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의 데이트다.
"여기야 여기!"
긴 다리로 허위허위 걸어 내려오는 그에게 나는 있는 힘껏 손을 흔든다. 펜션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나를 바라본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의 발이 모래 밭에 닿자, 나는 분주해진다. 차려놓은 식탁에 음식이 완벽한 지 다시 한 번 체크를 한다. 그가 정말 좋아하는 광어회, 싱그러운 샐러드, 그리고 이런 상차림에 빠질 수 없는 시원한 생맥주.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실루엣이 장대같이 큼직하다. 예나 지금이나 화보같은 허우대는 변한 게 없다. 성큼 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
그와 처음 바닷가를 왔던 날이 떠오른다.
벌써 몇 년 전이지. 모르겠다. 파도가 아주 가까웠고, 나는 그 차르르 소리가 신기해서 한달음에 달려갔었다. 모래밭에 생기던 발자국과 딱 내 속도만큼으로 걷던 그. 한참 파도에 발장구를 치며 놀던 내가 집채만한 파도가 가까워오는 것에 꺅, 소리를 질렀을 때 - 그는 나를 소중하게 안아들고 모래밭으로 데려왔었다. 떨어질까봐 그만해 그만해 소리를 지를법도 한데, 나는 그 단단한 팔을 느끼며 세상 어디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회탈같은 미소가 한 발 한 발 가까워온다,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도 방망이질을 친다. 좋아할까? 깜짝 놀라고 너무 좋아서 어떨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뭐가 빠졌지? 촛불? 접시?
아, 선물!
나는 화들짝 놀라 식탁보를 젖히고 쇼핑백을 꺼냈다. 몇날 며칠 고민한 끝에 결정한 선물을 깜빡하다니.
"뭐 해!"
아직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가 아른아른 묻는다.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비밀이야. 천천히 와 천천히!"
여러 후보군을 두고 고심한 끝에 손에 익을수록 멋스러운 가죽 여권 지갑을 골랐다. 우리는 해외 여행을 한 적이없다. 그는 예전에 여행을 좀 다녔었다고 했지만 나를 만난 후 해외 나가는 것을 삼갔다. 그 점이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제부터는 좀 여기저기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자고 소곤소곤 이야기할 작정이었다.
반듯하게 포장한 상자를 쓰다듬어 본다.
뭘 이런 걸 다 준비했느냐고 하겠지. 필요한 신발이나 한 켤레 더 사지, 하며 혀를 찰 걸 안다. 그래도, 그래도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매 해 돌아오지만, 돌아올 때마다 고마운, 그의 생일이니까.
"차린 게 엄청 많네!"
어느새 성큼 테라스 위로 올라온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지만, 기쁘다. 생각보다 훨씬, 기뻤다. 나는 벅찬 마음을 추스리며 케이크에 불을 붙인다.
"감동이지?"
"생각도 못했네."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은 그의 눈가가 반짝인다. 촉촉해진 눈시울을 바라보니 나까지 울컥해질 참이다. 이 소중한 시간을 눈물 바다로 만들 수 없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안겼다.
"생일 축하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