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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15. 2020

브런치 닉네임을 '조윤성'으로 바꾼 이유

2020트렌드가 멀티 페르소나라지만, 가면뒤에 숨는삶은 그만하겠습니다

제니퍼 로페즈가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과감한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폴댄스도 소화했다.



중앙일보는 이런 그녀를 두고 '퀸타 스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퀸타 스틱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소개한 신조어인데 50을 뜻하는 '퀸(quin)'과 판타스틱을 합친 말이다.  


판타스틱한 50대라.


젊은 시절 잘 관리했으니 이제 멋지게 누려라는 말 같기도 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훌륭한 시작을 하기 좋다는 뜻 같기도 하다. [회복탄력성] 역시 인간이 가장 창조적인 시기가 35세에서 55세라고 했으니, 요즘 50대의 이미지는 확실히 이전과 다른 것 같다. 하긴, 서른이면 이미 애 둘 낳고 정신없이 살 줄 알았는데 연남동에 앉아 아이스초코를 홀짝이며 글을 쓰고 있으니, 쉰 살에 어떤 미래를 욱여넣어도 그대로 안 될 확률이 더 높겠다.


사실, 서른으로 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직도 낯설다.

30대 중에 내가 가장 어려,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봐도 그 말에는 역시 어리고 싶은 미련이 묻어있다.

나는 왜 '어리다'에 집착하는 걸까.

가만 보면 이 집착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스물둘이 되던 2월에도 나는 스물 하나에서 둘이 되는 걸 못 견뎌했더라.







스물둘의 겨울은 내게 유난히 시끄러웠고, 유난히 추웠다.

사람들은 모두 1이라는 숫자와 처음에게는 참 너그럽다.

시작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

물론 나도 아직 젊지만,

젊다 못해 새파랗게 어릴 수도 있겠지만

'어리다'는 말이 용인되지 않는 상황이 올 때,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당당하고 노련한 사회인으로,

세상을 이해한 듯한 표정으로,

살포시 미소 지을 수 있을까?

- 2012.2.24.am3:38 -






새파랗다 못해 어휴, 푸르뎅뎅하게 어려서는 도대체 왜 새벽 3시 반까지 안 자고 저런 글을 써놨나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조급해서 스물 하나까지는 괜찮고 스물둘부터는 안된다고 발을 동동 굴렀는지.


8년 전 일인데도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실수를 용서받지 못할까 봐.

실패가 용인되지 않을까 봐.


나는 성공과 성취를 안달 냈고 그렇지 못한 스스로에게 참 많이 야박했다.

'당당하고 노련한 사회인' - 단어에서 묻어나는 단호함이 학창 시절 3개의 동아리를 하게 했고, 입사와 퇴사를 하게 했고, 7개의 업을 경험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스물둘의 나에게 떳떳한 서른이 되었을까?


유난히 날도 포근했던 토요일 - 밥도 제대로 못 먹고 3회의 클래스를 마친 후에 7평짜리 작은 공방에서 나이 듦을 사색하는 나는, 늠름하고 어엿한 사회인이라고 할 수 있나.

모르겠다. 어린 내가 보면 - '짜증 나' 하며 담배를 꼬나물는지도.

그런데 30대가 된 나는 그럭저럭 오늘 이 밤이 참 감격스럽다.

브런치를 처음 만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유지해오던 'Rainbow'라는 닉네임을 본명으로 바꾸고,

라이프 아티스트라는 말을 소개글에 써넣는 유치 찬란한 내 모습이 조금은 -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퇴사를 결심한 오조 오억 개의 이유 중에 '인간 조윤성'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 있었는데, 지난 2년간 그 '인간'자리에 어떤 직업을 넣어야 할지 망설였다. 그게 작가 일지, 화가 일지, 선생님일지, 대표일지, 기획자여야 할지.

대충 우겨보면 그럴싸하긴 해도 막상 하나의 타이틀에 넣고 보면 딱히 어울리지 않았다. 작가라기에는 글을 모르고, 화가라기에는 그림을 모르고, 대표라기에는 사업을 모르고, 선생님이라기에는 교육을 모르니까.

실패와 실수가 두려운 나는 뭐 하나에 '몰빵'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가 보다.

20대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를 '____ 조윤성'으로 만들어 줄 일을 찾아 헤맸고, 아직도 그 과정이 ing라는 게 불쑥불쑥 나를 힘들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나를 옭아매는 굴레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기는 이동영 작가님이 진행한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남는 법]에 대한 강의 었다. 작년 봄 퇴사 학교 정규 강의를 수강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동영 작가님은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 짧은 강의 동안 느끼고 배운 것이 많아 링크를 남기지 않을 수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 2시간을 꽉 채워,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한 깨달음은,


이제 더 이상 멀티 페르소나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회사원 시절 나에게는 참 많은 가면이 필요했다. 혹시 술과 남자와 각종 연애사로 얼룩진 소설을 아는 사람이 볼까 봐 창피했고, 파티나 마켓을 열기 위해 카페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투잡'과 '취미'의 경계가 들통나는 것도 싫었으며, 주말 내내 즐기는 페스티벌과 나이트라이프가 회사원 조윤성과 연결되는 것도 껄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도 조금, 인스타도 조금, 브런치도 조금, 조금씩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완성의 여러 가면을 양손 가득 움켜쥔 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못하는 철부지. 직업의 선택지를 두고 끙끙대는 지금과 꼭 닮았다. 그냥 그 모든 색깔을 조윤성이라는 사람 하나에 몽땅 털어놓아 버리면 되는 것을. 불리는 직업이 뭐 그리 대수라고.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클래스를 하지만.

글도 쓰면서, 그림도 그리면서, 클래스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다.

아니 그리고 있으면 좀 어때, 나는 세상에 나 하나뿐인 것을.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가는 노하우도 인상적이었고,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도 좋았으며,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에 대한 코칭도 훌륭했지만 -

개인적으로는 나답게 살아갈 첫날이 된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일기인 듯 홍보글인 듯 후기인듯한 조윤성의 첫 글은 여기까지 -!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라이프 아티스트 조윤성]  

 010 7229 9897

 yscho@meahproject.com

 https://blog.naver.com/feys514

https://www.instagram.com/514FI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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