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만우절

by 윤성씨

담임 선생님의 생일은 4월 1일이었다.

그 해 우리는 5km 정도 떨어진 다른 중학교 선배에게 어차피 오늘도 학교 안 가고 놀고 있을 거 아니까 와서 우리 교실에 좀 앉아 있다가 가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 어, 교실을 잘못 들어왔네,라고 하면서 나가라고. 반 아이들이 얼마나 깜짝 놀랄까! 우리는 매우 신선한 만우절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계획대로 아이들은 깜짝 놀랐고, 선생님은 더욱 깜짝 놀랐다. 그 선배가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강제전학을 간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본 선생님은 막대기를 들고 쫓아나갔다. 선배는 중앙 정원을 빙빙 돌며 선생님을 약 올리다가 교문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복도마다 울리던 발 빠른 뜀박질과 그 뒤를 쫓아가는 너 거기 안 서! 하는 우렁찬 목소리. 전교생이 창문 너머를 힐끔대며 그 사단을 구경했고, 대단한 일을 계획한 우리는 일주일인가, 고생을 좀 했다. 나의 첫 만우절은 그렇게 유난스러웠다.

쉴 틈 없이 공부만 했던 고등학생 3년이 지나고 걸음걸이도 당당하게 입성한 대학 캠퍼스를 기억한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세련되고,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눈부셨다. 나는 친해지고 싶었다. 이 그룹에 속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깊이 스며들고 싶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사람이 친해지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스펙터클한 일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스무 명이 떼로 술판을 벌인 이후 학교에서는 순서대로 징계를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것처럼. 아무튼 진한 경험을 함께한 사람들의 관계는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만우절을 앞두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오자는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기세를 몰아 클럽도 가자고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일고 여덟 명의 동기들이 신난다고 동의를 했던 스무 살의 첫 만우절.

이제 엉덩이를 때리는 학주도 없고 긴 머리를 트집 삼아 잔소리를 하는 선배도 없으니 다들 필살기 짧은 치마를 입고 교양 수업 내내 어머 쟤 좀 봐, 하는 시선을 마음껏 즐겼고, 밤늦게는 잉크도 채 안 마른 민증을 상장처럼 들이밀며 두 개 인가 세 개 인가하는 술집을 돌다가 새벽녘에 클럽에서 춤을, 췄는지 흐느적거렸는지 가물가물하다. 그중 몇 몇은 그날 남자친구가 생겼고, 몇 몇은 생애 첫 술병에 걸렸고 나는 – 캄캄하게 기억이 안 난다. 너는 그 때 중간에 취했다고 택시타고 집에 갔잖아, 라는 게 늘상 반복되는 주장인데 정작 나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정말 그 날 무사히 집에 갔던걸까. 처음 보는 남자랑 밤을 지샌 건 아닐까. 그 기억이 너무 치욕스러워서 일부러 지워버린 건 아닐까. 글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아주 시끌벅적한 만우절이었다는 거고, 그 경험이 너무 강해서 였던지 몰라도 그 이후 나의 만우절은 매우 평온했다. 만우절이 돌아올 때마다 심심찮게 울리는 장난 카톡과 뉴스들을 웃어 넘기긴 했지만, 내가 무언가를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누구를 속여먹겠다거나 놀아보겠다고 작정했던 적은 없는 채로 – 스물 여섯이 되었다. 나는 내가 충분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스럽게 스물 여섯의 SS 기획안에 4월의 핵심 마케팅 이슈, 만우절을 적어 넣었던 것이다. 장난기 1도 없이 진지하게. 그리고 나의 선임은 그 생각을 순진하다며 비웃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서른이 된 나에게 그 날의 내 모습은 어찌보면 무식할만큼 어리석다. 이렇다 저렇다 하는 실행 방안도 없이 다짜고짜 4월이니까 만우절 이슈로 프로모션을 하겠습니다, 하는 기획서는 순진한 신입사원의 패기로만 비춰졌으리라. 오랜만에 떠오른 추억에 좀 젖어볼까, 했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울리는 카톡.


[선배님 만우절 프로모션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보여드리면 될까요…?]


