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재미난 얘기나 하는 사람이야. 사실, 좀 멍청한 일이지. 재미난 얘기란, 딱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참 웃기는 일들이야. 특별히 그걸 찾아볼 필요가 없는데도, 사람들이 어느새 주변을 보는 눈을 잃어버리는, 웃긴 일이 일어나지. 언제나 이상하다면, 이상한 건 이상한 게 아니니까. 이상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특별히 이상한 걸 대신 봐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이건 세상이 참 잘 짜여 있다는 증거야. 세상은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에 웃음 짓게 함으로써, 그걸 기억하게 만들고 있어. 마치 격투 게임을 하다 보면, ‘이 게임은 타격감에 집중했구나. 어? 이 게임은 그래픽에 온 힘을 쏟았네.’ 등을 알 수 있듯이, 세상도 우리가 모순에 쏟은 정성을 알아주길 바라는 거 같아.
내가 사는 이곳은, 그걸 좀 더 잘 느끼도록 만들었어. 사람들은 이제, 명확하게 이상해 보이지 않으면, 무언가를 신경 쓰지 않거든. 혼자 날아다니는 개나리 정도는 돼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요즘이야.
그래도 세상은 언제나, 가장 웃긴 장난감이었단다. 자세히 보면, 모든 게 거짓말 같지. 언제나 움직이고 변화하는 중이야. 분명 몇 가지 일관된 원리로 움직이는 거 같지만, 실상 그것을 알 길이 없어서인지, 우린 우울한 웃음을 지어야 하지. 한때는 지구가 평평한 줄 알았고, 우주의 중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 보이는 대로 믿다가, 한 방씩 크게 먹은 거야. 정말 거대한 코미디지. 한 중요한 계기가 없었다면, 우린 아직도 시간만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었을 거라고.
중요한 건, 그 모든 것들이 점점 묘하고 실감이 안 간다는 거야. 지구가 둥글고 우주의 중심이 아닌 건 알겠는데, 시간이 진짜 상대적이야? 누가 그럴싸한 말을 지어낸 거 아냐? 블랙홀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개나리가 어떻게 알아서 난다는 거야?
그런데도, 과학은 그나마 쉬운 영역이야. 우린 아직도 옆에 살아 숨 쉬는 이웃을 몰라. 블랙홀보다 더 얄궂은 수수께끼야. 어떻게 여자 친구랑은 잘 가다가도 꼭 싸우게 될까? 저 사람은 어쩌면 저렇게 싸가지 없을까? 어떻게 먹방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무엇이든 조심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불신 지옥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자신 있게 지껄일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숨 막히고 갑갑하게 서울에서 살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정치란 한순간도 안 쉬고 시끄러운 소식으로 가득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강력하게 죽일 수 있는 무기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을 수 있게 되는 걸까?
분명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만, 개나리가 알아서 나는 이유만큼 알 수 없는 것들이야. 이런 상황에서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지. 그게 세상의 정체일지도 몰라. 세상은 우리가 이상한 걸 알고, 웃거나 괴로워하며 지내길 바라는, 누군가의 고상한 취미일지도 모르는 일이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좋은 예시들이 있지. 사람들이 지구를 구하는 영화나 만화를 소비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사실, 자신들이 이미 지구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위 거리를 찾지. 지구를 구하는 주제의 미디어는, 만인의 딸 감인 셈이야.
거대한 모순이지. 그들의 소비가 그들을 말해주고 있다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지구를 구하고 싶어 하는 걸까? 그건 이미 하나의 판타지적 소재가 된지 오래야. 그들은 지구를 구하는 주제를 소비하지만, 조금도 지구를 구하는 행동에 가까워지지 않아.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든 잊고 싶어 하지. 무서운 건, 이런 미디어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거야.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도 모순은 존재하지. 평등이란 뭘까? 우린 쉽게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칠 수 있고,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 다만, 평등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 누구도 그런 상태를 본 적이 없으니까. 볼 수가 없으니까. 우린 아직 평등을 언어로만 아는 정도야.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지만, 우리는 남성, 여성이라 생각하는 존재에게 각각 기대하는 것을 정해놓고 있지. 평등이라는 구호로 남성, 여성 이외의 인간을 용납하지도 않아. 성 소수자도 여성향이나 남성향으로 분류될 뿐인 거야.
