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어떤 능력? 그건 어떻게 얻는 건데? 물어보려는 찰나 꿈에서 깨어 버렸다. 이렇게 미련을 남기는 꿈이라니. 일어나서도 한참 궁금했다. 녹색창은 능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능력 :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
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광범위한 해석 앞에는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이 붙어야 할 것 같다. 1980년에는 길을 잘 찾는 운전사가 능력 있다 했겠지만 오늘날에는 내비게이션에게 능력이 있다. 자동차가 보급된 2020년에 말 타는 능력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이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4차 혁명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지성 작가는 [에이트]에서 기계에 대체되지 않을 힘은 '창조적 공감능력'에 있다고 했다. AI는 우리보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쉽게 해결하고, 정확하게 발견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해결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대체된다는 뜻이다.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끊긴 지금 같은 상황은 우습지도 않게, 기계에 대체된 인간은 무려 '난민'에 비유된다. 팔자 좋게 난 괜찮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계가 절대 쫓아올 수 없는 어떤 영역, 오직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라야 능력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게 도대체 뭘까?
책에서는 봉사와, 독서와, 대화. 인간이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책을 덮으며 내가 했던 다짐은 대충 이런 식이었던 듯하다.
'그러면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1년에 한 번 가던 선교 외에도... 봉사할 일을 생각해 봐야겠군. 글도 쓰고 사색도 하려면 글쓰기 모임을 일주일에 두 번씩 해야 하나? 역시 기계에 대체되지 않는 능력을 쌓는 건 쉽지 않군. 바쁘다, 바빠.'
그래서 칼비테 교육법을 읽었고 몬테소리에 대해 공부도 살짝 했다. 그래서 나는 보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나 하면, 글쎄요. 아마도 나는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듯하다.
애초에 창조적 공감능력이라는 게 드래곤볼 모으듯 어떤 활동들을 조합한다고 뿅, 생겨나는 것일까?
이 아리송한 질문의 답을 아침을 먹으려고 국수를 끓이다가 무심코 집어 든 책 속에서 발견했다. 대단한 생각을 하기에는 머리가 아파서 집어 든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 뭔가 제목과 표지가 편안해 보여서였다. 그리고 첫 장을 읽는데, 파스칼의 명언은 나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 서 온다"
AI가 따라 할 수 없는 창조력은 책 수십 권을 때려 박는다고 '출력'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쑤셔 박은 지식은 나만 잘났다는 교만을 낳기 십상이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충분히 지펴졌을 때 행해지는 봉사에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이 발현된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식처럼 행해지는 봉사로는 아무 결과도 도출할 수 없다. 답을 정해놓고 하는 고객 조사와 똑같은 것이다.
기계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겠다고 기를 쓸수록 나는 점점 도태될 것 같다. AI는 모기 잡듯 나의 학습 속도를 따라잡을 것이고 5G는 내가 뭔가를 그려보기도 전에 세상에 내놓을 테니까. 속도는 4차 산업시대에 기계를 대표하는 단어나 다름없다. 기를 쓰고 뭐 하나 더 붙잡아 보겠다고 뛰어다니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그렇다면 나무늘보처럼 집에 누워만 있는 쪽을 택해야 할까?
어차피 기계에게 다 뺏겨버릴 테니 대충대충 되는대로 하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휴식이 빛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한 한낮이 있어야 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되 벚꽃이 떨어지면 첫사랑을 추억하기도 하고, 불현듯 옛 스승님이 떠오르면 긴 편지를 적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