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반고흐 하면 아직도 그 짙은 남청과 해사한 노랑만 떠오른다.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죽음같이 깊은 파랑과 현실에서 너무 멀어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 노랑을 보며 고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년동안 1천여점의 작품을 그린, 오래도록 사랑받지만 지독하게 가난했던 화가.
나는 감히 그 진한 슬픔과 깊은 열정을 반의 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그의 풍경화가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 작품을 전시하면서 '마지막 허풍(Final gasp)' 이라는 표현을 썼다.
[녹색 밀밭, 오베르.] 라는 제목을 가진 청량한 풍경화는 고흐가 죽기 몇 달 전에 완성되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고흐는 죽음의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자연의 생명력을 담았다.
진득한 임파스토 기법으로 표현된 구름과 밀밭의 춤사위는 누워있던 사람도 깨울 것 같이 출렁인다.
노랑과 초록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연두는 이제 막 흙을 훔치고 일어난 새싹의 색이다.
피어나는 이파리, 돋아나는 새순. 연두에는 세상 모든 '시작'을 담은 생명력이 있다.
고흐는 이 아름다운 한낮, 오베르의 밀밭에서 유독 연두를 고집스레 담아냈다.
산모에게 필요한 음식이 당기듯, 뼛속까지 예술가였던 그에게 연한 이파리가 끌린 이유를 생에 대한 갈망으로 보면 너무 잔인할까.
몸과 마음의 병이 죽음을 암시할 때
스스로에게 난 괜찮아, 괜찮을거야. 다독였을 고흐가
위대하고, 측은하다.
final gasp에서 출발한 생각이지만, 부디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조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에는 '내가 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정원사가 되었을거야'라고 했던 모네의 그림이다.
모네는 연못과, 일본풍 다리와, 특히 꽃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그 모든 것이 한데 담긴 정원을 좋아했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가난하게 살던 모네는 쉰살이 넘어가면서 그림값이 많이 오른다. 덕분에 정원을 가꾸고 지인들을 초대하는 여유로운 화가의 말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수련 연못, 일본다리]는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모네가 그린 풍경화 중 하나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의 풍경.
화가의 시야로 이 한가로운 연못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 평화롭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앉은 자리에서 빛의 풍경을 그려낸 인상파의 거장, 모네는 이 찰나를 담아내기 위해 오후 두 세시 경 연못 앞에 앉았으리라. 이 완벽한 햇살이 지나갈새라 파레트에서 물감을 섞는 찰나도 아쉬워하며 캔버스 위로 바쁘게 붓을 놀렸을 것이다.
화가의 마음은 무척 바빴을텐데 그림은 이토록 잔잔하다니, 아이러니하다.
혹은 다급함도 잠재울만큼 그 신록의 편안함이 무성했을까.
두 사람은 같은 '연두'를 그렸지만 주는 에너지가 사뭇 다르다.
고흐의 풀들이 '나 살아있어요!' 외치는 중이라면 모네의 풀들은 여유롭게 호흡한다.
고흐의 밀밭은 100m 달리기하는 어린이들마냥 겅중겅중 달려가고
모네의 나무는 스물의 싱그러움에 설명이 필요없듯 유유자적하게 햇살아래 맨얼굴을 드러낸다.
벅찬 생동감과 잔잔한 편안함.
둘 다 불안한 마음에 가장 필요한 약이 아닌가 싶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너무 다독이다가는 무기력해지고,
활기를 억지로 끌어내다가는 제풀에 지쳐버리는 법이니.
정부는 앞으로 14일을 '코로나와의 전쟁기간'으로 선포했다.
그 취지에 깊이 공감하지만 싸늘한 공방을 닦는 마음은 뒤숭숭하다.
하나둘 피어나는 봄꽃마저 불안하게 보이는 3월의 끝자락.
새순이 돋기 시작한 화분 하나 들여놓고 물주기 시작하면 어떨까.
불안마저 잠재울 편안한 생명력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