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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04. 2020

뭐 하나는 부자여야 사랑도 한단다

그게 돈보다 마음이 먼저면 좋겠어.

부산에서 춤추다가 만난 남자 친구와 천일이 지났다. 둘 다 서울 사람이라는 것과 한 정거장 차이에 모교를 둔 졸업생이라는 것이 재밌었다.
나는 그의 뭐에 끌렸을까.
처음에는 외국인같이 우락부락한 얼굴과 몸이 신기했고 나중에는 안 어울리게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이 그랬다.

화장실에 뭐가 고장 났어,라고 지나가는 말로 카톡을 하면 내가 출근한 사이 고장 난 구석을 고치고 바닥 곰팡이 제거까지 하고 있는 모습이 190cm의 시커먼 남자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저 행동의 이유가 오롯이 [나를 좋아해서]라는 건 웃기는 김칫국이지 싶었다.
그래서 근 3개월 마음을 못줬다.
실망하기 싫었고 상처 받기 지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의 표현은.

"너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한 번 만나볼래?"

두 개의 계절이 지나고 나서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
하나는 약속대로 나에게는 괜찮았다는 뻔한 사실과
다른 하나는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안도감이 축복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직업, 외모, 성격, 이것, 저것,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늙어가는 이만큼 못돼 먹은 나라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사랑의 역사를 새로 쓰는 기분으로 핑크빛 20대 후반을 함께 했다. 삐그덕 한 번 없는 천일의 만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참을 인자가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 약속시간을 수없이 어기고, 술독에 빠져서 연락두절이 되어도 '허허, 웃으며 그러지 마 알았지', 하던 친구가 오늘은 정색을 하며 말한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너 생각만 해."

공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들어선 날 선 문장이 낯설었다.
내가.
내 생각만?

수업이 끝나면 9시 반이지만 1시간이라도 보고 싶으니까. 내일모레가 임용 발표이기도 하고, 오늘 점심때 일이 밀려서 못 만난 게 못내 아쉬워서. 친구와 만나고 있을 너에게 가겠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거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그대로 삼켰다.
왠지 그러면 우당탕 화를 낼 것 같았다.

" 11시에 집 가는데 너 그냥 보내? 집에 데려다줘야 될 거 아니야. 중학생도 아니고. 1시간 보려고 2시간 오는 게 뭐야. 시간이 많아? 그러면 아까 점심때 보면 되잖아."

아 뭐야, 그런 거였어,라고 마음이 풀어지려고 하다가도 그 딱딱한 말이 못내 얼얼해서 매가리 없는 미안해만 반복했다.

"그리고 갑자기 몇 시간 전에 만나자고 연락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서로 한가한 것도 아니고."

서로 한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우리는.
나는.
시간과 서비스를 팔아 돈을 벌어야 하니까.

"수업 잘해"

"응"

원래는 수업 전까지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다가 기분 좋게 저녁 수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짧은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엉망이 됐다. 모든 곳에서 피곤이 몰려든다. 남자 친구는 어느 것 하나 틀린 구석 없이 말했는데 나는 왜 졸지에 불쌍한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문득 두 번째 제주도 여행이 떠오른다. 3박 4일 일정의 호텔, 비행기, 렌터카를 몽땅 예약한 남자 친구에게 미안해서 식비는 내가 다 낼 테니까 몸만 오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3일 저녁 식사 때가 되니까 지금까지 쓴 금액이 부담스러웠고, 이걸 아까워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그러게 돈 좀 잘 모아두지.
그러게 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지.
왜 이 것밖에 안되는 거야, 나는.

회사원 월급이 빤하다지만 그래도 적지 않았는데 당시의 소비 씀씀이에서 매달 카드값 떼고 뭐 떼고 나면 항상 간당간당이었다. 그 가난한 마음으로 나는 저녁에 뭐 먹지, 묻는 남자 친구에게 내 유치한 마음을 쏟아놓은 것이다.

"있잖아."

"웅."

"이런 말 하는 내가 너무 초라한 거 아는데.."

이때부터 벌써 나는 울기 시작했다. 당황을 하거나 말거나 만난 지 아직 1년도 안됐고 이런 모습이 실망스러우면 어쩔 수 없어헝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너는 나보다 훨씬 많은 걸 부담하고도 아무 티도 안 내는데.. 여기서 내가 찡찡대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근데 내가 쓰고 있는 돈이 너무 부담되고,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너무 싫고, 근데 이 말 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엉엉 창피해"

이런 비슷한 말을 쏟아내는 철없는 20대 후반 여자애에게 '어후 찌질해' 라거나 '실망'이라거나 각종 돌을 던져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이상한 남자 친구는 어깨를 토닥토닥하더니 한번 끌어안고 등을 쓸면서 '괜찮아'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반전.

"내가 봐도 너 돈 쓰는 게 좀.. 재무설계가 필요해 보였어"

전, 혀 내 시나리오에 없던 문장을 말한 그는 2시간이 넘도록 보험과 청약과 펀드와 적금에 대한 재무 설계를 했다. 딱새우와 함께.

지금도 가끔 남자 친구는 그 이야기를 한다.

'한 달에 200만 원씩 쓰니까 돈을 못 모으지'

'너 매달 택시비로 몇십 만원씩 썼어 그래서 그래'

그래 벌 받나 보다, 웃으며 그 말을 받아치곤 했는데. 왜, 오늘, 2호선을 기다리는 플랫폼에서는, 울먹이던 내가 겹쳐오는 걸까.

한가하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
그러게 돈 좀 잘 모아두지.
그러게 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지.
왜 이 것밖에 안되는 거야, 나는.

자괴가 치미는 그 순간. 마윈의 명연설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자유를 주면 함정이라 얘기하고 

작은 비즈니스라 얘기하면
돈을 별로 못 번다고 얘기하고 

큰 비즈니스라고 얘기하면 돈이 없다고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 하면 경험이 없다 하고 

전통적인 비즈니스라고 하면 어렵다고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하면 다단계라고 하고 

상점을 같이 운영하자고 하면 자유가 없다고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고 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한다. 

물론 이 유명한 연설의 핵심은 기다리지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 말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통틀어 하는 말 같이 느껴진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어떤 비난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나 혼자 발을 저리며 자책을 하고 있는 것이, 모든 말을 배배 꼬아 듣는 마윈의 연설 속 사람과 꼭 닮지 않았나.

남자 친구는 나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누구도, 매달 겨우 월세와 생활비를 벌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꿈을 향해 노를 젓는 나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가장 아픈 자책과 비난은 내가 나에게 던진 돌이다.
최고로 딱딱한 자괴감으로 나를 침몰시켜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다시 남자 친구의 말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2년간 준비한 임용 합격 발표를 이틀 남긴 입장을 생각해본다. 나였다면, 예민해서 핸드폰을 없애버렸을지도 몰라. 점심시간에 만나자고 해놓고 갑자기 바빠서 안된다고 한 것도 화가 나는데 밤늦게 다시 만나자니, 당연히 화가 나겠군.
가라앉은 마음으로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너만큼 약속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랬나 봐. 생각이 너무 짧았어. 친구랑 밥 많이 먹고 재미있게 놀아라. 나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 이해를 못해줘서. 사랑한다.]

훈훈하게 싸움(?)을 마무리하고 예상대로 남자 친구는 내가 도착했을 시간에 1시간을 조금 넘긴 지금까지 잘 놀고 있지만, 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로 한다. 돈이 없어도 마음이 부자면 사랑도 하고 잠도 잘 잔다. 최악은 내일을 볼 수 없는 가난한 마음인 법이니, 이번엔 너그럽게 내가 참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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