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죄와벌

by 윤성씨


“지금 가고 있어요”

네비게이션은 5분 후 도착을 알리고 있었지만 내 목소리에는 최근 몇 년간 들어본 적 없는 애절함이 묻어났다. 그 급박함이 스스로도 어색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5분만요. 제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말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었다. 눈 앞이 캄캄해진 나는 죄없는 핸들만 쥐어짰다. 평소같았으면 자신 없는 상대에 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 그럴거면 때려치라고 특단의 조치를 내리거나, 그도 아니면 주변의 뭐라도 잡아 던졌어야 한다. 하지만 도무지 어떤 기분도 들지 않았다.

마지막 신호대기 중에 - 차체에 대놓고 쏟아지는 행인들의 눈초리가 거슬렸다. 그 눈빛들이 바퀴를 아스팔트에 눌러 붙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통의 나는 부러움과 아니꼬움이 반반 섞인 그 시선을 즐겼다. 애초에 계획하고 산 차는 아니었지만, 퇴근길 넥타이부대들의 나는 언제 저런 차 타보나, 하는 표정을 볼 때면 박람회에서 봤던 남정네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고소했다. 그 날, 나는 외제차가 즐비한 그 행사장에서 차를 보러 온 건지 레이싱 걸들의 배배꼬는 몸짓을 보러 온 건지 모를 셔터들이 역겨웠었다. 살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분위기 흐리게 여자 엉덩이나 쳐다보고 있다는 게 짜증났던 기억이 난다. 가장 바글바글한 곳으로 걸어가서 대충 관리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말했었다.

“이 차. 살 수 있나요?”

“네 고객님, 이번 달에 막 출시 된 신차입니다. 요즘 여성분들게 인기가 가장..”

“지금 가져갈게요.”

남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요?”

“네. 지금요. 여기 있는 이 차로요.”

“현장에 나와있는 차는 특별 모델이라 가격도 일반 차종과 다르고..”

난감해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안 된다는 일을 되게 하는 법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결제할게요.”

하나 둘 씩 꽂히기 시작하는 눈길이 피곤했고 그래서 지갑에서 대충 아무거나 잡히는 카드를 꺼냈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그 다음부터는 늘 봐오던 대로였다. 커지는 동공, 어딘가로 달려가 누군가에게 확인을 구하는 잠깐의 시간, 고개를 숙이고, 뭔가에 사인을 하고 – 물건에 따라 절차가 더해지거나 덜해지기야 하지만 결국은, 결국 내 손에 들어오고 만다.
사인을 마치고 나는 범퍼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여자를 눈동자로 밀쳐내며 말했다.

“이제 제 차니까. 천으로 덮던지 뭐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 날과 같은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목소리고, 태도고, 방식이다. 항상 여유만만하고, 급할 일 없고,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마술봉처럼 카드를 꺼내는 것.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기분은 런닝머신 위에서나 느끼는 거지, 마놀로 블라닉 밑창을 까져가며 인도를 달릴 일이 없던 것이, 최근 몇 년간의 내 삶이었다. 밑바닥에서 지금까지, 악착같이 겨우 겨우 만들어 온.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13층을 눌렀다.
올라가는 잠깐의 시간동안 보석이 알알이 박힌 까르띠에 시계를 힐끔인다. 5시 1분. 1분이 늦었다. 1분이나 늦었다. 회사에서 누가 이랬더라면 나는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과 돈은 나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기준이었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13층. VIP 병동입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다. 회사를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에게 엄격했고, 그 만큼 주변에도 그랬다. 시골 집 마당을 떠나면서 홀로 나를 키운 엄마에게 아파트 한 채를 사드렸다.

“꼭 가야겠니?”

“엄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좀만 기다려줘 내가 모시러 올게”

“늙은이 혼자 이 넓은 데서 뭘하누.”

“요즘 세상 좋잖아. TV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해.”

쓸쓸한 눈으로 배웅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올라온 서울에서, 나는 더 악착같이 일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같은 건 없었다. 불쑥 불쑥 엄마와 뒷동산에서 쑥이며 미나리를 캐던 일, 냇가에서 다슬기를 줍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럴때면 고개를 흔들고 일 속에 나를 파묻었다. 이미 지난 일이다.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값싼 추억에 젖어있을 시간이 어딨단 말인가.
돈만 내놓으면 만사 오케이인 세상과 싸우는 것이 쉬워질 무렵, 나는 늦은 새벽 전화할 사람도, 외로운 어깨를 빌릴 남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퍼하기엔 너무 늦었기에 그럴때면 옷장을 채우거나, 거실을 채웠다. 감정을 한 번 죽이기 시작했더니 두 번 세 번 죽이기는 더 쉬웠다. 그래서 엄마가 처음 배가 아프다고 했을 때. 걱정은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별 일이야 있겠어.

서울에서 제일 큰 병원의 VIP실에 모셔두고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오려고 했다. 두 달에 한 번 이었나? 아니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언제였더라. 복도를 울리는 구두굽 소리가 더 가빠진다. 우왕좌왕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표정에서 절망이 묻어나는 게, 불안했다. 병원 복도에서 지난 주 엄마와의 통화가 울리는 것 같다.

“회장님. 병원에서 온 전화에요”

“뭔데. 급한거래?”

“그냥 어머님 전화..”

“응 엄마.”

“밥은 먹었니?”

“엄마 지금 7시야.”

“밥을 먹어야지.”

“먹었어. 엄마 나 내일 중요한 날이라서. 내일 다시 전화할게.”

아니야.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날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싶은데, 한 번 재생 버튼이 눌러진 잘못한 기억들은 줄지어 플레이 된다.

지난 추석. 직원들에게 한우 세트 하나씩 쥐여주며 고향으로 보내고 창가 책상에 다시 앉았을 때였다.

따르릉 -

“응”

“바쁘니?”

“미안해 엄마 올해도 좀 힘들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추석인데.”

“추석이 더 바빠. 엄마 내가 다시 전화할게.”

핸즈프리로 전화를 끊었었다.
또, 그 때도 내가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나처럼 울었을까, 심장이 미어졌을까.

뚜 – 통화 종료음과 똑같은 일직선의 기계음이 가득한 병실에서 나는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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