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지겨울 때, 그릿 (GRIT) 합시다.

by 윤성씨

내가 그릿을 처음 만난 것은 이랜드 홍보실 사원이던 2016년 늦가을이었다. 회사에서 선물해준 책이 너무 두껍다고 투덜대던 것을 기억한다. 필독서라서 한 번 스치듯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노력과 끈기를 이해하고 적용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무한대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혼자 계획하고 허물기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마윈의 말처럼, 교수보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장님보다 적게 일했던 나에게 그릿은 적나라한 거울같이 불편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다시 그릿인가, 하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은 지난 한 주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컸다. 정체성을 바꿔 적어 보고, 알림을 수없이 맞춰 놓고, 목표를 세웠는데-나는 여전히 늦잠을 자고, 계획의 반도 마치지 못했다.
자신감에 가득 찼던 사람이 실패하면 좌절감이 더 크다고 했던가. 진득한 패배감은 등산을 다녀와도 사라지지 않았다. 햇살이 묵직하게 내리쬐는 오후 3시, 내가 그렇지 뭐, 하는 마음으로 온라인 예배에 접속했는데 - 목사님이 무슨 계시처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닌가.

'실패와 좌절에 직면한 사람,
의지만으로 안된다는 것에 낙담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전데요?
말씀의 요지는 기도와 믿음에 대한 것이었지만, 설교 말머리에 추천하신 책이 그릿,이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4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릿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책은 그릿이 무엇인 지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릿은 사전적으로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를 아우르는 개념인데 저자가 말하는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를 명확하게 명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과 결합된 끈기, 로 요약되는 그릿은 교육, 비즈니스, 혹독한 군사 훈련 등 다양한 필드에서 고통을 버티고 성공을 획득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 것은 타고난 재능의 영역으로 생각되는 예술 및 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재능 예찬론에 익숙한 우리로서 이 주장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재능의 절대성을 높게 쳐주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재능을 신격화함으로써 경쟁심으로부터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재능은 성공의 필수요건이 아니며, 노력이 재능보다 두 배 더 중요하다.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많은 사례들이 제시되는데 라인업이 탁월하다. 난독증이었던 소설가 존 어빙, 1만 개 이상의 도자기를 만든 매캔지, 윌 스미스뿐 아니라 다윈과 니체도 등장한다.
니체는 말했다.

"소질과 타고난 재능에 대해 말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 거의 없어도 위인이 된 이들을 여럿 들 수 있다. 그들은 탁월한 솜씨를 배워서 천재가 되었다."

수 세기 후, 윌 스미스는 이와 일맥상통하는 말을 한다.

"재능과 기술은 두각을 나타내려고 노력하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개념들 중의 하나입니다.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기술은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다듬을 때만 향상됩니다."

재능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개발하지 않으면 잠재력에 불과하다. 역사 속 인물들의 '노력론'과 더불어 앤절라는 그녀가 10년간 성취 이론을 고민한 끝에 완성한 '재능이 성취에 이르는 과정'을 단순한 등식 두 가지로 제안한다.



어떤 단계에서고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노력은 열정과 결합된 끈기 즉, 그릿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재능보다 그릿이 중요하다는 것은 ok 인정, 알겠고 -
그렇다면 내 그릿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우리를 위해 앤절라는 친절하게 10개 문항으로 구성된 그릿 측정지표까지 제공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테스트를 해봤는데,
나의 그릿 점수는 5점 만점에 꼴랑 3.3점.
특히 열정 점수가 2.6점으로 굉장히 낮다.

아니,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게 내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반에 겨우 미치는 2.6점이라고?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책은 열정의 참의미를 설명한다. 단순히 관심을 갖는 수준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상위 목표에 성실하게 관심을 두는 마음이, 열정이라고 말이다. 열정에 대한 나의 오해는 앤절라를 찾아왔던 한 벤처 창업가와 비슷하다.



