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는 1대 1까지야. 단 한 가지까지만 집중할 수 있지. 이건 장단점이 확실한 성향이야. 누구보다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거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다는 거니까.
얼핏 들으면, 자신의 분야에 최고점을 찍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 베토벤이나 백석 선생이나 부처 같은 사람들 말이야. 미리 말해둘게. 전혀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한심한 누군가의 답 없는 성향에 대해 말하는 거지.
내가 말하는 1대 1이 뭔지 설명해 볼게. 가장 대표적으로, 난 사람을 한 번에 1명까지만 상대할 수 있다는 거야. 누구와 약속을 잡든 1명이 한계고, 최대한 사람이 몰리지 않는 장소에서 만나고자 하지. 난 상당히 폐쇄적이고 고립된 사람이야. 무리 지어 놀러 다니는 건 상상도 못 할 정도거든. 심지어 사람이 무리 지어 행동하는 거의 모든 것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어. 좋은 말로 하면 단체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거고,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심각한 착각에 빠져있는 사회 부적응자야.
내가 이러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 알아. 하나는 내가 좀 모자란 놈이기 때문이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신경 못 쓰겠으니까, 복잡하고 귀찮은 사회생활이란 게 그저 싫어지는 거야. 자신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배타적인 핑계를 덧대어서, 자신을 보호하는 거지. ‘난 남들과 다르다.’는 명제를 비겁하게 활용하는 방법이야.
또 하나는 내가 인간을 저평가하기 때문이야. 정확하게는, 사실은 남들도 나만큼 한심한 존재라고, 믿고 싶은 거지. 인간이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나만의 철학을 구성하는 거야. 나만 이렇게 무능하고 특이한 게 아니란 식으로! 멍청한 인간들이 모여서 하는 짓이란, 비생산적이고 어리석은 일뿐이라고 가슴 깊은 곳에 되뇌면서, 음침한 승리감을 느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완전한 외톨이까진 아니라고 안심하는, 믿음을 구축하는 거야.
조금은 내가 말하는 1대 1에 감을 잡았을 거야. 심하게 낯을 가리고, 속으로 거의 모든 사람을 혐오하는 증상 말이야. 하지만 이건 심각한 정신적 문제인 동시에, 놀라운 이점을 내게 제공하고 있어. 1대 1 상황의 난,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거야. 객관적으로 이게 얼마나 높은 성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있어. 나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모든 순간은, 1대 1의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거야.
1대 1의 상황이란, 생각보다 세심하고 다양해. 가장 단순하게는, 누군가와 1대 1로 겨루는 모든 종목에 대한 거지. 난 무엇이든 1대 1이나 철저하게 개인전으로 진행하는 것들에 흥미를 느끼며 시작할 수 있어. 그 종목이 나에게 적합하든 아니든, 기대 이상의 만족과 공부가 될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거든. 타인이라는 변수 없이, 나를 마주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그 종목에 임하고, 대체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이며, 첫인상으로 파악한 성향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유추하고, 그 유추와 실제가 얼마나 다르면서 같은지 경험하는 건, 나에게 정말 흥미로운 일이야. 상대가 여럿이라면 절대 파악할 수 없는, 개인의 특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으니까!
모든 1대 1이나 개인전에서 성공적인 건 아니지만, 난 내가 싫어하는 종목과 좋아하는 종목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지.(심지어 분야별로 분류해서 말이야. 스포츠나 커뮤니케이션, 글 작업방식 등등) 스포츠의 예를 들어볼게. 난 관전자의 입장에서, 거의 모든 프로 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어. 그 ‘한’ 경기를 보면서 스포츠의 깊이를 이해하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건 정말 흥미로운 과정이야. 물론 그 ‘한’ 경기 속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있지만, 내가 플레이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그 경기를 시각적으로만 체험하게 되거든.
이 통제된 감각이 나에겐 딱 적절한 거야. 내겐 마치 가볍게 영화를 보듯이, 모든 스포츠를 관전할 수 있는 집중력이 있어. 물론 시각적인 것 이상이나, 심오한 걸 파악할 수 있는 안목까진 갖추기 힘들겠지. 하지만 이미 내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정보가, 버거워질락 말락 하고 있거든. 그 줄다리기는 정말 아찔하고도 가벼운 거야. 기본적으로 난, 새로운 정보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인 거지.
반면에 실제로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단식탁구뿐이야. 난 운동을 매우 귀찮아하는 사람이거든. 물론 운동이 필수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을 상대하지 않는 이상, 어떤 스포츠나 게임이 재밌거나 흥미롭기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 게다가 나는 1대 1의 원칙까지 고수하려는 변태라서,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 중 취향에 맞는 게 단식탁구뿐이더라.
단식탁구는 내 성격에 딱 맞는 취미 생활이야. 탁구는 1대 1의 정수라고 생각해. 개개인의 스킬이나 기본기, 센스, 운동능력 등등 다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을 예측하는 능력이 가장 효율적인 득점원이 되는 스포츠거든.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상대의 심리에 한 발짝만 앞서도 실력을 3단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종목이 탁구라고 생각해.
이건 탁구 특유의 탬포와 방식 덕에 발생하는 현상이지. 탁구는 구기 종목 중에서도 많은 움직임이 필요한 운동이야. 동시에 완벽하게 턴제(turn-based)로 진행되는 스포츠지. 적당히 빠른 탬포 속에서, 빠른 심리전이 오가야 성립한다는 거야. 한 번의 터치로 상대 진영에 공을 튀기는 간단한 규칙 속에 이미,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1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끌어올리는 장치가 완성된 거라고!
