 구도를 피해 가는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 요괴 세력이 악이고 심적으로 자신의 이중성을 이겨내고 헌터 체계의 모순을 깨부순, ‘헌트릭스’의 ‘루미’라는 주인공이 선이라는 점이 대전제지.


이 부분에 대해선 할 얘기가 많기 때문에, 몇 가지 파트로 나누고 싶어. 먼저, 한반도 문화권에서의 ‘요괴’나 ‘귀신’이 어떠한지에 대한 거야. <케•데•헌>에 나오는 모든 요괴는 한국의 전통 설화나 민담에서 고증한 것으로 보여. 잘생긴 남자 요괴로 구성된 <사자보이즈>의 ‘진우’라는 캐릭터는 <장화홍련전>이나 <아랑 전설>처럼 죽은 자가 귀신으로 되살아나서 생전의 ‘한’을 풀려 하는 전통적인 서사를 따르고 있고.


하지만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묘사해야 하기 때문일까, ‘한국’의 전통 호러를 잘 살렸다고 볼 순 없겠더라고. 요괴 세력에서의 자세한 묘사는 ‘진우’라는 주연 캐릭터와, 조선의 민화인 <작호도>가 모티브인, ‘더피’와 ‘서씨’라는 조연(진우의 심부름꾼으로 나와)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전반적인 요괴 세력이 퇴마가 필요한 ‘악’으로 묘사되는 걸 피해 갈 수 없었어.


내가 끊임없이 이 부분을 아쉬워하는 이유는, 우리의 조상님들이 귀신이나 요괴를 단순한 악귀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물론 영력을 가진 이를 통해서 제령이나 퇴마, 성불을 시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전적으로 이런 존재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아. 한 가지 좋은 예시를 통해 내 의견을 보완할 필요가 있겠네.


18.PNG <귀화전도>의 일부이미지 출처: NTD코리아


이번에 사용할 예시는 조선 말기 화가인, 소치 허련 선생의 <귀화전도>라는 그림이야. 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산을 찾은 ‘채홍염’이라는 인물이 비바람에 길을 잃어서, 도깨비가 나타나 도깨비불로 길을 밝혀줘서 무사히 제사를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귀화전도>의 예시처럼, 우리가 요괴나 귀신을 단순히 악한 존재로 여겼다고 할 수 없는 설화나 전통을 더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물론 과거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이나 재앙을 요괴의 소행으로 삼는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인간과 장난을 치기 위해 씨름을 하는 도깨비의 모습이나, 도깨비방망이나 감투, 불 등을 빌려주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모습에서, 이러한 ‘오컬트’에 친밀하게 다가가는 시도가 자주 보이거든.


앞에서 <케•데•헌>의 ‘진우’라는 인물을 설명할 때도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귀신’이란 존재를 사자(死者)가 현현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는 설화가 다수 있어. <장화홍련전>이나 <아랑 전설>처럼, ‘진우’도 살아생전에 한이 되었던 행동을 원동력으로 요괴가 되었지. 귀신이나 요괴란 존재는 곧, 우리의 가까운 이웃 중 억울한 약자를 대표하기도 하고, <우렁각시>나 <뱀신랑> 설화처럼 익숙한 미물에게 오컬트적 의인화를 시도하는 장이 되기도 해.


요점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괴, 귀신의 이미지는, 당시 시대의 생활상과 인간의 ‘한’을 잘 버무리고 있는 콘텐츠이자 교보재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봐. 때로는 주의가 필요한 전염병으로 아이들을 잠재우고, 누군가의 억울한 처지에 공감하고, 미물을 하찮게 보지 않는 자세를 일깨우기도 한다는 의미야.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케•데•헌>에서의 요괴나 귀신의 묘사를 본다면, 의구심이 많이 생기더라고. 외국 기업의 영화가 한국 문화를 고증한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의 요괴, 귀신의 고증은 어떠하지? 과연 우리가 요괴나 귀신을 정의하는 ‘익숙함’, ‘정’, ‘순수함’을 잘 표현하고 있을까?


