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까지 늦잠자기 일쑤였고 차를 마실 때면 설탕이 차만큼 많아서 매우 달았다고 한다. 잠깐 일을 할 때면 독일의 제국주의를 확장하는 정책만 통과시켰는데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다.
그의 삶을 처음부터 되짚어보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미대 진학을 꿈꾸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통이 아니었던 학생은 학장을 찾아가 ‘나는 미술계의 거장이 될 사람인데 왜 나를 못 알아보는 거요?’ 항의한다. 당시 그의 그림은 건축물을 그린 정돈된 그림들인데 인상주의 관련 파가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었다면 2차 세계대전 대신 훌륭한 전시회를 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어쨌든 학장은 ‘당신의 그림 스타일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며 차라리 건축과로 진학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한다. 히틀러는 또 그 말에 ‘오, 역시 나는 건축계의 거장이 될 사람인가 보군’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들이 참 재미있다. 그는 한순간도 자신이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인물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 건축물에 푹 빠져 독일로 넘어온 후, 하라는 입시 준비는 안 하고 제국주의, 독일의 위대함을 공부한 세월이 7년이 되도록 그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7년간 백수인 셈인데요!) 오히려 카페에 앉아 마주치는 사람마다 붙잡고 독일이 대단한 이유를 설파하기 바빴단다.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비난해야 할 사람이지만, 그 집요함에는 박수를 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차 대전의 패배로 자신감이 땅에 떨어진 독일인들에게는 히틀러의 위대한 확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처럼 보였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어린아이에게 총칼을 쥐어준다. 헌법이 정한 것 외에도 법을 제정할 수 있고, 집행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권한을. 무엇이 독일 전 국민으로 하여금 어린아이 같고, 법이나 정치에 대해 배운 것 하나 없는 외국인, 히틀러에게 대포를 쥐어주게 했을까.
조심스레 추측하기로는, 그의 ‘자신감’이 아닐까 한다.
확신에 찬 사람의 말은 주변인을 움직인다. 저 사람에게는 뭔가 있어, 그러니까 저렇게 행동하겠지. 사람들은 무언가에 단단히 홀려있는 사람을 믿고, 후원하고, 따라간다. 그 끝에 에베레스트 정상이 있을지, 한강의 기적이 있을지, 전쟁이 있을지는 그다음 일이다. 좋은 지도자를 위해 민족의 선배들이 목숨과 청춘을 바쳤던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일단 리더가 세워지면, 따르기로 결정된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우므로.
수행할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권한이 허락되는 것은 비극이다. 히틀러가 독일 수장이 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을 맡으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업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최소한 작년 4월의 나는 아니었다. 법인 도장의 책임도 모르는 사람이 법인을 세웠고, 고용이 한 사람의 삶을 책임지는 의미임을 모르면서 자그마치 3명의 사람과 일을 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초등학생에게 권총을 안겨준 격이다. 일단 총이 주어졌으니 열심히 쏘아댔다. 세상의 과녁에 맞춰야 했던 총알은 나의 가까운 사람들과, 나에게 사정없이 날아왔다. 장전하는 법도, 조준하는 법도 모르는 채 밀림에 섰으니 바람 한 번 불면 옆 사람에게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내 발을 스스로 밟았다.
그렇게 철저한 피드백의 계절이 끝나갈 때쯤- 눈이 녹았고, 코로나가 왔다.
맨 처음 든 생각은 포기였다. 또다시 자신감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동기부여해가며 밀림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삶을 포기할 용기는 없으므로 사업을 포기해야겠다. 그 타이밍에 문화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서 파트타임 공고가 뜬 것을 보았고, 당차게 지원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준비가 된 채로 앉았든, 실수로 앉았든, 일단 자리에 앉았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앉은자리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에게 ‘다음’은 허락되지 않는다. 히틀러의 자살이 불쑥 떠오른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력을 선한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아주 조금의 노력을 했더라면 역사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오후 2시까지 잠을 자며 신문에서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기사만 골라 읽는 대신에 말이다.
스타트업의 구인 공고에서 떨어진 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질문은 옳았지만 대답은 어려웠다. 자신감이 저기 지하 150층에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뭐라도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작년을 쏟아부어 만든 치유 미술 프로그램을 제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 달은 거기에 완전히 몰입해서 살았다.
이제 이게 정답이었을지, 오답일지, 반만 맞는 답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어제는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님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브랜딩과, 사람과,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에게 글쓰기 모임을 하도록 권해주신 고마운 분인데 나의 에너지가 침잠해 있는 것을 귀신같이 아시더라. 그분의 조언을 하나하나 곱씹어본다. 에너지를 공급할 자원의 필요성, 무엇보다 ‘나’, 라는 사람을 만족 시키키 위해서 내가 할 작은 성취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에 초조했고, 혹시나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도 그놈의 조급증 때문에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까 불안했다. 동시에 방향에 대한 의심, 보다 나라는 개인에게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말씀해주신 조언 내면에 깔린 애정과 관심이 감사했고, 새로이 발견해 갈 나의 모습에 기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복합적인 마음이 마치 - 며칠 전부터 무심결에 흥얼거리게 되는 아이유의 노래 가사 같다.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별 큰일 없이 지나온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그래 볼게.
나의 보폭, 나의 속도. 방향이 맞다면 그걸로 됐다. 다른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태워버릴 과신도 필요 없고 잠시 잠깐 찾아오는 불행에 무너져버릴 자책도 필요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