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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13. 2020

10년 흡연 경력자가 말하는 금연의 추억

내가 처음 담배를 배운 것은 열네 살 봄이었다, 아니 여름이었나. 한적한 화장실에서 친구들이 삼삼오오 피우던 하얀 담배를 몇 모금 들이마시고 기침을 콜록이다가 그만두었다.
본격적으로 맛을 들인 건 이듬해 여름에서 가을이 되던 때였다. 화실에 같이 다녔던 친구는 늘 말보로 레드를 피웠는데 그날따라 멘솔을 들고 온 게 문제였다.
자기는 독한 맛을 좋아하는데 이건 영 시원해서 별로라며 나에게 한 움큼 쥐어준 것이다.
담배가 똑같지 뭐 얼마나 다르겠어했는데 -
그 시원한 맛(?)이 나랑 잘 맞아버렸다.
열여섯이 되었을 때는 담배에 완전히 길이 들어서 사흘이 멀다 하고 새 비닐을 뜯어야 했고 스물둘셋 때는 하루 두 갑이 우스웠다.

새삼 돌아보면 익숙한 것들도 모두 시작은 다 그렇게 어설펐고, 어려웠다. 시나브로 몸에 배어서 당연해지는 것이다. 시작만 그랬나, 끊을 때는 그 배로 힘들더라.

금연을 결심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냄새를 신경 쓰는 것도 싫었고 말랑한 폐가 까맣게 썩어가는 모습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심부터 완결까지 몇 년이나 걸렸는지 모른다.

담배를 끊기 위해 한 두 개비 피우다 만 곽을 통째로 버리기도 했고 , 집에 있는 라이터를 싹싹 긁어모아 줘버리기도 했고, 주변에 절대 피우지 못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도 해봤고.
금연 패치도 붙여봤고 약도 먹어봤고 무슨 이상한 약초 말아둔 것도 피워봤다만 몇 달 겨우 참다가도 답답한 일이 터지면 폐를 탁 틔워주는 (정확히는 갉아먹는) 연기 한 모금이 간절해지곤 했다.
이번 딱 한 번만, 그래 한 번만.
그렇게 다시 손을 대면 또 1년이 후딱 지났다. 열다섯부터 스물다섯까지, 10년. 오래도 피운 담배를 끊게 한 계기는 우습게도 라섹수술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쓴 안경이 매우 볼썽사나웠기 때문에 미용렌즈를 자주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잠들기 전과 후에 렌즈를 빼고 끼는 게 아주 귀찮았다. 술에 잔뜩 취해 그냥 잠들어버리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래서 인턴을 같이 하고 정규직 전환이 된 동기 언니가 라섹 수술을 한다기에 벌떡 '나도 할래' 했던 것이다. 회사 생활 내내 뻑뻑한 렌즈를 끼고 지내는 것도 끔찍했고 이때 아니면 한 달 정도 눈을 쉬게 할 시기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눈에 레이저 몇 방을 쏘고 나서 2박 3일간 눈이 너무너무너무(x100) 아팠다. 눈에 무지하게 따가운 돌멩이를 와장창 집어넣어둔 기분으로 잠도 자고 밥도 먹는 게 어찌나 괴롭던지 담배 따위는 생각도 안 났다. 그렇게 2~3주가 훌쩍 흘렀다.

아릿한 각막의 고통이 잠잠해진 후에도 금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라이터 불이 수술대에서 보았던 레이저 불빛과 비슷하게 느껴진 탓이다. 치지직 하는 불 자체가 눈가를 시리게 했다.
그 공포로 5년간 금연을 이어오고 있는가, 하면 아니올시다. 더 큰 감시자는 '신입사원 연수'였다.
연수기간에는 음주와 흡연이 엄격히 금지되었는데 합숙 연수 기간에 한 명이 흡연으로 적발되어 퇴소 조치되는 일이 있었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안정적인 대기업 월급보다 좋지는 않았으므로 그렇게 또 두어 달을 강제 금연할 수 있었다.
이제 연수도 끝났으니 슬슬 흡연자로 복귀해볼까 싶었는데 1년 차 업무 익히기가 어찌나 바쁘던지 점심시간 잠깐 짬 내기도 어려웠고 퇴근 후에는 녹초로 집에 돌아와 잠들기 바빴다. 덕분에 근 6개월을 금연하게 되자 이제 담배를 피우기가 좀 아까웠다.
이렇게 최장기간 금연을 이어왔는데!
아까움. 그 단순한 욕구가 오늘까지 금연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직도 피웠던 햇수가 참은 햇수보다 길지만 지금 다시 피우면 그 고생을 다시 하던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피워야 할 것 아닌가, 10년 전보다 2배는 더 오른 가격으로. 어휴.

