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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19. 2020

책갈피가 붙잡는 것은 페이지 한 장이 아니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생각

책갈피는 책을 읽다가 덮을 때 필요한 도구다.
다음 번에 어디서부터 읽어야하는 지 알려주는 체크 포인트 역할을 한다.

하늘 아래 똑같은 책갈피가 하나도 없어서, 명언이 적혀있기도 하고 그림 문양이 들어가기도 한다.

Behance @ARTETIC GD



형태 자체에 재미를 준 책갈피들도 있다. 꽂아두었을 때 종이 위에 세모, 네모, 동그라미 모양이 생긴다.



Behance @O.OO Design & Risograph ROOM


    이런 디자인들은 '예쁘다.'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 좋다는 - 말 자체의 뜻처럼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웃을 일 없는 요즘 같은 때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 지 모른다. 

예쁜 디자인에 열을 올리다보면 어느 순간  주변이 아름다움 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미안이 상향 평준화 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는 자연스레 기능적인 면에 관심을 쏟게 된다. 더 편하게, 더 쉽게, 더 빠르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똑똑한 디자인. 

생활에 유익을 주는 디자인을 위해서는 해당 상품, 또는 서비스가 적용될 상황의 불편함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5개로 쪼갤 수 있는 책갈피처럼.


Behance @Goteborgstrycheriet


좋은 책일 수록 한 번에 소화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정의하는 '좋은 책'은  읽고, 사색하고, 다시 돌아와서 또 읽고, 다음에 이 문장이 필요할 경우를 위해 체크해두고 - 의 과정이 반복되는 책이다. 그래서 나의 최애 도서들은 몹시 지저분하다. 사방 팔방이 접혀있고 형광펜도 여기 저기 그어져있고 포스트잇도 덕지덕지 붙어 있다. 나같이 요란하게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1부터 5까지 컬러별로 나누어져 있는 책갈피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디자인의 개념이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창조물이라는 점에 비추어서 '여러 개의 페이지를 한 눈에 보게 해주는' 책갈피는 퍽 유용한 공업 디자인의 산물로 보인다, 책을 한 번 펼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서 바닥으로 허리를 굽히는 사태를 만들지 않는다면.


그런데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책에 끼워둔 카드가 떨어지거나, 펜이 떨어지거나, 포스트잇이 떨어지거나. 그 때마다 독서의 흐름이 끊긴다. 방금까지 나를 동기 부여 하던 실리콘 밸리의 CEO들은 어디가고 칠칠치 못하게 펜이나 흘리고 있는 현실 조윤성을 보게 된다. 그 때의 '현타감'이란. 

고로 나에게 자석으로 고정되는 책갈피는 신박함 그 자체 였다.



가죽으로 된 것도 좋고, 색깔이 아기자기 다양해서 다이어리 꾸미기용으로 좋은 것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 유용한 것은 펜 잃어버릴 일이 없다는 점이다. 착붙는 책갈피를 만든 사람은 어느 울적한 날 서점에 들러 책을 읽다가 하필 펜이 없어 허탈했던 경험이 디자인의 출발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계기]에 몹시 공감이 갔다.

지긋지긋하게 힘들었던 아홉수의 날들 중에 나를 땅끝까지 끄집고 내려갔던 도화선은 3번 파기된 계약도 아니었고, 돈 내놓으라는 문자도 아니었다. 수많은 일을 허덕허덕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인지 세무서에 잘못 가져간 인감 도장. 분명히 확인 한다고 했는데 빠트린 서류. 그래서 두 번 걸음을 해야하는 일정의 낭비.

그런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들이 나를 무너지게 했다. 


큰 일을 하겠다고 애쓰면 뭘해, 작은 것 하나 못 챙기면서.


그 자책의 소리가 큼직한 세상의 공격보다 아팠다.

펜 하나 안 보인다고 다이어리를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못 읽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이따금 생기는 빈틈에 무너지지 않을 예방 장치들을 만들어 두는 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좋은 디자인이 챙기는 건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전부가 아닌가 보다.



편리함은 기본, 세련됨도 갖춘 가죽 책갈피는 텀블벅에서 27일까지 펀딩중이다.

한참 우울했을 때 손 붙잡고 응원해주던 분의 프로젝트라 더 애정이 가는 건 안비밀.


https://bit.ly/2vGsfgJ





당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Life Artist
조윤성

yscho@meahproject.com

010 7229 9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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