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초반에 만난 착한 남자친구가 있다. 말도없이 클럽에서 인사불성이 된 나를 데리러 오고,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간 연락이 잘 안되어도 이해해주는 바다같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먼저 이별을 말한 건 나였지만 헤어진 다음날부터 후회라는 병을 오래 앓았다.
물에 빠져봐야 공기가 산소인 줄 안다고,
그 친구의 존재와 사랑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헤어진 후에야 알았다.
분명 그때의 나는 산소같은 사람을 다시는 잃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가까이 있는 것들에 감사하기를 잊고있던 스스로를 발견한다.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사업의 고충을 토로하는 크리스천 대표님들의 모임이 있다. 말수도 없고 숫기도 없으셔서 본인들의 입으로 스스로를 '지박령'이라 표현하시는 분들인데 한 번 모이면 평균 모임시간이 4~5시간이다. 어제는 방역을 하는 날이라 지하철도 1시간 일찍 끊겨서 집에 못 돌아갈 뻔 했다. 3월 한 달을 살아온 이야기, 상반기에 대한 계획,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로 작은 공방을 빼곡히 채우다가. 불현듯 내가 얼마나 뼛속까지 외로워하고 있는 지를 깨달았다. 어느 포인트에서 그 생각이 건드려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대표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들의 말에 나를 투영하고, 공감하며 웃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깨달음이었달까. 회사를 다닐때는 오픈 테이블에 서너명이 함께 앉아서 일하다보니 항상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일들이었고, 퇴사 이후로도 부족한 대표였지만 함께해주는 팀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완전한 '혼자'로 서너달을 살아보니 어느순간 나는 나의 산소였던 사람들 없이 헤엄치고 있더라.
며칠 전 분당에서 한 작가님과 나눈 대화의 참뜻이 그제야 깨달아져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많이 울었다. 함께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나는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공기가 아니라, 산소였던 것들. 그냥 빛이 아니라 온기였던 것들에 대해. 마주 앉은 대표님 한 분은 우리가 함께 몸담고 있는 당산의 코워킹 센터에 자주 나올 것을 권했다. 물론 사람이 부딪히다보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러 저러한 그림자를 덮고도 남을만한 위로와 격려가 있다고.
사람에게 베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 감정의 투닥임이 남긴 기억이 아프게 선명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이 결국은 나를 더 고립되게 했다. 나는 나 혼자서 힘을 얻을 수 있어,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주고 동기부여할 수 있어, 라는 고집에 따스한 손을 내미는 사람, 사람들을 다시 믿어보기로 한다.
좋든 싫든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삶이다.
혼자 치는 박수와 혼자 닦는 눈물보다야 혹시 다시 상처를 받을지언정 이번에는 다를거라고 믿어보는 긍정이 훨씬 낫겠다.
* 마음관리를 위한 아트북 펀딩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