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톤> :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세상

주의: 이 글은 이나가키 리이치로의 <닥터스톤>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어.


처음으로 좋은 작품을 직접 소개하고 추천해 보는 글을 써보려고 해. 내가 일본만화 덕후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추천이 될 시리즈지만, 내 삶에 소중했던 작품들을 가능한 넓은 스펙트럼으로 소개해볼 생각이야. 영화나 그림, 만화, 게임, 시, 소설, 책, 드라마 등, 소개해보고 싶은 작품이 정~말 많아서 기대가 큰 시리즈야.


먼저 <닥터스톤>이 대략 어떤 작품인지 설명하기 전에, <닥터스톤> 자체는 내가 적어둔 비장한 부제가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가볍게 보기 좋은 작품이라는 점부터 얘기하고 싶어. 부디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세상>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작품 자체에 부담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닥터스톤>은 거의 언제나 밝은 분위기로 전개되는 작품이고, 그런 유머 속에 깊은 고민과 삶의 철학을 잘 녹여낸,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작품이니까. 당신이 조금이나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거의 실망할 일이 없을 정도야.


이제 본격적으로 <닥터스톤>의 개요를 소개해 볼게. 어느 날, 미지의 광선이 온 지구를 덮어버리고, 모든 인류가 석화된 후의 세상으로 이야기가 시작 돼. ‘센쿠’라는 주인공은 과학에 정통한 일본의 고등학생으로, 모두의 석화는 우연한 재앙이 아니라, 확실한 이유와 원리가 있는 ‘과학적’현상임을 확신하고, 언젠가 석화가 풀렸을 때를 대비해 석화 후 몇 초의 시간이 지났는지 헤아리기 시작해. 석화 후에도 자신의 정신력을 강하게 붙들어두고 있던 거지.


‘센쿠’가 무려 3700여년의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어느 순간, 그의 석화가 기적적으로 풀려나고, 문명 0의 지구에서 현대의 과학지식으로 인류를 재건하는 일대기가 펼쳐지는 작품이야.


대략적인 개요에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약점은 ‘과학’이라는 장르에 상당한 신뢰와 믿음을 보인다는 점이야. 물론 자연현상의 이유와 과정, 결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문명 0의 지구에서 한 명의 뛰어난 과학자가 이뤄낼 발전 속도는 어마어마하겠지.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만화적인 연출이 필요한 세계관이라는 인상을 지우긴 힘들더라고. 작가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세계관을 보강하는 장치를 많이 덧대야 했던 거 같아. ‘원시시대에 가까운 환경에서 한 명의 과학자가 문명을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해도 그래. 현대 문명의 잔재가 3700여년 후의 세계에 어떤 거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나, ‘지식’을 무기로 삼는 현대의 인간이 정말로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만화적 허용으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어. 이는 내가 관련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재밌는 이야기(가정, 상상, 세계관)를 시작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


장황한 설명에 비해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뒤에서 설명할 ‘억지스러운 과학만능주의’적인 측면과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의 세계관의 오류’를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서야.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가볍고 밝게 진행되는 이야기’이기에, 좀 억지스러운 부분들은 만화적 허용에 적극적으로 기대는 것으로 실력 좋게 ‘넘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거든.


이와 관련해서 내가 특히 감명받은 부분은, ‘센쿠’가 극초반의 생존부터 작품의 최종장까지 ‘Manpower’라는 개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야. 이 개념은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핵심 주제인 ‘인류의 위대한 도전정신’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생존과 문명재건축에 가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에너지이며, 작가가 그저 허황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의 시작으로 작동하고 있어.


앞에서 ‘센쿠’가 석화의 순간부터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난 이 ‘Manpower’라는 개념이 사실, 여기서부터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해. 이것이 ‘만들어진 이야기’이기에 ‘센쿠’의 강인한 정신이 당연히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긴장 없이 기대할 수 있지만, 작가는 ‘우연’이라는 장치를 사용하여 그의 부활을 드라마처럼 구성하고, 거기에 ‘센쿠가 석화의 전조증상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가 ‘자신의 석화와 부활은 분명한 원인과 결과가 있는 <과학>’이라고 추론하는 장치를 더함으로써, 이 이야기를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격언으로 멋지게 시작해 낸 거거든.


이후에 ‘Manpower’라는 개념은 더욱 직접적으로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어. ‘센쿠’가 홀로 문명 0의 서바이벌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갈구했던 것은, 자신을 홀로 생존하게 할 수 있는 ‘Manpower’의 확보였고, 매일의 노력으로 여분의 ‘Manpower’를 조금씩 투자하여, 자신의 석화가 풀린 이유(원천)를 빈약하지만 과학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었어. ‘석화 해제’의 비밀을 풀어내며 인류 문명의 재건을 꿈꾸고, 어떤 인물이 어떠한 순서로 필요할 것인지 체계적으로 계획하는 데에도 ‘Manpower’라는 개념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지.


