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양심의 섬

by 윤성씨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푸른 새벽이었다. 이제 막 지평선 너머 노오란 해가 고개를 내미는 참이었다. 밤사이 차게 젖은 몸을 흔들어 기지개를 펴자, 팔꿈치께에서 콜라뚜껑과 비닐봉지 두어 개가 후두둑 떨어진다. 몇몇은 물방울을 튀기며 태평양 바다로 떨어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돌고 도는 해류에 밀려 돌아 올 테니. 햇살이 해수면을 밝히기 시작하자, 언제나처럼 치마 끝자락에 긁어 모인 지난 밤의 수확물을 셈했다. 우유팩이 서른 여덟 개, 각양각색의 비닐 봉투와 까글까글한 캔들이, 백 열두 개. 그녀는 쓰레기들의 색상을 구분하여 몇몇은 왼쪽 어깨에 올리고 몇몇은 치마 아래를 장식했다. 이렇게 치장하는 데에 하루의 대부분이 흐른다.

사람들은 태평양 바다위에 떠 있는 큼직한 그녀의 형태를 쓰레기섬, 이라고 불렀다. 거북이나 갈매기, 몇몇 물고기들이 붙인 이름과는 사뭇 다른 억양이었다. 그들에게 그녀는 '가비지'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다양한 성향을 가진 쓰레기 섬은 태평양 위에 여섯 개가 넘었지만 해양 생물들이 이름을 붙여 구분하는 것은 그녀뿐 이었다. 쓰레기 섬 대부분의 일상이 하루 종일 소용돌이와 함께 춤을 추거나 해가 중천에 뜨도록 코를 고는 느긋한 하루라면, 가비지의 매일은 좀 달랐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쓰레기 섬들은 빨대가 목에 감긴 새끼 거북이 치마자락 끝에 걸려와도 그 숨이 넘어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가비지는 그렇게 야멸찬 언니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비지 역시 모든 쓰레기섬들이 그렇듯 쓰레기를 그녀의 몸에 불러들일 수 있었는데 플라스틱이 목에 걸린 갈매기며 돌고래들을 볼 때마다 그 미세한 조각 하나하나까지 빼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호흡기를 막은 쓰레기들이 목에서 톡 튀어나오고, 거북이며 갈매기가 다시 숨을 내쉬기 시작할 때의 뿌듯함이란 -! 가비지는 그 행복을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쓰레기 섬 언니들이 답답했다. 언니들은 그런 가비지를 볼 때마다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점이 언니들과 가비지를 구분하는 지점이었고, 그 점 때문에 숨을 쉬는 모든 동물들은 가비지를 좋아했다. 대부분이 그녀 덕분에 죽다 살아난 누군가의 친구이거나 가족이었으니까.

‘안녕 가비지’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가다가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못 보던 친구가 걸려있네’

그랬다.
치마 끝에 묵직한 생명체 하나가 걸려있었다.

‘응. 그런데 처음 보는 생명체야. 누군지 알아?’

빙빙 돌며 가비지의 오른쪽 무릎에 내려앉은 갈매기가 아래쪽을 두리번거리다가 답했다.

‘사람이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사람?’

가비지에게 사람은 낯선 존재였다. 그들은 보통 멀찍이서 사진을 찍거나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 몇 번 하고 돌아가곤 했으나, 그들을 태운 배의 겉모습은 회색 통조림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에 그녀가 사람을 마주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도 생명체였으니, 가비지는 언제나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며 사람에게서 플라스틱을 빼내려 했다. 별 소용이 없었다. 가비지는 갈매기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눈으로 물었다.

‘사람은 플라스틱 때문에 쓰러지는 게 아니야. 보통 물때문이지.’

가비지는 갈매기의 말을 따라 반 토막 난 페트병을 뒤집고 바닷물을 채웠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서 물이 똑똑, 떨어져 남자의 입술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남자가 서서히 눈을 떴다.

‘안녕. 정신이 들어?’

가비지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내심 다른 생명체들이 그랬듯, 고마움과 감동이 뒤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의 행동은 완전히 달랐다.

‘이게 뭐야!’

남자는 혼비백산하여 가비지의 치마 끝자락을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말도 안돼! 쓰레기섬이잖아! 여기서 탈출해야 돼.’

눈을 뜨기가 무섭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모습을 보며 가비지는 물었다.

‘뭐가 필요해요?’

‘페트병을 백 개쯤 합치면 바다에 뜨지 않을까? 아니 빨대가 나으려나? 아무튼 뭔가 비어있는 것들을 합치면 될거야.’

가비지의 말과 상관없는 혼잣말이었지만 마음 착한 그녀는 허리를 푹신하게 받쳐주는 페트병 무더기를 꺼내어 남자 앞으로 흘려보냈다. 남실대는 파도에 떠내려오는 페트병 무더기를 바라본 그는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하더니 쪽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비지는 남자가 중얼대는 모든 재료들을 그 앞으로 흘려보냈다. 노끈을 중얼거리기에 어떤 마트의 상표가 새겨진 흰색 꾸러미를 찾아 보냈고 파도를 저어낼 수 있는 길쭉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에 아끼던 유모차의 손잡이를 꺼내기도 했다.
남자는 말하기가 무섭게 발견되는 쓰레기들에 놀라면서도, 이 냄새 나는 곳을 하루 빨리 떠나고 싶어 무서운 속도로 배를 만들었다. 이틀 밤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올라탈만한 조각배를 만들었다. 가비지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 그런데.

‘쓰레기들이란!’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헐레벌떡 가비지의 발끝을 차며 떠나버렸다.
그녀의 종아리 위에 앉아 오물조물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꽤나 즐거웠는데. 쓰레기라니. 그 단어가, 단어보다는 그 말을 뱉을 때의 표정과 억양이 가비지의 손가락 끝을 차갑게 때렸다.

‘쓰레기라는 게 무슨 뜻이야?’

가비지는 갈매기에게 물었다.

‘음… 버린 것들이야. 사람들이 버린 것.’

‘왜? 왜 버린 건데?’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쓸모가 없다.
그 말이 없어져야 하는 어떤 것을 뜻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가비지는 며칠동안 말이 없었다.
수많은 생명들을 다시 숨쉬게 해주는 것에 뿌듯해 하면서도 정작 그 원인이 쓰레기,에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못된 쓰레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그녀는 절망했다. 물론 그 쓰레기가 태어난 곳과 흘러흘러 이 바다 위에 떠다니게 된 배경은 몰랐다. 누구에 의해, 어떤 기준으로 어느 순간 쓸모 있던 것이 어느 때에 쓸모 없게 되는 것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깨달은 한가지는 쓰레기라는 것이 사실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몽땅.

어느 날 아침, 가비지는 언니들을 초대했다. 먼 길이었지만 처음 있는 막내 동생의 초대에, 그녀들은 투덜투덜 막내의 구역으로 모였다. 큼직한 쓰레기섬들이 둥실, 이동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안녕, 언니들’

여섯 개의 쓰레기섬 언니들을 만난 가비지는 그녀들의 손을 웅켜잡았다.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는 왜 불렀어, 물을 틈도 없이 큰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매일같이 수많은 생명체들로부터 플라스틱을 끌어모았던 가비지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여섯개의 섬들은 순식간에 가비지와 뒤엉켜 하나가 되어버렸다. 순간, 가비지는 눈을 감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 버려진 모든 쓰레기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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