애써 담배를 피워도 보고 끊기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끝도 나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생활방식을 들이는 것은 그렇게 다, 쉽지 않다. 그래도 나름의 노하우라고 정리를 해보자면 -

하나, 시작하기 위해 아주 작은 계단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처럼, 끝도 단계별로 매듭지어야 한다.
하루 스무 개 피우던 사람이 갑자기 끊는 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도 두 갑씩 피우던 때에는 금연의 ㄱ자도 생각을 못했다. 그건 마치 이제 막 걸음마 뗀 아이에게 이종 격투기 가르치는 것 아닌가. 열개, 다섯 개, 세 개로 줄이면서 '마침내' 그만둘 수 있던 것이리라.

둘, 좋은 습관을 들일 때 실패해도 다시 하는 것처럼, 끝내는 것도 여러 번 시도해야 한다.
중간중간 참기 어려운 때들이 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술자리라거나 옛날에 정말 좋아했던 담배를 피우는 친구를 본다거나 '야 딱 한 대만 피워'라고 권한다거나. 그럴 때면 '내일부터 다시 피울 건데 오늘만 참자'라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흡연은 순간의 욕구라 정작 그때만 지나고 나면 금세 가라앉는다는 걸 오랜 금연 시도들로 배웠기 때문이다. 다음날 또 생각이 나면 '내일 두 개 피울 거니까 오늘은 참자', 하는 식으로 미루고 미루며 참았다.
3년 전에는 도저히 못 참고 또 몇 주 피웠던 때도 있었다. 2년을 참았으니 잠깐 피워도 금방 끊겠지 했던 것이다. 때마침 생긴 남자 친구가 안 끊으면 헤어진다고 해준 덕분에 다시 마음을 잡았다. 실패해도, 다시 해가야 한다.

셋,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공표해야 한다. 다이어트 시작할 때처럼.
가장 오래 금연을 했던 때가 2 달인가 있었다. 그때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이제 쟤는 정말 끊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인내심을 저버리게 한 것은 어느 여름밤 한강에 실려온 바다내음과 잔잔한 노랫말이었다. 먼 옛날 싸이월드에서 돌던 말 중에 [여자는 한숨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담배를 피운다]는 말이 있다. 유치 찬란하지만 그놈의 감성이 눈물 셀카를 만들고 흑역사를 만든다. 나 역시 역시 분위기에는 담배연기가 있어줘야 해,라고 맥없이 편의점에 들어섰던 것이다.
내가 특정 행동을 하게 하는 사소한 요소들을 몽땅 잘라내야 한다. 사실 요즘도 그때 들었던 노래가 나오면 아주 잠깐 멘솔향을 떠올린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렇게 습관은 참 무섭다. 시작은 어려운 만큼 빠르게 우리 일상에 배어들고 한 번 배어든 것과 작별하려면 시작할 때 들인 에너지의 배를 들여야 한다.
나는 운 좋게(!) 금연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들여야 할 좋은 습관은 수두룩 빽빽하고 버려야 할 못된 것들도 한아름이다. 그러므로 좋은 습관은 부지런히 들여야 하고 안 좋은 버릇은 뭔 짓을 해서라도 끊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시작은 점점 두렵고, 무거워지니까.
고로, 내일부터는 아직도 몸에 잘 배지 않는 6시 기상을 다시 시도해야겠다,
한 살 더 먹기 전에.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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