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원 1표

생각해 보면, 대학교 시절엔 세상의 무시무시한 진실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은 거 같아. 난 은근히 대학을 열심히 다녔던 거지. 그중엔 ‘1원 1표’라는 개념이 있어.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곧 권력이니,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가 정확한 표현이라는 말이야.


난 삐딱한 지식일수록 마음이 동하는 녀석인 거 같아. 처음 이 개념을 사회학 교수님에게 들었을 때, 난 뭔가 번쩍이는 느낌을 받았어. ‘아차!’하는 느낌도 받았고, ‘역시나!’하는 느낌도 받았지. 하지만 당시엔, 무시무시하단 느낌은 못 받았던 거 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법칙이더라고.


난 언제나 지식을 좋아하는 아이였어. ‘1인 1표’라는 지식을 학교에서 처음 들었을 때도,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엄밀하게 ‘국민’이라는 개념이란 걸 요즘 깨닫고 있지) 하나의 권리를 얻는다는 아이디어는, 내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낳아줬어. 아무리 우리가 1, 2등을 가리고 있어도, 우린 결국 같은 1표라고 말이야. 아무리 무능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존중될 필요가 있고, 어떤 것도 절대적인 위치에 설 수 없어. 우리가 잔혹하게 활용하는 힘의 원리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우린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 우린 이미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점점, 공허한 지식이 되어갔어. 세상은 분명, 귀하고 천한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돌아갔고, 전쟁과 빈곤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인걸. 모두에게 정말로 1표가 있다면, 그 한 표를 약속뿐인 종잇조각으로 만드는, 추악한 방식도 분명 존재하고 있어. 난 그것을 찾아보는 여행을 시작했지. 도움이 되는 책이나 영상도 찾고, 약자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점점, 그 잔혹한 방식이 어떤 건지 감이 오고 있었지. 하지만 전혀 완전하지 않았어. 한때 난, 그걸 인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 우리의 파괴적인 욕심이 누군가를 희생시킨다고 말이야. 나쁘지 않은 가정이지만,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는 걸 해법이라고 할 수 없어. 우린 절대 선해지는 걸 목표로 할 수 없거든. 그건 위대한 누군가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는 개념이니까. 이걸 좀 더 파고들면, 내가 종교를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다음 기회에 하자.


내가 원하는 건, 우리가 당연하게 어딘가의 전쟁이나 분쟁, 사회문제를 아침의 뉴스 정도로 받아들이는 만큼, 당연한 원인과 해법이야. 이 당연한 원인을 알 수 있으면, 역으로 당연하게, 이 원인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어. 매우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우린 이렇게 당연하게 무언가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꾸려오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것을 문화라고 부르든 트렌드라고 부르든,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정당성이 아니라, 일상과 느낌이라는 이름의 불만족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


‘1원 1표’의 법칙이 당연해지는 원인은 지극히 단순하게 찾을 수 있어. 우리가 자본으로 굴러가는 사회를 완성했기 때문이야. 이건 우리가 개발해 낸 어떤 체제보다 뛰어나고 합리적이며 도움이 되는 방식이거든. 사회의 누군가가 만들어 내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란, 어떤 가치와도 교환할 수 있는 ‘돈’을 굴리는 것에 있어. 돈의 원칙을 언제나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사회가 생산하는 가치를 최대한 활용(1차적으론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할 수 있고, 나아가 더 편리한 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는(2차적으로 새로운 가치의 생산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거야.


모두가 자신 있게 주장하진 않지만,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이야. 우린 돈이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것을 잘 알고 있지. 돈이란 것에 이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건, ‘약속’이라는 행위야. 실제로 ‘돈’이라는 종이나 금속에 그만한 가치를 교환할 수 없지만, 그렇게 교환할 수 있게 하자고 정한 ‘조약’의 효력이지.


근현대 사회에서 이 ‘조약’의 힘은, 가장 강력한 권력에서 나오는 거야. 슬슬 머리가 아프지만, 이 글의 초반부로 돌아왔을 뿐이지. ‘1인 1표’와 ‘1원 1표’를 생각하는 거 말이야. 조금은 다른 것 같은 이 두 원칙은, 동일한 권력에서 만들 수 있는 발명품이거든. 처음에 내가 이 둘을 반대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야. 여기에 우리 사회의 모순점이 있는 거니까.


‘1인 1표’가 가장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정의라면, ‘1원 1표’는 우리가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야. 아무리 허울 좋은 소리를 해도,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으면 어떤 의미도 없는 거잖아. 돈이 안 되는 것에 계속 전적으로 매달릴 수는 없고, 어떤 꿈도 ‘현실’이라고 말하는 ‘돈’에 연관되어 있어야 해. 우린 한때 1인의 1표를 거의 직거래로 거래하던 시절이 있었고,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어딘가에 표를 던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그건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행동이지.


우리가 이 둘 중 어떤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더라도, 어디까지를 ‘우리’라는 사고체계에 묶을 수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야. 우리가 국제적인 분쟁이나 세계적인 기아 문제를 볼 때의 ‘1인’은, 국가와 국력, 정세 등을 기준으로 구별하는 거지. 나와 그들은 다른 어항의 ‘1인’으로 인식될 뿐이야. 여전히 우리의 원칙은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할 수 있지. 해당 문제에 따라, 어디까지가 ‘1원’과 ‘1인’을 묶는 단위인지 파악해서, 어디에 ‘1표’라는 행위(권력)를 얹으면 되는지만 판단하면 돼.


이런 사고에 도달하면, 거대 양당 체제 민주국가의 정치적 이슈도 재밌어져. 누군가의 품행이 들춰지면, 우린 손쉽게 ‘1인’을 4가지 분류 정도로 나눠버릴 수 있지. 여전히 우리의 원칙은 잘 작동하고 있어. 표도 돈도 사람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말이야.


유튜브 사회도 정말 흥미로운 사례지. 조회수나 구독은 ‘1인’과 ‘1표’를 완벽하게 구성할 수 있는 요소고, 억 규모의 자본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 어쩌면 현실보다 ‘1인’의 범위를 넓거나 좁게 구성할 수 있고, ‘자본’의 원리를 더 엄격하게 관찰할 수 있는 표본일 거야.


그래. 난 이 원칙들이 내 상상보다 아득히 무서운 물건이란 걸 알아냈어. 지극히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어딘가 찜찜해지는 ‘돈은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이라는 규칙 말이야.

keyword
이전 10화1 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