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안전한 흙색이 필요한 밤

by 윤성씨

세 번 넘게 반복해서 읽은 책들이 몇 권 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 당연하지만 해리포터 (특히 마법의 돌),
그리고 펄벅의 대지.


대지(The good earth)는 인생에 대해 질문하게 될 때 생각나는 책이다. 이 대서사시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는 왕룽이라는 시골 아저씨가 결혼을 하고 부자가 되고 아들을 낳고 죽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판타지 같았다. 열다섯 소녀에게는 결혼과 일, 육아와 부양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면면들이 막연했던 것이다. 스무 살에 다시 읽었을 때는 우직한 조강지처보다 철없는 기생이 낫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고, 스물넷에는 ‘나도 왕룽처럼 성실하면 황 대감집 땅을 살만큼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그렇게 다양한 인생사가 말도 없고 들썩임도 없는 투박한 흙 위에서 펼쳐진다.

‘다정한 흙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고

그가 흙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 펄벅의 대지 중에서 –

태초부터 바다 위에 흩뿌려져 있던 흙은 서두르지 않는다. 재촉하지 않으니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해서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기 일쑤다. 이따금씩 눈길을 주어도 그 위에 피어난 꽃이나, 그 아래 꿈틀대는 지렁이에게였지 큼직한 갈색의 덩어리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대지는 그렇게 묵묵히 지구의 오만 것들을 들쳐 메고 있는 것이다. 흙이 그러하기에 갈색이 주는 의미도 비슷하다. 검소하고 편안하며, 우직하고 따뜻한 색.


조지 클로젠 / 울고있는 젊은이


여자는 흙에 얼굴을 대고 울고 있다.

[그림의 힘]에서는 스트레스 상담자들이 이 그림을 보면 그렇게 눈물을 펑펑 흘린다고 한다. 어쩌면 울기 위해 이 그림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쁘게 또록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온 몸으로 토해내는 울음은 카타르시스가 있어서, 그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니까. 가슴을 치며 울어본 적 있는 사람은 김선현 교수의 코멘트에 공감할 것이다.


촉촉해지는 눈시울로 그림을 보다가 여자의 무릎이 닿은 땅에 눈길이 간다. 이 널찍한 바닥이 차디찬 바닷물이나, 곱게 핀 민들레 위였다면 어땠을까. 나의 경우에는 통곡 이후의 시간이 걱정스럽다. 파랑은 안 그래도 식을 대로 식은 그녀의 체온을 얼려버릴 테고, 노랑은 수다스럽게 종알거리면서 슬픔을 한결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어둡지만 단단한 흙빛은 담담하게 눈물을 머금었다가 훌쩍임을 그친 여인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나도 여기서 너와 함께 울었어’하며 고동색 얼룩 자욱을 내어줄 것이다.


일주일의 절반을 살아낸 수요일 밤. 마음 한켠에 갈색의 텃밭을 만들자. 피곤에 찌든 퇴근길과 복잡 다난한 세상사를, 행여 걱정할까 싶어 사랑하는 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밤에는 그 안전한 흙 위에 앉아서 위로받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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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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