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취미 趣味

by 윤성씨

얄포롬 안개가 촉촉한 산 길 위에 간간히 들리는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


"웬 일로 자네가 나들이를 가자고 하시나."


"날이 좋으니-풍류를 즐기자는 것이지."


"말은 바로 하시게. 버들이라는 기생이 궁금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푸드덕, 새가 날아오르면서 떨어지는 나뭇가지. 아득히 먼 어딘가에서 생경한 자연의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헛기침을 하던 남자는 짐짓 호탕하게 답한다.


"즐기면서 한 번 노는 일에 그리 판단을 하시나."


"천하의 대선 비가 놀기도 하는군. 허허"


"화조풍월에 음악이 빠질 수 있나. 그뿐일세."


산기가 푸르른 오르막의 중턱. 가야금 소리가 아롱아롱하다. 엷게 낀 산의 안개와 들이마실수록 시원 쌉쌀한 내음. 두 남자는 소나무로 짜인 대문 앞에서 우물쭈물 서 있다. 흙을 차는 말발굽 소리가 마당을 넘자, 띠 - 딩, 현을 퉁기는 가락이 멈추고.


자박자박 마당의 모래가 밟히더니

끼-익. 대문이 열렸다.

연푸른 저고리에 짙은 쪽 남빛 치마가 병풍에 담긴

미인도처럼 서있다.

고개를 숙이는 둥근 이마에 푸른 눈썹이 새초롬히 빛난다.


두 남자는 말을 메어두고 여자의 정원에 들어선다. 작지만 정갈한 공간. 대청마루를 언뜻 쳐다보았지만 하늘빛 저고리는 무심히 한옥을 돌아 걸어간다. 쭈뼛쭈뼛 따라 걸아가니 정자의 뒤태가 드러났다. 산 중턱에 자리한 정자에서는 굽이 치는 강물과 그 위로 노니는 새들의 날갯짓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이 그린 한 폭의 수채에 빠져있는 사이, 여자는 팔각상에 단출한 찬과 술병을 내어 왔다.


"버들이라 합니다."


하얀 사기 잔에 언뜻언뜻 그려진 버들잎. 하얗고 곧은 손가락에 끼인 옥반지가 나타날 때마다 달큼한 청주가 채워지고, 또 채워진다.

방문객들은 주인장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재치 있는 질문에 시간을 잊었다. 까무룩 한 시간이 대화와 노래와 한 병의 술로 노곤해질 무렵.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는 데 시 한 수가 빠질 수 없지."


여자는 산 이슬에 촉촉한 기운이 더한 화선지를 내어 놓는다. 벼루에 부어지는 먹 내음, 빳빳한 붓 끝을 정리하더니 남자의 오른손에 내어준다.


"마음을 당기는 멋이 여기에 있구나."


필묵을 채운 그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반달 같은 눈웃음 위로 능선 같은 눈썹이 놓여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푸른 산에 곱지 않은 것이 없듯.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양, 여자는 새침하게 답한다.


"푸르스름한 눈썹이 흔한 것은 아니지요."


고즈넉한 산골에 껄껄껄 웃음소리가 굴러간다.

안개에 가려 해가 있었나, 싶었던 곳에도 어둠은 온다. 초를 밝히려는 여자를 말리며, 두 사람은 휘청휘청 정자를 내려왔다.


"살펴 가십시오."


닫힌 문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선비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지조 있는 그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벗은 농을 건다.


"입맛 다시는 고양이 같구먼 그래."


"이 양반이 취했는가. 못 하는 소리가 없구먼."


못내 말머리를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휘영청 달빛이 밝다.


"자주 오세 그려. 그리 아쉽다면."


"아니, 왜 심취하면 괴로워진다고 하는지 알겠네."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거리는 두 사람은 극단의 파국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딱 이 정도로. 즐기면서 노니는 게 좋지. 안 그런가."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4. 산의 중턱.


5. 먼 산에 엷게 낀 푸른 기운. 또는 산기(山氣)가 푸르러서 아롱아롱하게 보이는 빛.


6. 푸른 눈썹이라는 뜻으로, 화장한 눈썹을 이르는 말.


7. 버들잎의 푸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