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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Mar 03. 2020

결혼이라는 동기부여

시집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당산역에서 조금 떨어진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홀짝이며 어제는 뭘 했는지 오늘은 뭘 할 건지, 천일 전과 별 다를 게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거라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13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서 평소보다 조금 신경을 쓴 머리와 화장 정도.


"이사 준비는 다 했어?"


"거의."


남자 친구는 내일이면 아산으로 이사를 간다. 코로나로 개학이 미뤄졌다고는 하지만 선생님은 출근을 한단다. 하루 만에 충청도 사람으로 새 출발을 한다는 게,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참 안 믿긴다.


"으... 이상하군."


"나도 실감이 안 나."


임용 합격 발표가 난 다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다. 코로나 덕분에 명목상 공방 주인인 나는 실질적으로는 거의 백수가 되었으므로. 이케아에서 가구를 보기도 하고, 아웃렛에서 선생님 복장을 사기도 했다. 연애 초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속은 시끄러웠지만 몸은 편했다. 그런데 내일이면 핑크빛 데이트도 끝이다. 다시 원래의 우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평일과 주말의 데이트.

나는 그런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너는 이제 어떡하지?"


"나? 뭘"


"지역을 옮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대. 충남이면 정년까지 충남에 있는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천안 아산 이 쪽에 8년 있을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4년, 그리고 다시 천안. 이렇게 몇 번 반복하면 퇴임하는 거야."


아.

8년, 그리고 4년, 다시 8년이면 벌써 20년이다. 세 문장으로 50대가 성큼 다가온다.

충청도에 머무는 남자 친구의 20년 동안 나는, 계속 연남동 미아 아트 사장님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런 거대한 미래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음...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의 나였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우리'를 꿈꿔볼 수 있었을까.

아니, 그냥 직장인 조윤성이었다면 그랬을까. 모르겠다.

예약은커녕 문의도 뚝 끊긴, 어디에 뭔가를 홍보 하기에도 민망한 요즘 같은 시기에 미래라고 하는 것은 너무, 멀고 희뿌옇다. 물론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만 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강제로 미래에 대해 계획하게 되는 가장 좋은 시기이기에 감사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대학원이라던가.


"그.. 내가 대학원 생각이 있다고 했었잖아. 5월 11월 원서 접수하더라고.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입학이 된다고 하면.. 졸업하면 서른셋. 그때 가도 안 늦지 않나?"


천안에 간다는 말이었다. 아니, 결혼을 간다는 말이었을까?

나도 그 목적어가 정확히 뭐였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계획에 없으시구먼."


아, 이래서 한국말은 주어와, 목적어가 명확해야 한다.

결혼 생각을 해도 현기증이 나는데 아이라니요.


"우리 엄마도 남동생 30대 중반에 낳았는걸."


잠시 침묵.

사실 엄마의 노산은 핑계다. 나는 그저, 아직도 결혼이나 대학원이나, 육아나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인데. 마치 남의 인생을 보는 것처럼 누가 어떻게 결정 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스타벅스에는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남자 친구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스스로에게 속마음을 들킨 나만, 마른침을 삼켰다.

결정과 계획은 -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대화를 잇는다.


"... 아니면 대학원 다니면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너 한 한기 휴학해야 될 걸. 일반 대학원 다니면서 결혼 준비 못해. 엄청 바빠."


"결혼.. 준비 그렇게 할 게 많나?"


"아니 그래도 아무 데나 전화해서 '저희 결혼하려고 하는데요' 할 수는 없잖아. 그.. 스드메 그런 것도 알아봐야 하고."


결혼 준비.

우리 사이에 '결혼'이라는 주제가 떨어진 건 정확히는 지난주 토요일 저녁, 나의 입에서였다. 친구의 결혼식장을 나오면서 서른아홉 번쯤 째 듣는 '너희는 결혼 언제 해'에 진저리를 치며 남자 친구를 붙잡은 것이다.


'나랑 결혼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닌데

아까도 들었겠지만 정말, 이 질문이 너무 지겨워서 말이야.

나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돼?'


'결혼, 하지. 해야지.'


'응, 나도 알아 하겠지 너도, 나도.

근데 그 신부가 나냐고.'


'응, 너랑 해야지.'


'그래.'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때 되면 다시 이야기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단어가 귀소본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일주일 만에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나는 아직도 부산 라운지 바에서 춤을 추던 때와 비슷한 철부지인데.

나는 아직도 맞은편에서 다트를 던지던 시커먼 남자를 잘 모르겠는데.


"스드메... 그래. 잘 모르겠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정말 상상이 안 간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상상할 때가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음 달 공방 월세가 더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박수를 치며 이 주제를 테이블에서 털어낸다.


"일단, 이 이야기는 여름에 다시 해. 내가 열심히 이것저것 해볼게."


남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ok사인을 만든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월급이라고 할만한 게 있어야 결혼도 하니까."


"맞아."


관계에 필연적으로 끼어드는 이 '돈'이라는 지긋지긋함이 답답하다. 그냥 삼키려던 말이 성질대로 나와버렸다.


"내가 안정적인 직장인이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이라서 어떡해."


"괜찮아, 좋아."


"뭐가 좋아."


"사업하는 게 멀리 보면 더 좋지. 너는 하고 싶은 걸 해."


무슨 속마음인지 모르지만 남자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멀리 보면 좋은 상황, 그게 남자 친구 눈에는 보이는 걸까.

믿어주는 말이 고맙고, 미안하다.


퇴사를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스타벅스에 앉은 나는 조금 아쉬웠다.

노산이고 무책임이고는 다 핑계고, 그냥 지금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내가 미운 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적령기에 함께 있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는 말이 덜컥 떠오른다.

최고의 짝꿍들도 너무 일찍 만나거나 너무 늦게 만나면, 맺어지지 못한다고.

나는 남자 친구와 참 좋은 평생 친구가 될 것 같은데

때라는 게 어긋나서 놓칠까 봐 겁이 난다, 아주 조금은.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시퍼런 다짐을 했다.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든 코로나고 나발이고를 이겨내겠어.

결혼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여자에게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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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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