그가 홀로 6개월을 버티면서 ‘부활의 동굴’을 통해 ‘타이주’라는 방대한 지구력을 갖춘 지인을 가장 먼저 깨운 것에서, ‘Manpower’의 중요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이 ‘타이주’의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만화의 첫 에피소드가 ‘타이주’의 부활로 시작하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지. 물론 ‘센쿠’의 부활이라는 소재와 오버랩하기 위한 장치도 있지만, ‘센쿠’의 본격적인 ‘과학’의 추구 작업이 ‘타이주’의 부활을 통해 시작되는 거니까. (작품에서 ‘센쿠’에게 ‘타이주’라는 ‘Manpower’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연출이 곳곳에서 등장해. ‘타이주’의 부활 전까지 ‘센쿠’의 생활은 말 그대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아슬아슬했기 때문이야.)


‘센쿠’는 ‘타이주’의 말처럼 ‘힘쓰는 일’과 ‘생각하는 일’을 각각 도맡으면서, 한 명의 인간으로선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속도와 성과를 시작하게 돼. 작중에 정말 많은 사건과 갈등이 지나가지만, 모든 것이 ‘Manpower’의 원칙 안에서, 세상을 어떻게 어떤 순서로 재건하는지의 로드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목표이자 주제야.


이 ‘Manpower’의 원리와 작가 특유의 ‘인간찬가’의 융합이 이 작품만의 특별한 묘미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과학’을 다루는 작품 치고, 잘 생각해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이 다수 투입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에 대부분의 사소한 고증오류나 만화적 허용에 기대는 연출은 이 작품의 귀중하고 독특한 매력을 위해 꼭 필요했던 것이라고 봐.


하지만 이 작품을 전부 탐닉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들었던, 나의 몇몇 의문만은 꼭 글을 통해 남기고 싶었어. 과연 ‘과학’자체가 이데올로기인 사회를 성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과학’을 이데올로기의 범주에 넣고 시행하는 사례가 가능하거나 존재했을까?


이런 의문의 미로 속에서 난, 한 가지 확실한 정의에서 시작할 필요를 느꼈어. 그래, 적어도 ‘<닥터스톤>은 과학 자체가 이데올로기인 세상’을 꿈꾸고 있어. 그리고 사실, 이 정의에서 말하는 ‘과학’은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작가가 ‘과학’을 통해 느껴왔던, 일종의 ‘인류의 위대한 실험, 축적의 정신’이라고 칭할 수 있는 무언가야.


난 작가도 이 작품의 이러한 특성을 잘 이해했다고 보고 있어. 이는 곧, 작가는 이 특성이 이 작품의 최고의 정체성이자, 최대의 약점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지. 무슨 말이냐면, 작가는 작품 내에서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사회를 성립할 필요가 있었고, 작품의 전개를 통해, 이 체제에 대한 도전을 정면으로 상대하며 이겨내는 필연을 마주했다는 거야.


‘센쿠’가 꿈꾸는 ‘과학’(특히나 앞에서 얘기했던 ‘인류의 위대한 실험, 축적의 정신’을 지칭하는 의미의 과학)에 의한 문명의 복원은 ‘Manpower’ 그 자체의 성질 때문에 치명적인 걸림돌을 안고 가야 해. 정확하게는 ‘Manpower’의 실행자인 ‘인간’이 정치적인 존재이며,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라는 혼돈(Chaos)에서 ‘권력’을 탐할 거라는, 당연한 현상을 말하는 거야.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상태와 유사하지.)


당연히 작품에도 ‘센쿠’의 이상에 동의하지 않는 인물이 무수히 등장하고, ‘센쿠’의 무리가 이들을 포섭, 제거, 회유, 협상하는 과정이, 넘어야 하는 주요 ‘갈등’으로 승화되는 형식으로 작품이 진행돼. ‘센쿠’가 확보하는 새로운 과학이 그 자체로 ‘갈등’인 경우도 많지만, 새로운 과학이 동의하지 않는 세력을 포섭, 제거, 회유, 협상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다수 등장해. 이 두 경우의 차이를 신경 써서 작품을 본다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야.


각설하고, ‘센쿠’의 이상에 동의하지 않는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츠카사’와 ‘제노’라는 인물이 등장해. 이 둘은 작품의 초반부와 중반부의 ‘메인 빌런’으로서 등장하고, 결국 ‘센쿠’의 이상에 동조하는 협력자가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츠카사’는 일본열도에서 세 번째로 부활한 인물(지혜 > 노동력 > ‘무력’)로, 과학 기술이 없는 순수한 원시사회를 유지하고, ‘현대’라는 더러운 기득권을 철저히 배제(주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석화한 사람들의 동상을 파괴하여 살인하는 형태)하는 이상사회를 구상하는 인물이야. 자연법적인 법칙에 철저히 따르는 사회지.