카톡 발송된 건 나도 봤다, 이 새끼야. 후 –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다시 집어 넣는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은 진짜, 줘, 패버리고 싶을 만큼 일을 못한다. 대학은 제대로 나온 건지 의심이 될 만큼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두 번, 세 번, 네 번을 설명해줘도 또 물어보는 건 기본, 게다가 멘탈은 왜 그렇게 의지박약 유리멘탈인지 사내놈이 쓴 소리 몇 번 하면 ‘제가 너무 모자라서요..’ 따위의 말만 해대면서 우울 모드로 진입한다. 나는 그 푸르딩딩한 신입 사원님을 케어하느라 아침부터 지금, 이 저녁 시간까지 신나게 털리다가 돌아가는 중이다. 4월의 첫 날, 월 기획 발표에, 봄 시즌 프로모션 회의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에 묵직한 혹까지 붙이고 돌아다니니 천근만근인 하루였다. 아니, 아무리 사회생활이 처음이라도 막내가 속기하는 건 기본 아닌가? 하, 첫 미팅때 속기도 안하고, 필기도 안하고 동태 같은 눈깔로 PPT화면을 보고 있는걸, 10분만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더 늦었다가는 기억에 의존해서 회의를 정리할 뻔 했다. 하…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가뜩이나 심신이 피로해 죽겠는데 이놈의 2호선은 퇴근길 직장인들의 어깨가 빽빽해서 온 몸이 돌아갈 지경이다. 손가락 까딱할 힘이 없는데 집에 가면 또, 빨래 널어야 되고, 개판이 된 집을 청소해야 되고, 밥. 그래 그 놈이 다 망쳐둔 기획서 수정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저녁을 먹어야 한다. 아, 스트레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겨우 6호선 갈아타는 곳으로 허위허위 걷는다. 살아야 하니까 먹기야 하지만 도무지 왜 먹어야 하는지, 그렇게 꾸역 꾸역 먹어서 뭐가 되는건지, 고작 그 말귀도 못 알아 쳐먹는 신입사원에게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좋은 대리님 되는 거 말고 뭐 있나.


[ 퇴근? ]


6호선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며, 나는 별 기대 없이 심드렁하게 메시지를 보낸다.


[ 미안.. 야근 ]


신입 사원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는 이 빡빡한 삶의 유일한 낙이다. 워낙 오랜 연애 사인데다 그도 나도 바쁜 직장인이니 퇴근길에 잠깐 하는 통화와 주말의 데이트가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면 힘인데.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듯, 우리의 만남도 하루 일과 중 짬이 나는 특정 시간, 주말의 몇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삶이 그러니까. 그래서 요즘 들어 자꾸 결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가면 나를 반기고 맞아주는 반가운 사람이 그였으면 해서. 물론 그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 다음 역은 상수 – 상수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


익숙한 길, 익숙한 골목을 걸어 집 앞에 도착한다. 학교 후문과 가까워서 졸업반 때부터 살기 시작한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직장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그냥 그런대로 살고 있다. 월세도 나쁘지 않고. 네 개 층을 걸어가야 한다는 게 좀 빡시지만, 테라스에서 상수동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그냥 이 집에서 이럭저럭 살고 있다. 대체로 나는 이런 패턴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오늘 이 발걸음이 무거운 건 그냥 그 놈 때문에, 아니 그냥 잘 안 풀린 회의 때문에, 아니 그냥 구두를 신어서. 그런 별 것 아닌 일 때문인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포기하거나, 치킨을 시켜먹거나 할까. 아, 그러면 살찌는데.


[삐- 비비 – 빅 ]


띠리링, 요술봉 같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데, 집에 불이 켜져 있다.

뭐지, 하며 신발장 칸막이 문을 여는데 – 딱히 살펴볼 도 없이 작은 방에 익숙한 너가 앉아있다. 보글보글 끓여진 찌개를 막 내려놓으면서.


“응?”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와”


“응? 뭐야. 너가 야근이라며.”


“구라지롱”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껄걸 웃는 널 보는데,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뭐야 왜… 말도 없이… 이씨…”


한 눈에 쓱 둘러봐도 출근할 때의 내 방 꼬라지가 아니다. 아마 너는, 우리가 처음 연애했을 때 자주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수북한 내 머리카락을 청소기로 싹 빨아들이고, 의자며 침대며 할 것 없이 널부러진 옷가지를 옷걸이에 하나하나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네이버 레시피를 또박또박 따라 읽어가며 양파 한 개, 고춧가루 한 스푼을 담아 저녁을 지었겠지. 거짓말처럼.


너 진짜…”


나는 뭐라 할 말을 잃고 현관 문에 서있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처럼, 이 상상을 초월하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빨리 와! 다 식는다”


아랫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서 있는 나에게 너는, 이 정도가 별 대수냐는 듯 빨리 와서 숟가락을 들라고 아우성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주춤거렸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 지 눈에 선하다. 잔소리 한 바가지를 걸음마다 쏟아 부으며 신발장까지 와서 나를 들쳐 업고 의자에 앉힐 것이다. 그러기 전에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 냉장고에서 시금치를 꺼내고 있는 등에 볼을 대고, 한숨을 쉬었다. 이 복잡 다난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나에게 너라는 엄청난 사람이 있다는 건 – 기적이라거나 다행이라거나… 어떤 말에도 담기지가 않는다.

그냥 뒤에서 너를 안고, 깍지를 낀다.


“고마워”


“놀랐어?”


“엄청나게.”


“아싸, 성공”


너는 깍지를 낀 내 손가락을 풀어내고 식탁에 앉힌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상 앞에서 너에게 물었다.


“왜 거짓말했어”


쌀밥을 입에 우겨 넣으며, 음~ 맛있군, 을 연발하던 너는 뜨겁다는 듯 김을 내뿜고, 눈을 꿈뻑인다. 내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한참 우물우물 밥알을 씹던 너는 꿀꺽, 첫 술을 삼키고 말한다.


“만우절이니깐!”


이 모든 일의 동기가, 고작 만우절이라니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다면.

나는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두부 한 모를 집는다.


맨날 만우절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