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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Dec 06. 2019

서른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마음가짐


공자는 왜 서른에 이립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배움의 성과를 얻고 뜻이 확고해진다는데,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나의 좌충우돌 20대가 내세울만한 몇 개의 성공과 지독한 실패로 점철된 것은 그저 열심히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식한 정성은 실패로 향하는 법이니.
무엇이 나의 정열을 부채질했나.

20대는 경험이 자산이니까.

20대의 인맥으로 평생을 산다고 하니까.

스물아홉 가을에도 나는 여전히 열심히 살았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사고는 좀 쳤어도 어쨌든 좋은 대학 나오고 대기업 나온 자랑스러운 딸일 수 있는 것은 나의 불타는 성실 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잘난 큰딸은 왜 저녁 식탁에서 연락도 없이 일을 그만둔 선생님을 헐뜯다가 공감은 못해줄망정 "대표가 원래 그런 거야. 아직 멀었네 우리 딸" 애정 어린 타박을 들었을 때 인내심이 뚝 끊어졌을까.
참다못해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야 했을까.

내가, 밖에서, 무슨 짓을 겪는지 하. 나. 도 모르면서
아직 멀었다니,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얼. 마. 나 열. 심. 히 살았는데.

악다구니를 하며 꺼이꺼이 울 때, 나는 꽁꽁 숨겨두었던 심연의 불안을 보았다. 나는 무서웠던 것이다.
피 토하며 열심히 살아낸 끝에 아무것도 없다면.
헐레벌떡 달려가고 있는 목표점이 틀렸다면.
머리털 빠져가며 부서져라 일한 결과가 고작,
오늘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나 자신뿐이라면.

왜 살아?

지금이라도 놓아버리겠다.
그래, 그런 불안으로 지금껏.

숨이 턱까지 차서 달리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 밤, 충격에 휩싸인 아빠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면서 나는 스스로를 오래 다독였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이 아빠뿐이었을까.
잘나고 특별한 딸,
어디에 내놓아도 우와, 감탄이 나오는 여자, 이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으로 나를 끼워 맞췄던 날들.
거짓말이 만들어낸 화려한, 혹은 활발한,

혹은 프로페셔널한 - 뭐건 간에의 나로 살아내기 위해 발악했던 무리수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에 그런 이유도 한 몫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혹은 예전보다 재미없네, 실망하면 어쩌지.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한 때는 ‘잘 쓰기도’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한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아주 훌륭한 작가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으며 맞춤법, 철자 하나도 모르던 사람이 수백만 명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는 세상에.

‘어, 얘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겠다.

원래, 따위는 없는 것이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스물세 살부터 나를 알던 대표님께서 몇 년 전 내 사진에 댓글을 남기셨더라.

@조윤성 이 날의 패기는 어디 갔냐

한동안 그 댓글을 바라보고 있었다. 패기. 패권을 잡고자 하는 늠름한 기운. 스물셋넷의 나는 딱 그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못해요'라는 단어를 경멸, 했고 못하는 결과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 하기로 결정했으면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밟아야 하는 게 시간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신경 쓰지 않았던.

그래서 나는 행복했나?

힘들어, 지쳤어 같은 찌질한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질색이었으니 머릿속은 항상 다음, 그다음의 성취와 성공으로 가득했던 스물셋을. 어느 정도는 사랑한다. 그 덕분에 많은 경험을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기는 어디 갔냐'는 말에서 내 생각이 멈췄던 이유는, 스물아홉 식 패기가 퍽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패권을 잡는 방식이 꼭 그렇게 우악스럽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

나는 내가 아무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완전히 비어있고
그래서 무한히 채워질 수 있다.

그거면 된다. 자족하는 마음.

나는 2020년에 대해 아. 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행복하리라는 것을 안다.

우선 스물을 맞던 1월과 아주 다를 것이다.
‘내가 알던 걔 맞아?’ 싶게 조용하고, 고독하고, 차분하다. 연말 연초니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계획을 세우고 달성해야 한다는 부담 앞에서도 초연한 12월 31일.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마시고, 묵상을 하고, 누군가에게 영혼을 담아 수업을 하고, 정의라거나 미래와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며 가만히 앉아있을 것이다.

눈이 온다면 눈에 감탄하고, 비가 내린다면 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왜 비가 오는지, 왜 눈이 오는지, 왜 해가 빨리 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따위는 없다.
지구는 수천만 년 전부터 비와 눈을 내렸고

수백억 명의 사람이 그냥저냥 살았다가 죽었다.

왜는 없다.

모두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행복과 불행으로 살다 갔는데 왜 ‘나’만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끝내주는 노을을 보고, 아주 예쁜 수채화를 그리는 분과 인사를 한다. 숨 막히게 예쁜 카페에 잠깐 앉기도 하고, 토핑이 풍성한 피자를 먹는다.

그런 매일들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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