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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11. 2020

피자박스와 손뜨개 수세미가 주는 위로

기생충 4관왕 만세

기생충에서 기택네가 작당모의를 하는 배경이 된 피자가게가 노량진에 실존한다.
공간을 찾기 위해 봉준호 감독은 서울 곳곳을 뒤졌는데 이 피자가게는 내부 공간이 분할되어 있고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기에 최적의 공간이라 한 번에 ok 했단다. 피자박스를 접는 법도, 기우 엄마가 수세미를 뜨는 모습도 이 곳에서 배웠다. 기생충 4관왕 소식에 70대 사장님은 '여러모로 힘들지만 영화가 잘 되어 기쁘다. 언제 한 번 오시면 피자와 치킨을 대접하겠다'라고 한다. 중앙일보에 실린 재미있는 기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마지막 사장님 인터뷰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와 연을 맺은 사람이 잘 되면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이 메마름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면 더더욱.

영화 기생충 중에서 : 피자박스 접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택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몇몇 있지만 그들의 일이 잘 풀렸을 때 진심으로 감격하며 축하를 보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때로는 얄밉고, 배가 아프기도 하고, 쟤는 저런데 나는 왜, 하며 자책이 들기도 한다. 이따금씩 최근에 잘 풀린 근황을 접하고 물개 박수를 보내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행운에 대해 겸손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고군분투했다는 점이다.


겸손과 성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오만해지거나, 그냥 운이 좋았던 사람이 된다. 피자가게 사장님은 봉준호 감독의 인상에 대해 "배우신 분이라 그런지 매우 점잖았다"라고 말했다. 칠순이 넘은 분에게 점잖다는 표현을 들을만한 인성은 어떻게 나타날까. 아마 아주 기본에 충실한 태도이지 않았을까.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의 끼니를 챙기고,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뒷정리를 소홀히 하지 않고, 대여비용 정산에도 깔끔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야말로 겸손하고 성실한.


영화 기생충 중에서 : 채끝살 짜파구리를 먹는 모습


피자가게 사장님의 인터뷰는 계속 이어진다.
기생충의 수상에 대한 의견으로는 빈부격차가 세계적 문제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화려한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의 암투를 그린 영화도 많았고 철부지 권력자들을 혼쭐 내는 영화도 많았지만 이렇게 덤덤하고 씁쓸하게 현실을 담아낸 경우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도 재미를 놓지 않으면서. 재미가 있다는 건 공감이 간다는 뜻이다. PC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학력을 위조하는 모습은 부모님께 보여드릴 성적표를 고치는 학창 시절을 연상시키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도 데이터 요금을 아끼기 위한 노력과 겹친다.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적 있는데' 하는 마음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공감을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곳에 익숙한지, 어떤 사물을 사용하고 무엇을 먹는지. 왜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 기생충에는 그 시시콜콜한 단상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묻어나서 불편함과 끄덕임을 동시에 주는 것인 지 모른다.
그리고 아주 보편적인 사물들이 그 메시지를 증폭시킨다. 채끝살과 짜파구리, 위스키와 필라이트 - 또는 그 사이의 삿포로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음식과 술 이상이다. 다분히 한국적인 사물들이 기생충이라는 이야기로 엮여 세계인의 마음에 물둘레를 퍼지게 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고, 가슴 벅차다.

매일 마주치는 손뜨개 수세미와 생피자 가게의 집합체가 보여주는 삶의 양상. 내 일상은 어떤 도구들로 표현되려나.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감동을 자아낸다면 굳이 잘 깎인 수석이 아니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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