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를 기억하시나요

by 윤성씨

기억하기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조그마한 노트에 꼬물꼬물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굳이 방학숙제에 일기 쓰기가 없어도 나는 매일 글을 적는 일을 즐거워했다. 눈 깜빡하면 사라지는 시간의 뭉텅이가 아니라, 여기 내 눈에 읽히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남는 하루가 - 뿌듯했다.



추억이 빼곡한 일기장들.



하얀 종이에 검정 펜으로 하루하루를 적던 열두어 살 소녀는 예고를 진학한 꼬마 예술가가 되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노트 하나도 그냥 쓰는 법이 없었다. 색색의 펜과 반듯반듯 예쁜 글씨. 그들의 아티스틱한 면모에 자극을 받은 나의 다이어리는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티커가 붙고, 영화표가 붙고, 예쁜 포장지로 잘 싸인 사탕을 먹으면 포장지도 붙여 놓았다.





스케줄을 관리하는 용도로도 좋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핸드폰 일정 화면이 더 즉각적으로 챙겨주었고 (그래도 스물셋인가 까지는 색깔 펜 바꿔가며 일정표를 적었다.) 다이어리는 좀 더 나의 창작 욕구(?)를 채워주는 영역으로 남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휴학 시절 내 일기장에는 연필로 스케치한 건물이 있다. 저 빌딩 숲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라는 깨알 같은 글씨와 함께. 한참 파티 동아리를 하던 시절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춤추는 여자들이 많다.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이래도 되는 걸까 싶다는 메모와 함께.

일기들을 가만가만 읽다 보면 이렇게나 치열하게 사랑하고, 아파하고, 고민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것을 도대체 왜 주워왔지 싶은 팸플릿 하나에서 어린 추억을 떠올리고,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 시간, 장소를 기억해내기도 한다. 그 기억이 생생할수록, 형형색색 한 일기장에 많은 시간을 들인 보람을 느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일기만으로 충분한 곳에 그림 그리고 뭘 갖다 붙이고 하는 것아트저널이라고 한단다.



bullet journal blog


미국의 한 블로거가 소개한 아트저널은 흡사 학창 시절 만들던 포트폴리오를 연상시킨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세상 고퀄이다. 어쨌든 일기의 한 종류인 아트 저널에 대해 블로거 Annie는 '자신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개인적인 창작물'이라면서 영감을 얻는 무려 100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 티백으로 일기 페이지를 적셔서 양피지처럼 만드세요. 그리고 당신만의 마법의 주문을 적어보세요!

- 칭찬으로 가득 찬 신문을 만들어봅시다.

- 내면의 여신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이름을 붙여주세요!

- 시를 써봅시다. 그리고 운율을 붙여주세요.

- 사랑에 빠진 캐릭터를 그려보세요.


와, 우와. 읽으면서 상상력이 폭발하는 기분이다. 하루에 하나씩 이런 재미난 아트워크를 남긴다면 얼마나 뜻깊을까? 최소한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서 너무 무미건조해, 라는 말은 줄여주지 않을까.


물론 나라고 매일이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항상 500%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날도 무척 많다. 하지만, 울적한 날은 우울에 푹 잠겨본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화가 가득 찬 날은 또 분노한 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날도 '그저 그런' 하루는 없는 것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 억누르고 쉬쉬하며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에게는 더더욱 자신만의 그림일기 페이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펀딩 한 지 일주일이 지난 [마음 관리를 위한 그림일기 책] 인생지도를 살포시 소개한다.

작년 한 해동안 연구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에, 그림일기 형식을 결합한 아트북이다.



https://tumblbug.com/lifemap


그림을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사람도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도록 예시 일러스트도 듬뿍 담았다. 이 책의 히스토리만 두고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다음 이 시간에...(?)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된 인생지도가 하루를 기록하고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친구 같은 아트저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 저는 이만 인생지도에 들어갈 그림 그리러....






당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Life Artist
조윤성

yscho@meahproject.com

010 7229 9897

* 블로그에서 보기

https://blog.naver.com/feys514



* 인스타에서 보기

https://www.instagram.com/514fiona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연하지 않은 산소, 사람,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