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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09. 2020

남자 친구가 임용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왜 나는 걱정이 될까.

남자 친구가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작년에 떨어지고 올해가 재수였으니, 2년 만에 선생님이 된 셈이다.

"바바야. 나 합격했다!"

전화기 너머로 두 글자를 들었을 때, 그간 감내해왔을 갖은 고생이 생각나서 축하해, 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으엉 울었다. 홍대입구역 무빙워크에서 고생했어를 반복하며 훌쩍이는 나를 몇몇이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왜 울어 울지 마."

"안 믿긴다 너무 좋다 으헝"

"울지 말고 수업 잘해라. 그럼 나 이제 엄마한테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동안 멍, 했다.
다시 한번 발음해봐도 현실 같지 않은 말이라서.

내 남자 친구가 선생님이 되었구나.

안 믿기고 너무 좋은 일.
공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솜사탕 위를 걷는 듯한 행복이 푸시시, 가라앉고 불현듯 현실감각이 말을 건넨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될까?

남자 친구는 충청남도로 지원했기 때문에 빠르면 3월부터 사는 곳이 갈린다. 일종의 '롱디'가 되는 셈이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감히 예상도 할 수 없다.
대전에 사는 남자를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데 주말 일정이 틀어지면 한 달 못 보는 것도 눈깜짝이 었다.
상대가 나를 그다지 애정 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몸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할 만큼 큰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 2년간 나름 단련을 해왔으니까.
임용을 준비하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리고 저녁을 함께하는 잠깐의 만남을 잘 이어왔다.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만났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 걱정스러울까.
아주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는 꽤나 현실적이다.

결혼의 압박으로부터 도망칠 핑계가 사라졌다.

설 연휴 때 작은 엄마에게 들들 볶이다시피 들었던
'시집은 언제 갈거니.'
요즘 부쩍 늘어난 청첩장 만남에서 은근슬쩍 받는
'너는 언제쯤..?'
이런 질문들에 나름의 고정 답변이었던 임용 준비.
효력이 없어졌다.
이제 그냥 솔직하게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이 입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둘이 덮고 누울 이불이며, 이슬 가릴 지붕은 있어야 하는데. 공방에 살림 차릴 게 아니라면 아직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맥없이 서글퍼진다.
그냥 회사를 다녔다면 나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남자 친구의 임용 합격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넌 언제쯤..(갈거니)'라는 질문을 웃어넘길 수 있었을까?

아니, 이런 궁상맞은 자기 비하는 그만하기로 하자.
그냥 합격한 것뿐인데 혼자 버진로드까지 상상하다니. 정작 남자 친구는 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좀 서운하긴 하지만.

공방 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밤사이 내려앉은 먼지를 그러모은다. 쓸데없는 생각들은 먼지랑 같이 털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냥 1차원적으로 축하만 하면 되는데 뭘 상상력을 발휘하고 난 리람, 창의력 낭비인 부분.
물걸레로 바닥을 싹싹 닦고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았다.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3분 전, 나의 미술 공방에 좋아요를 누른 남자 친구의 프로필이 보였다.
무심코 그의 인스타그램 화면으로 옮겨간다.
남자 친구는 프로 눈팅러이기 때문에 새로운 소식은 없다. 그의 피드는 온통,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의 홍보판이다.

모의 IR 발표를 하고 있는 동영상의 주인공도, 한국일보에 소개된 프로그램의 기획자도, 가장 최근 게시글인 12월 트리 그림을 할 수 있는 곳까지도.
이건 내 계정인지 남자 친구의 계정인지 모르겠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깨알같이 붙인 해시태그가 '뭐가 그렇게 불안해?'라고 말하는 듯해서.
이번에도 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 멀쩡한 남자 친구를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일은 맛있는 고기를 사줘야겠다.



당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Life Artist
조윤성

yscho@meahproj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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