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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Mar 04. 2020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고작 한편의 글이 갖는, 힘.

3월은 시작의 마지노선이다.


1월을 파이팅 넘치게 시작했지만

다이어트며 6시 기상이며 오만 좋은 것들은 2월 칼바람에 유야무야 돼버렸고

3월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꼼짝없는 '리얼 새해'의 등장에 마음이 분주해진다.

봄을 봄답게 맞아보려면, 미루고 있을 시간이 없다.


머리로는 정말 잘 아는데 몸이 완전 제멋대로라 속이 상했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어서 미라클 모닝 모임까지 들어갔는데 일어나서 양치하고  움직이다가 다시 잠들어 버리질 않나,

오늘은 새벽에 잠깐 눈 뜨는 양심도 잊고 8시까지 쿨쿨 잤다.

왜 다시 잠들어버렸는가 하면 -


개강이 한 주 더 미뤄졌다는데.

확진자가 5천 명이 넘어갔다는데.


아무 변화도 없는데 또,

기를 쓰며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책을 읽히고

운동을 시키고 오늘과 완전히 다른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일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럴수록 힘을 내서 하루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하루들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것이, 실패를 직면하는 것보다 덜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래서야 되겠나 싶어 선택한 노란 책.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지 좀 된 책인데 이제야 펼친 이유는, 뻔한 내용을 들이밀며 왜 너는 이렇게 못 사니, 하는 책일까 봐서였다.

하지만, 3월이니까.

게다가, 코로나의 3월이니까.

삶을 바꿀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노란 책을 부여잡은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는 저자의 진심을 오해한 것이 많이 미안해졌다.


저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우선 '정체성 중심 사고'를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습관을 시작하는 법 두 가지와 지속하는 법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단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정체성 중심으로 습관을 바라보는 것은 '저 멀리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시적인 습관'과 차원이 다르다.

글쓰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면 -  나는 '매일 글쓰기'를 2월부터 시작했다. 간간히 빼먹는 날도 꽤 많지만, 마음을 먹기 전보다는 확실히 더 자주 쓰고 있다.

이 습관의 목표는, 책 한 권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분명한 목표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목표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나를 몰아붙인다. 도대체 언제 쓸 거야, 왜 이렇게 못써! 혼내지를 않나,

매일 일정한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돌덩이처럼 마음이 무겁다.

책이 먼저인가, 글이 먼저인가.

나는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사용하는 사람이라서,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할 때 글을 쓰는 '습관'은 지겨운 속박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하는 고마운 도구가 된다.

이 관점이 나를 굉장히 자유롭게 했다.


정체성 중심의 사고를 탑재하고 '습관을 시작하는 법'을 읽기 시작하니  흡수가 빨랐다. 아니, 솔직히는 다음 장,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습관을 시작하는 법, 이라는 말은 책에 없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이 신호-열망에 의한 반응-보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 착안해서 편의상 두 단계로 나누었다.


좋은 습관을 시작할 때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분명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만들 것.


분명하다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디테일한 계획은 '언제 한 번 봐'처럼 모호한 약속을 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인데 문득 나는 삶을 바꿀 좋은 습관의 리스트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적어놓았었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이어리에 분명한 습관의 문장을 적어 보았다.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기지개를 켜고 물 한잔을 마신다.]


좋아. 벌써부터 아침형 인간이 된 기분이다.

그런데 영 기대가 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저녁 6시에 남자 친구와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이러면 굉장히 설레는데 아침 6시의 물 한잔은 매력 포인트가 1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좋은 습관은 그렇게 '당기지 않게' 생겨먹었다. 그래서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짝을 지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가운 팩을 얼굴에 붙이는 일. 그렇다면 매일 아침 6시에 물 한 잔을 마시면서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팩을 붙여볼까.

음, 이러면 아침 물 마시기가 조금 상쾌하게 느껴질 것 같다. 고작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가는 게 아니라 무려 팩을 붙이러 가는 거니까.


이런 식으로 우리는 좋은 습관을 '일단 시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속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겨우 3일 유지한 습관을 1년, 10년 끌고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하기 쉽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편리미엄'이라는 말로 편리함이 갖는 프리미엄을 정의했다. 우리는 더 쉽고 편한 일을 선택하려고 한다. 전기장판에 눕는 일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제치고 일어나는 것보다 당연히 귀찮다. 그래서 환경을 바꿔야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일어나기 좋은 조도가 되도록 은은한 무드등을 켜고 자던지, 전기장판에 타이머를 맞춰서 일어날 때쯤에는 이불속 온도와 방 전체 온도를 비슷하게 만들던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교적 편리하게 환경을 바꿔도 차가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경험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일 필요가 있다. 이건 내가 금연할 때 많이 쓰던 방법이기도 한데, '지금만 참고 저녁에  거야'라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좋은 습관의 관점으로 바꿔보면 '딱 5분만 운동할 거야. 그러고 나서는 집에 올 거임'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사람의 행동에는 관성이 있어서 막상 운동을 시작하면 5분만 하고 멈추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5분도 반복하면 50분이 된다.


 책에는 이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례와 과학적인 이론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덕분에 아주 친절하게  습관의 길로 안내한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중요한 건 내용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어떤 것이 좋은 습관인 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보니, 나의 정체성을 이름 붙이고 잘할 수 있는 습관들을 정해주는 일이 남았다. 좋은 습관들로 살아내다 보면 분명히 어제보다 나은 내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런데 나에게 맞는 습관을 결정하는 것이 참 어렵다.

나에게도 분명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조금만 꾸준히 해내면 큰 성과를 내는 습관이 있을 텐데

어떤 것이 이 지긋지긋한 무기력에서 나를 꺼낼지는, 정말 모르겠다. 


누구도 대신 빛을 비춰줄 수 없고

내 속을 샅샅이 뒤져도 촛불 하나 발견할 수 없다.

도저히 뭐가 최고의 선택인지 모르겠어서

글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쓴다는 하나의 능력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매일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는 것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모른다.

갑자기 외계인이 침공할지도 모르고,

화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오늘과 똑같이 마스크를 쓰고 멍하니 앉아있을지도.


그래도 최소한 수십 개의 글은 남는다.

오늘의 감정과 생각을 담은 진솔한 문장들.

세상을 바꾸는 일들이 하나의 문장에서 일어난 사례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문장 하나하나들이 다시 나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떨고 다시 한 발 한 발 걷게 할지도.


막막한 마음으로 첫 문장을 썼던 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한 편의 글만큼은 게으름에서 멀어진 것 아닌가.

그것으로 됐다. 잘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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