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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20. 2020

볼로냐일러스트 심사에서 찾은 '좋은 콘텐츠'의 조건 3

결론: 쉬지 마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을 보기 위해서 어제 일정을 종일 비웠었다. 

SM상을 수상한 사라 마제티의 '엘사의 보석'을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고, 에르메스 스카프를 작업한 얀베이직의 미로같은 디테일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세계가 인정하는 '훌륭한 일러스트'의 조건이 알고 싶었다.

한 곳에 모여 있는 그림들을 보면 실마리를 얻게 되지 않을까. 


원화전은 6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는데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11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도슨트가 열리는데 다행히 1시 7분에 도착해서 들을 수 있었다. 단정한 여자분이 일러스트에 숨은 이야기를 설명해주신다. 한 장의 그림에 숨긴 기승전결이 재미있다. 작가에 대한 소개와 일러스트가 갖는 의미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품 중간 중간에 '심사위원의 관점' 이라는 텍스트 포스터가 걸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작품과 도슨트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내용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좋은 일러스트뿐 아니라 '좋은 콘텐츠'에 대한 의문점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심사위원은 좋은 일러스트의 특징으로 '개성'을 꼽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있는지, 작가만의 세계관으로 그려낸 그림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통찰을 하게 하는지 - 잘 그려내는 스킬보다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심사위원이 책의 운명에 대해 정의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책에 있어서 최악의 운명은 단순히 '또 하나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콘텐츠는 정말 고약하다. 냉정하고 수준높은 감상자들은 충분히 숙성되지 못한 작품을 '좋아요' 하지도, '팔로우'하지도 않을 것이다. 창작자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 무관심에 놓이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시간과 노력을 쏟아 만든 콘텐츠가 홀대받는 것만큼 안타깝고 자존심상하는 일이 없다. [ONE OF THEM]을 넘어 [ONLY ONE]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할까?

볼로냐 원화전 심사위원의 말에서 힌트를 찾아보았다.



따뜻한 인상을 주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속 작품들 일부



Q.일러스트레이터 전시에 선정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보는 이를 자극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게 하는지 등입니다.  


상상력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어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중 하나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며, 춥고 배고픈 현실을 풍요롭고 편안한 내일로 바꾸어 갈 해결책을 발견한다.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은 삶을 정의하는 관점을 확장시키거나 변화시키는 것이다. 터널시야에 빠져있던 사람이 희망을 얻고, 오만한 태도로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던 사람이 반성하게 하는 작품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Q. 제출된 작품을 검토할 때, 어떤 반복적인 주제가 있었나요?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들이 있었나요?

A. …피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을 따라하고 반복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이러한 자세(연구와 관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 답변 서두에는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주제들이 언급되어 있었다. 흔히 '요즘 인기있는' 테마들이라고 할 수 있다. - 동물이라던지 환경이라던지. - 그 주제를 보다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애쓰는 창작자들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말로 답변은 마무리 된다. 심사위원은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의 특징으로 '연구와 관찰'을 꼽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따라하고 반복한다'는 표현을 썼다. 

카피는 왜 발생하는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모방은 내가 자신없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온 몸으로 경험해서 세포가 기억하는데 굳이 타인의 결과가 뭐 그리 중요할까.

 꽃을 그리는 사람들은 꽃만 보는게 아니라 그 꽃이 피어나는 계절, 꽃말, 유독 이 꽃을 좋아하는 새와 벌레의 종류까지 본다. 그래야 더 생동감있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 3때 선생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눈 감아도 그릴만큼 관찰을 해, 관찰을!"




Q.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나요? 

A. …나는 반복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예술가의 능력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창의적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얼마전 골목식당 팥칼국수 사장님에게 백종원씨가 쌍심지를 켜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쉬면서,놀면서) 음식 장사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매일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고, 식사하는 홀에 먼지 하나 없게 깨끗히 청소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설명하면서 판매 하다 보면 허리 펴고 앉을 새도 없을 것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심사위원도 백선생님과 비슷한 대답을 남기고 있다. 반복을 피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이, 음식장사 뿐 아니라 '예술가의 창의적 미덕'에 해당한다니 이 얼마나 센세이션한가. 

흔히 아티스트스럽다,고 하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계를 감동시키는 작가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이 써지든 안써지든 꼬박 두 세시간씩 글을 쓰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영감을 얻기만 하는 것 같은 디자이너들도 시즌에는 밤잠은 물론 식사도 거른 채 작업에 골몰한다. 


열정과 성실은 예술에서도 그냥 기본이다.

좋은 일러스트라고 해서 '무슨 색을 많이 쓰나' 수준으로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도전하는 시간부터 늘려야겠다. 






당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Life Artist
조윤성

yscho@meahproj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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