경제적인 평등도 참 어려운 문제야. 우리가 평등해야 한다면, 소득 수준도 평등해야 하는 거야? 이 문제를 3줄도 안 되는 말들로 정리하는 사람은, 제대로 사회를 본다고 할 수 없을 정도야. 우리의 소득 수준도 평등해야 한다는 사람은, 자본 사회가 ‘개인이 돈을 벌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 보장한 제도’라는 걸 몰라. 소득 수준이 평등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은, 사회를 지탱하는 현대 자본이론이 어떤 현실까지 숨길 수 있는 시스템인지 모르고 있지.
돈을 벌 권리라는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다른 영역의 평등을 침범하고 있다면, 그건 평등사회일까? 모두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분명 평등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평등이란 개념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는 모순이지.
사회적인 문제를 제거해도 마찬가지야. 지식이라는 것도 영원한 모순의 함정을 품고 있어. 지혜를 얻으면 얻을수록, 우린 점점 모르겠다는 걸 알게 되지. 지식은 모든 영역이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알면, 열을 알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하지만 열을 알면, 하나도 모르게 되더라고. 무언가를 까먹는 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의 연결 방식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게 돼. 우주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수록, 더 많이 모르는 거를 발견하게 될 거야. 평등의 범위를 넓힐수록, 목표가 있는 제도를 정립하기 힘들어지는 것도 비슷하네.
전통 동양사상은 알 수 있는 지식을 한정하거나, 교훈으로 삼으면서 정체해 버렸어. 서양의 과학은 그 세세한 정체를 알려다, 너무 많은 것들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버렸지. 우리가 사랑하는 자본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지식을 발견해 버린 거야. 전부 ‘알면 알수록 모르게 되는 진리’ 하나 때문에 발생한 일이야. 한쪽은 너무 몰라서 살아남지 못했고, 한쪽은 너무 알고 싶은 마음에 정확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단 걸, 굳이 확인해 버렸지.
하지만 난, 이것만은 잘 된 거 같아. 물론 동양의 지혜도 좋아하지만, 아무리 힘 빠지는 사실들이 우릴 둘러싸고 있어도, 우린 그 정체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 우린 더 빨리 모순에 가득 찬 세상의 정체를 알아야 해.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우리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믿으니까. 그 이후라면, 어떤 결과가 오든 후회만은 안 할 수 있을 거야. 적어도 어떻게 굴러가도 끝이라는 것이 온다는 걸 안다면, 그게 가장 현명한 일 아니겠어?
그래서 난 웃기는 모순을 발견하는 것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어. 성격상 웃기는 거랑은 거리가 멀지만, 그 과정이 내 피를 돌게 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해. 동시에 아무리 어두운 현실이라도 우린, 알아야 해. 그걸 웃음으로 소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믿어.
그래서 난 놀이를 찾아다녔어. 가장 솔직한 모순은 가장 가벼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단다. 계급사회의 필연과 웃픈 현실을 체스나 장기에서 찾을 수 있어. 인간이 남을 속이는, 가장 쉬운 길을 가고 싶어 한다는 걸, 모든 나라의 카드 게임에서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이 남을 깔보면서 드는 묘한 우월감과 만족에 중독된 상태라는 걸, 모든 나라의 풍문과 뒷담 문화에서 찾을 수 있지. 사람들이 맘껏 웃을 수 없는 현실 대신, 꾸며진 공연장에서 호쾌하게 웃고 싶어 한다는 걸, 모든 나라의 공연예술에서 찾을 수 있고. 이런 이상한 모양의 현실이기에, 예술이라는 멋진 모양틀을 발명하기도 하는 거야.
여담으로, 난 그렇게 웃기는 모순을 찾는 일이 정말 좋아. 난 언제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알아내서 공격하고 싶을 정도로, 성격이 삐뚤어져 있거든. 모순을 찾는 일도 같은 요령일 뿐이고. ^^
(중략)
발 아프게 걷다가도, 한 곡조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꼬까신을 줄게. 세상 행복한 걸 알려면, 세상 불행한 걸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걸, 조금씩 알려줄게. 때로는 푸른일 피해 올 수 있는, 도피처를 줄게. 이 선물을 받아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