내가 내린 답은 전체 구도에선 그러하지 않지만, 미시적으론 그렇지 않은 여지를 자잘하게 남겨놓았다는 거야. 요괴, 귀신의 세력이 전체적으론 악으로 묘사되고 손쉽게 그들의 존재가 사냥, 제거당하는 모습을 다수 보여주지.(물론 디자인적 요소에선 악령들의 개성이 확실히 살아있다고 느꼈어.) 영화의 추가 시리즈에서 나올 거 같지만, 헌터와 악령의 갈등이 시작되고 전개되는 역사는 너무 단편적인 선악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아. 악령의 왕도 정말 단순한 구조를 가진 악역이라,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망치는 수준이기도 하고.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부여받은 악령들은 그러한 구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진우’의 심부름꾼인 ‘더피’와 ‘서씨’의 경우엔, 내가 앞에서 얘기했던, 요괴나 귀신을 정의하는 ‘익숙함’, ‘정’, ‘순수함’의 측면을 몰아 받은 캐릭터거든. 특히나 이 두 캐릭터는 사실상 두 세력의 갈등과 선악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처럼 묘사돼. 가장 중요한 마지막 전투에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악령의 왕과 ‘진우’가 소멸했는데도 여전히 주인공 일행의 곁에 유유자적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대사가 없는 귀여운 심부름꾼인 호랑이와 까치. 즉, 마스코트 캐릭터로서의 이점과 필요성 덕에, 우리가 요괴나 귀신을 대하는 전통성이 곁다리로 살아나는, 따지고 보면 참으로 기분이 묘~해지는 캐릭터들이네.


틈틈이 살펴봤던 ‘진우’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야. 그는 악귀 무리 중 유일하게 개인의 서사가 드러나는 조연이지. 앞에서 얘기했듯, 그는 인간 시절의 죄에 괴로워하는 악령으로, 주인공 무리인 ‘헌트릭스’를 해치우는 대가로 과거의 악몽을 잊으려 마왕과 계약한 인물이야.


그의 인간 시절의 죄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버리고, 궁궐에서 무위도식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거지. 처음에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게 아니라 외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괴로운 ‘한’을 잊어버리려 하지만, 점점 그것이 진정한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비겁함이란 걸 깨닫고, 주인공 무리를 도와주게 돼.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루미’와 깊은 공감을 하게 되고, <Free>라는 듀엣 곡을 통해 ‘루미’와 자신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성장을 이뤄내는 장면을 보여주지. (둘의 이런 행보가 전형적인 K드라마 로맨스의 구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야.)


마지막으로 ‘루미’의 예시를 살펴봐야겠네. ‘루미’는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헌트릭스’의 퇴마사이지만, 동시에 ‘반요’라는 정체성을 비밀로 간직한 인물이야. 그녀의 어머니는 헌터 집단의 전임자이고, 아버지는 악귀거든. ‘루미’는 어머니의 동료였던 ‘셀린’을 통해 헌터로서 훈련을 받았고, 자신이 반요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도록 강요받아왔지. 그녀가 반요라는 사실을 아는 건 ‘루미’와 ‘셀린’ 뿐이었고, <헌트릭스>의 다른 멤버에게 악령의 문양(악령의 몸에 타투 형식으로 자라나는 표식이야.)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모습이 <케•데•헌>의 주요 갈등을 이루고 있어.


‘루미’와 ‘진우’라는 인물을 통해 악령이든 인간이든 복잡한 사연과 심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 건 사실이야. ‘루미’가 ‘진우’의 사연을 알고, 다른 악귀도 그처럼 악의 마왕의 술수에 움직이는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악령들도 자신처럼 삶에서 갈등하는 존재인가 확인하는 장면은 짧지만 인상 깊었지. 극 중에서 연속적으로 손쉽게 썰려나가는 악귀 중 하나에게 ‘루미’가 “너도 포로야? 귀마(악령의 왕)가 강제로 시키는 거야?”라고 물어보는 장면 말이야. 그 악령은 살벌한 미소를 짓고 동료가 단칼에 처리해 버리지만, ‘루미’의 갈등을 아주 잘 표현하는 장면이지.


이처럼 ‘더피’와 ‘서씨’, ‘진우’와 ‘루미’를 통해선, 악귀가 우리와 친근하고 장난기가 있으며 인간과 같은 섬세한 감정을 지닌 영적 존재로 묘사되지만, 다른 악귀에게선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 독자들의 입장에선 내가 뭘 주장하고 싶은 건지 헷갈릴 거란 걸 잘 알아. 이 작품이 한국의 전통적 요괴나 귀신의 이미지를 이해한다는 건지 아닌지 명확하게 하지 않으니까.


내 결론은 한국적 고증을 살리는 작업을 통해 얻어걸린 것과 작품 자체가 확고하게 한국스러운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케•데•헌>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소비하는 주체가 객관적으로 누구이며, 어떤 필요가 있기에 ‘K팝’이라는 대명사가 필요했고, 어떻게 이리도 손쉽게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K’를 수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담론을 통해 ‘빌리는 이름’과 ‘주체성을 가진 철학’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시도를 이 글의 막편에서 할 생각이야. 주로 대중문화의 상업성에 대한 얘기가 되겠네. 막편도 상당히 기대되는 글쓰기가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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