꾸준히 한 가지에 몰입하는 힘.
그러고 보면 퇴사 후, 아니, 퇴사 전에도 나는 참 부지런히 여러 가지에 공을 들였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묶는 깊고 탄탄한 뿌리는, 없었다. 지금 내가 애정과 관심을 쏟는 그 일이 궁극적으로 완성해 낼 청사진이 무엇인 지 아는 것. 열정은 우선순위를 솎아내고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영리함이지, 하룻밤 뜨겁게 터지고 식어버리는 폭죽이 아니다. 목적지 없이 산발적으로 터지는 불꽃은 열정도, 끈기도 아닌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릿다운 열정은 어떻게 발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워런 버핏이 전용기 조종사에게 해 준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워런 버핏이 전용기 조종사에게 '당신에게는 전용기를 운전하는 것보다 큰 꿈이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조종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버핏은 우선순위를 세우는 세 가지 방법을 이야기한다. 앤절라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스스로 해보고, 그릿다운 열정으로 우선순위를 정리하기 위해 한 가지 단계를 추가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직업상 목표 25개를 쓴다. (버핏의 제안)
2. 자신을 성찰해 가면서 그중에 가장 중요한 목표에 동그라미를 친다. 반드시 5개만 골라야 한다. (버핏의 제안)
3. 이 목표들이 공동목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스스로 에에 묻도록 한다. 궁극적 관심을 지향할수록 열정이 집중된다. (앤절라의 추가)
4. 동그라미를 치지 않은 20개의 목표를 찬찬히 살핀다. 그 20개는 당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할 일이다. (버핏의 제안)

앤절라가 우선순위 단계의 세 번째에 본인의 제안을 넣도록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두 위대한 인생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 트리를 그려보면서 세 번째에 앤절라의 제안이 들어가는 것이 다시 우선순위를 수정하며 작성하기에 용이해서 위와 같이 정리했다.

여기까지가 책의 1/3에 해당한다.
이미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인데 이제 시작이라니.
과연 TED 강의에서 1천만 뷰를 달성할만하다.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렇게 중요한 그릿을 도대체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가? 3.3점밖에 안 되는 나도 앤절라처럼 4.6점 그릿러가 될 수 있을까?

감사하게도 그녀는 누구나 그릿을 개발할 수 있다고 안심시키며 네 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첫 번째는 관심이다. 올바른 열정은 즐기는 것에서 나온다. 천재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관심을 가지며 즐기는 사람은 말한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해!"

두 번째는 연습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매일 1%씩 발전하면 1년 후 37배 발전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 지금보다 나아질 내일을 기대하며 제대로 된 반복연습을 해야 한다.

세 번째는 목적이다. 단순히 흥미 수준의 의지로는 전문가 수준에 이르기까지 끈기를 낼 수 없다. 개인의 흥미와 타인의 안녕이 결합된 부분을 찾아낼 때, 우리는 확신에 차서 성실할 수 있다. "내 일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중요하니까요."

마지막은 희망인데 - 희망은 모든 과정에서 발현된다. 위기에 대처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릿의 추천사를 쓴 최인철 교수의 회복탄력성에서도 강조된다. 낙담하기보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긍정성.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느껴졌다.

책의 말미에는 그릿을 통해 양육하는 방법과 그릿을 만드는 문화도 소개된다. 그릿 점수 3.3점인 초짜가 범접할 내용은 아니지만 마지막 장에서 앤젤라가 응원하는 것처럼 그릿을 향상한 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나는 무한한 격려와 따스한 에너지로 안아주는 책을 좋아하는데 그릿의 마지막은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 모습은,

퇴사 후 2년 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애써 마음을 잡아 문을 연 치유 미술 공방에 때마침 찾아온 코로나를 탓하는 무력함으로 웅크린 애벌레 같다.

이대로 땅 속에 파묻혀 쿨쿨 잠을 자다가 화석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있는 봄날을 향해 기지개를 켜다가 나비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미래도 혼자서 찾아오지 않는다.

그냥 넋 놓고 조금씩 굳어가는 것보다는 500m 땅굴 속에 파묻혀 있더라도 잔디밭을 향한 꼼지락이 낫겠다.

천만 명에게 박수를 받은 앤절라가 4년 전에 던진 위로와 격려를 이제야 깨달았으니, 다시 심기일전해서 월요일을 맞아봐야지.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다가, 혹은 시작했다가 지루해서 노력할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아서 - 포기한 경험이 있는 분.
포기를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능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이런 분들은 패스!
끈기와 성실에 자부심이 있는 분.
끊임없이 도전하고 서서히 목적의식을 발전시키는 일에 익숙한 분.
열정과 끈기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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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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