‘제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첫 번째로 부활한 인물로, 기존에도 기득권층을 ‘과학’을 오용하는 어리석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인물이야. 그는 문명 0의 사회에서 ‘과학’(지식)에 의한 독재사회를 실현하는, 극 엘리트주의적 사회를 구상하지.


이 두 인물의 ‘이상’과 그 이상이 ‘센쿠’의 것과 충돌하여 포기, 감화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좀 유치하고 자기모순적인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야. 저 정도로 극단적인(바꿔 말하면 단단한 확신을 가진) 세계관을 가졌던 인물들이 ‘센쿠’와 갈등을 부딪치고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거의 전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는 건, 솔직히 좀 의아한 일이지.


물론 두 인물이 결국 ‘센쿠’의 이상에 동조하게 되는, 최소한의 인과관계와 개연성을 챙기는 전개가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작품의 최대 약점이 덮어지는 모습에서 난,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사회>의 위화감을 찾게 되었어.


그것은 흔히 우리가 일본식 스포츠 만화에서 접하게 되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마인드의 강조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것이야.(각 에피소드가 하나의 ‘뜨거운 드라마’로 완성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거든) 즉, 우리 ‘인류’는 위대한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열정’의 에너지는 눈앞의 문제를 극복하기에 충분하다는 담론 말이지. <닥터스톤>에선 이 현상을 ‘과학의 역사적 투쟁’과 엮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내가 비슷한 의문과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거야. (적어도 내가 배워온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낭만 있는 이론이나 정신보단 ‘지정학’적 원리로 좌우되었는데 말이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닥터스톤>의 작가는 작품의 이러한 약점을 장점으로 잘 승화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노력했다고 봐. ‘Manpower’의 개념을 중요시해서, ‘센쿠’에게 새로운 분야의 지식인이나 노동력이 필요할 때마다 다양한 인물을 부활/부각하는 구조를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지. 또한, 당연히 정치적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무리를 등장시키고, 그들과 경쟁하고 포섭하는 갈등구조를 메인으로 하고 있어.


하지만 이 모든 고려와 만화적인 허용이 무색해질 정도로, 이야기 자체가 낙관적으로 흐른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어. 내게는 이 ‘낙관적’인 흐름 자체가 ‘센쿠’가 추구하는 ‘과학의 이름으로 재건된 세계’와 융화되어,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세상을 희망적으로 꿈꾸는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해.


과연 ‘센쿠’가 내세우는 순수한 의미의 ‘과학’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이데올로기로써 현실적인 미래일 수 있을까? 아니, ‘순수한 의미의 과학’이나 ‘인간의 선한 영향력’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프레임일 수나 있는 걸까? 일론 머스크가 제시하는 앞으로의 과학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써 작용하는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는 걸까?


좀 급작스런 말을 해버렸지만, 이 작품이 이러한 의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져주는 것만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언급해 봤어. 어쩌면 이미 우리는 ‘과학’이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인 세상에 살고 있을 수도, 나아가는 중일 수도, 그런 실험에 뻔하게 실패하는 중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또한 작가가 <닥터스톤>의 부연 설정을 통해 이러한 상상을 더욱 현실적으로 해석하게끔 도우는 경우도 있어. 물론 의도는 <닥터스톤> 세계관 자체에 개연성을 더해주는 것들이지. 앞에서도 얘기한 ‘Manpower’의 철학에 의거해서, ‘센쿠’가 전 지구적인 우주산업 분업체계를 구상할 때, 한 무리가 단합할 수 있는 숫자의 한계치(개인이 동업자인 타인을 의미 있게 기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인원의 수)를 고려하는 장면은 꽤나 세심한 설정이라고 생각해. 하나만 더 꼽자면, ‘석화’가 죽음마저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요 인물들이 그 중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은, 작가가 인간의 본성과 그 역사를 잘 고려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지.


물론 내가 내세운,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사회’라는 주제에 전혀 관심이 없어도, <닥터스톤>은 그 자체로 상당한 명작이란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기술’이 얼마나 끈질기고 독창적인 시도를 통해서 완성되었는지 체험하기에 이만한 작품은 드물거든. 단순히 각자의 매력과 특색이 확실한, ‘귀여운’ 인물들의 서사를 감상하기에도 충분히 좋고 말이야.


내가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기대하는 변화란, 혹시나~ ‘과학’이 이데올로기인 세상을 상상하는 것에 동참할 마음이 있다면~, <닥터스톤>을 볼 마음이 있거나 이미 본 당신에게, 내 글이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야. 또 한 번 장황한 헛소리를 들어줘서 고마워. 항상 감사해야지 암!


QMFDrDVrsLjVgslAblebcQ.jpg 이미지 출처: 닥터 스톤 |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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