탁구를 처음 접했을 때, 운동에 이렇게까지 재미와 안정을 느끼긴 처음이었어. 하지만 난 그 확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탁구에 모든 걸 걸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운동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 텐데 말이야. 정말, 지금 생각하자면 왜 그랬나 싶어.
말 나온 김에 단식탁구만 좋아하는 이유도 설명하면 좋을 거 같아. 탁구를 처음 접했을 때, 난 중학교 강당이 너무나 작다는 걸 실감했어. 우린 곧 복식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했거든. 기본적인 복식 규칙을 익힐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 왜 굳이 그래야 하는 거지? 어째서 이 운동의 진정한 재미를 망치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내게 실제로 해보는 복식이란, 사회적 겉치레의 연장으로 느껴질 뿐이었어. 나도 상대도 고립된 상태에서, 진검승부를 펼치는 게 좋은데…….
물론 지금은 복식탁구도 대단한 종목이란 걸 알아. 단식탁구와는 다른 차원의 능력까지 요구하는, 심오한 종목이지. 하지만 난 첫 복식탁구의 경험을 통해, 내가 남들과 팀플레이 하는 것에, 마음 깊이 답답해한다고 느꼈어. 내가 얼마나 배타적인 사람인지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회상해 보는 시기였지. 나의 이 깐깐한 1대 1 이론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첫 탁구가 끝나고, 난 이런 생각을 했어. 아, 난 예전부터 남들과 같이 뭔가를 해본 적이 없구나. 초등학교 때는 점심시간 축구가 싫었지. 다들 축구하러 가는데, 난 가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욕만 얻어먹었으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마음대로 뛰다가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바로 비난을 받는 게 정상적인 건가? 이 게임은 못 하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 왜 팀이란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제약받아야 하는 걸까?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했지. 그래, 난 남들과 같이 있는 게 참 싫었어. 거의 언제나, 혼자 놀고 싶어 했지. 남한테 싫은 소리 듣는 게 너무 싫고, 또래는 멍청하고,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여긴 거야. 물론 남들과 재밌게 놀지 못한 건 아니지만, 혼자 있는 걸 더 선호하고, 책 읽는 걸 좋아했지. 그래, 초등학교 고학년 때엔 팀으로 하는 공작에서, 친구들과 대판 싸운 적도 있어. 생활기록부에도 그때의 내 비협조적인 태도가 적혀 있고. 웬만해서는, 그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이상한 거야. 내가 대놓고 복식 탁구를 싫어하는 태도를 취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쯤이면 내가 1대 1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설명되었다고 생각해. 나에게 1대 1을 정의하는 건, ‘나’ 자신을 파악하는 것과 다름없어. 이건 상대방이란 타인을 상대하는 ‘나’와, 나를 상대하는 ‘타인’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의 문제까지 나아가지. 이 정도로 세세하게 한 인간을 관찰하는 행동은, ‘나 자신’이라는 당사자성을 온전히 이해했을 때 가능한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에서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이란 거지. 고로, 내가 나를 고찰하는 것도 1대 1에 포함되어 있어. 내가 자기애에 취한, 똥 덩어리란 뜻이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녀석이란 거니까…….
하지만 나의 이런 확신도 요즘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어. 점점 내가 처리할 수 있는 1이 줄어드는 느낌에, 스스로 잠식당하고 있지. 예전엔 문제없이 해냈던 일들이, 점점 하기 힘들고 귀찮아지고 있거든. 내가 이 ‘1대 1’이론을 완성했을 땐, 이런 생각을 했어. 이제 난 스스로 방황하거나 시간을 낭비할 일이 없을 거라고. 내 인생의 목표를 명확하게 알았다고 말이야. ㅎㅎ
그건 정말 간단한 목표였어. 나의 1대 1에 온전히 집중하는 거 말이야. 내 한 몸 간수할 정도만 돈을 번다면, 나머지 시간은 내가 몰두하고 싶은 1대 1에 투자하는 삶이지. 내가 몰두하고 싶은 1대 1은 내 가슴이 뛰는 행동을, 나만의 룰로 실천하는 것이야. 말이 거창하지만, 그냥 이렇게 헛소리를 매일 조금씩 기록하고, 최대한 돈을 아끼고, 좋아하는 게임 2개의 고수가 되고, 가끔 새로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고, 쉬는 날엔 가족과 휴식을 취하고, 매일 유익한 책과 만화와 유튜브를 조금씩 보고, 일주일에 한 편은 영화를 보고, 아주 조금이라도 내 글이 노출될 수 있는 곳에, 글을 올려보는 삶이지.
하지만 난 전혀 이 1에 몰두하지 못했어. 이게 내가 처리할 수 있는 1의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야. 난 내 생각보다 더 탐욕스럽고 게으른 존재였고, 매일 그 정도를 갱신하고 있어. 예전엔 내 글에 맞는 삽화를 그려내는 열정까지 있었는데, 내 글을 위한 공부에 몇 달을 바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에 한 줄 글을 끄적이기도 귀찮아하고 있어. 도대체 왜? 무엇에 절망했기에?
심지어 요즘은 내가 완성한 1대 1이라는 규칙을 핑계로 삼고 있는 자신도 발견해. 오랜만에 글을 쓰다가도, 무언가가 사부작거리는 당연한 소리 따위가 신경 쓰여서, 그것조차 또 하나의 1이니, 내 1을 방해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이야. 내심 이게 어느 정도 합당하다는 식의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는 거지.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야. 왜 이렇게까지 무력감을 좋아하게 된 건지…….
그래도 이런 못난 1을 극복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어. 내 1을 부정하는 행동거지론, 홀로 설 수 없는 거니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각오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자신이 가는 길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해. 내가 만들어 낸, 1대 1이라는 이론에 스스로 먹혀버리더라도, 스스로 의문을 품는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