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씨 Jan 17. 2020

세상이 내 편이라고 믿는 정신병

어디까지나, 제 얘기입니다.

퇴사 직후 나는 소란스러웠다.
세상이 모두 내 편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끊어진 월급 대신에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과 에어비앤비가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아 생활비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아직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는 장밋빛으로 반짝였으며 나는 그 모든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흥분되어 있었다.

파티플래너 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맥이 아주 많이 생긴 것도 한 몫했다. 그들이 말하는 멋진 미래, 경제적 자유, 크나큰 성공, 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가 내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은 이제 뭐할 거야,를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 입에서는 희망과 기대로 남실대는 계획들이 흘러나왔다.
안된다는 말은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하는데.
나는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나를 도와줄 사람들까지 넘쳐났으니까.

그래서 나의 퇴사 첫 해는 매우 스펙터클하다. 내가 기를 쓰고 최선을 다해도 안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아는 최선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에게 성공을 들이밀어야 했다. 이게 안되면 저것을, 저 것이 안되면 그것을, 그것마저 안되면 저 멀리 일렁이는 무언가라도 붙잡아서 할 수 있어, 안 될 리 없어를 되뇌었다. 그냥 멈춰 서서 어, 이번엔 실패했네. 왜 그랬을까? 질문하는 일이 어려웠다. 자존심이 상했다.

비로소 고백하자면, 6개의 업을 숨 돌릴 새도 없이 갈아치운 원동력은 대단한 자기애나 열정이 아니라 비뚤어진 미래상이었다. 나의 미래는 성공과 황금으로 빛나야 하기 때문에 수단을 바꿔서라도 거기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 가랑이를 찢어서라도 그 환상에 부응하고자 망가져가는 스스로를 쳐다보지 못했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아는 것. 그것이 발전과 공부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던가. 교만으로 똘똘 뭉친 나는 현실을 과도하게 낙관했다. 누구도 나에게 굳이 어떤 조언을 해주지 않은 것은 그 긍정이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라는 마음과 굳이 초치는 말을 해서 미움을 사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겠다.
그들 중 몇몇은 내가 걸어온 길을 지나왔을 수도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신이 나서 떠들었던 나의 빈 계획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하다.

단순히 세상이 나를 위해 굴러갈 거야,라고 믿는 것은 정신병이다. 세상은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그저 공평할 뿐이다. 돌아보면 성공은, 인격에 박수를 보내지는 못할지언정 불철주야 최선을 다한 사람의 것이더라, 언제나.

두 번의 사계절을 지나온 지금,
나는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지 않으니 조급할 것이 없다, 그럴 시간도 없고.
좋은 일은 어디 저기 멀리서 까치가 물고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정직하게 땀 흘리고 애쓴 끝에 찾아내는 것이다.
고로, 지금은 나를 믿기보다 수많은 사람을 지금의 자리에 있도록 한 세상의 법칙을 확신한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것임을,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임을.

확신은 말이 없다.
굳이 스스로에게 행복을 약속할 필요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면 전기장판이 놓인 침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누구도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 집에 가면 전기장판에 누워서 잘 거다! 신난다! 들뜨지 않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싫으면 니가 꺼지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