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는 코로나가 덮친 한국의 경제상황을 두고 '절체절명'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실업자가 급증하고 크고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폐업을 하는 모습이 마치 IMF를 연상시킨다. 전 국민이 금을 모으던 그때. 철없는 초등학생에게도 아빠의 무거운 어깨와 엄마의 한숨은 불안, 그 자체였다. 여러 명의 삶에 재난이었던 그 시절 잿빛 공포를 책에서도 읽고 말로도 들었지만 직접 살아내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어서 재미있는 게 우리네 삶이라지만 공방 창업 6개월 만에 세계적인 전염병은 너무하다. 한두 달의 휴가라면 괜찮았지만 2020년 한 해동 안은 무엇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에 이어 무기력이 깃들더라.
뭘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면 뭐하러 애를 쓰나.
지난주는 그렇게 한껏 무기력했다. 때마침 비도 주룩주룩 내려주어 나는 더 오래 미적거렸고, 멍하게 앉아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꺾여버린 자신감에는 '작은 성공'말고 붙일 약이 없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디서 성공의 불씨를 찾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침체된 요즘 같은 때에.
그렇게 물 머금은 행주처럼 울적하기를 며칠. 기분전환을 위해 집 앞 카페에 앉았다. 나와 사장님 둘 뿐엔 카페에서 뜨거운 라테를 몇 모금 마시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새삼 이 공간과 시간에 감사해졌다. 나는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는데 사장님에게 나는 어떤 손님일까. 4천 원짜리 커피를 하나 주문하고 몇 시간 동안 앉아있는 손님이 밉살스럽지는 않을까? 아니면 이런 시기에 찾아주어 고맙다고 생각하시려나.
사장님은 카운터 너머로 핸드폰을 보고 있다. 커피 레시피를 찾아보고 있을지, 소상공인 대출을 검색하고 있을지, 그도 아니면 소설이나 만화를 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이 곳에서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불을 밝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부터 이 카페까지 걸어오는 동안 줄지어 선 가게들은 모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재난이다, 위기다, 흉흉한 소리가 돌아도 누군가는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무기력을 중얼거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살만해서 힘을 내는 게 아니다. 성공해야 비로소 웃는 게 아니다.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먼 미래를 바라보면 암담하고, 겁이 난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으니 희망을 품기도, 좌절한 채로 있기도 어렵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 내 손에 단단히 주어진 스물네 개의 시간은 예측 가능하다, 최선을 다해볼 수 있는 것이다.
또다시 무기력이 찾아오면 산책을 하며 문 연 가게의 수를 세어봐야겠다. 오늘을 살아내는 충실함에 감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