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10분 통화하기까지

30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

by 윤성씨

아빠와 나의 악연은 철없던 열다섯에 신은 분홍 망사스타킹에서 시작됐다. 때는 바야흐로 2005년, 샤기컷과 요피로 대표되는 "니뽄"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패션 잡지 빌려보기가 삶의 낙이었던 큰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대 앞 일본 보세 매장에서 요란한 원피스며 형형색색의 액세서리를 사모았다. 그리고 잡지에서 본 것처럼 원피스를 겹쳐 입는다거나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손바닥만 한 귀걸이를 한다거나 아무튼 낯 뜨거운 스타일로 동네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당시 좋아하던 스타일과 유사한.. 출처: Vogue fashion magazine 2017 fall tokyo Fashion week street style


아빠는 큰 딸의 기행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맞닥뜨린 적은 없었다. 아빠의 퇴근보다 나의 귀가 시간은 훨씬 늦었으며 집에 붙어있을 때는 문을 잠그고 아무도 접근금지라고 날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안의 골칫덩이였던 딸아이의 실체를 저녁밥 시간보다 조금 일찍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두 눈으로 확인하셨을 때.

"너.. 그게 뭐냐?"

아빠는 기가 차고 코가 찬다는 표정으로 분홍색 망사스타킹과 검정 미니스커트와 식빵만 한 굽을 가진 신발을 번갈아 보셨다.

"그러고 나가겠다고?"

아빠는 도통 멋이라고는 하나도 모른다니까. 입을 삐죽이며 "몰라 나 나가야 돼"라고 대충 내뱉은 나는 현관문을 밀쳤다. 내 태도에 완전히 열 받은 아빠는 그 꼴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내 팔을 잡았다. 있는 힘껏 팔을 휘젓고, 양 팔을 휘젓고, 온몸으로 발버둥을 치는 통에 곱게 땋았던 양갈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귀걸이 한쪽은 날아갔으며 죽죽 흐른 눈물과 악다구니는 아빠를 향한 맹비난이 되었다.

아빠 때문에 내 외출이 엉망이 됐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생난리난리를 치는 딸을 죄 없는 엄마가 달랬다. 그리고 그 날부터 아빠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한 번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문구점에서 사탕인가를 사고 나오다가 맞은편 복도에서 걸어오시는 아빠를 발견했다. 아빠는 아는 체를 하려고 하셨지만 나는 반대편으로 줄행랑을 쳤다. 분명 내가 잘못했는데, 내가 사과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차가운 기류가 어떻게 풀렸던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으로 기억하지만 아빠의 기억은 또 어떠실지 모른다.

사춘기를 핑계로 아빠 마음에 대못을 박았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것은 10년이 지난 스물다섯. 신입사원 연수 막바지에 접어든 때였다. 아침 7시까지 매일 출근하는 것은 신입사원의 젊은 패기에도 불구하고 조금 피곤했다. 하루는 가족들에게 감사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간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아빠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처음에는 가볍게 '아빠도 처음 회사 입사했을 때 이런 기분이셨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편지를 쓰다 보니 스물다섯 개의 어버이날 동안 이렇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 편지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가 철없는 딸의 사고와 실수를 어떤 마음으로 참아오셨는지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첫째 딸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둘째와 셋째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장으로서 감당했을 세상의 무게 역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빠도 가끔은 쉬고 싶었을 텐데.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딸과 친해지는 법을 몰랐던 것뿐인데.

이해는 아빠 몫으로 남겨뒀던 이기심이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항상 가족이 우선인 아빠의 듬직함이 사무쳤다. 그래서 신입사원 동기들 틈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엉엉 울었다.

편지를 전해드린 날, 아빠 얼굴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를 보며 우리 아빠 얼굴에 주름이 이렇게 많았었나 생각했다. 아빠의 입가와 눈가에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에 대해 나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하루를 보내시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게 참 슬펐다.
그래서 나는 작은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아빠랑 10분 통화하기]

그 시점까지 내가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은 집에 들어오실 때 우유나 계란을 사다 달라는 엄마의 말을 전한다는 것을 뜻했다. 아무 용건 없이 아빠에게 그냥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처음 만난 사람과 5분 이상 대화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처음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아빠는 못 걸려올 데서 온 전화라도 받으신 양 얼떨떨해하셨다.

"웬일이냐"

"그냥요 아빠"

"응"

"응"

...

그런 대화라고 하기도 뭐한 이상한 말을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던 것을 기억한다. 30초도 채 안되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아빠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뭘 물어볼 텐데 도통 질문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빠도 내가 뭘 하는지 잘 모를 것 같다. 그럼 내 일상을 이야기해볼까?

그다음 통화에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빠는 딸의 수다에 당황스러워하셨지만 껄껄 그랬니 하고 들으셨다. 문제는 맞받아치는 아빠의 다음 대사가 없다는 거였다. 힘들었겠네, 그래 잘했다. 여기서 끝이니 뭐 3분 이상 대화가 이어질 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이게 아빠의 대화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그냥 답답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주제라도 있어야겠다. 아빠가 관심을 가지시는 게 뭘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신문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 오! 그랬더니 드디어 아빠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신입사원과 부장님의 대화같아 서글프긴 했지만 그게 어디람.

간단한 일상 이야기와 뉴스와 신문에 실린 세상사를 주제로 몇 마디를 주고받기까지 몇 년이 걸렸던 것 같다.

시간은 천천히, 또 성실하게 흘러서 그렇게 조금씩 쌓은 전화 횟수가 늘수록 아빠와의 대화도 조금씩 편해졌다. 아직도 내 퇴근 시간은 아빠보다 한참 늦기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는 날이면 종종 전화를 거는데 이제 7~8분은 거뜬하다. 10분이 넘는 날은 동생들이나 할머니, 아빠가 아는 내 친구의 이야기가 추가된 날일 것이다.


전화로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는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도 수월하게 만들었다. 눈 마주치기도 어려워하던 사춘기 소녀는 아빠와 맥주 한 잔을 두고 두세 시간 수다를 떠는 어른이 됐다. 아빠는 젊은 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고 내가 미처 몰랐던 가족사를 풀어놓으시기도 한다.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기타를 사 왔는데 할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았다는 이야기라던가) 아빠는 엄청나게 현실적인 조언을 주시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편안한 친구처럼,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내 하소연을 하염없이 들어주신다. 무슨 이야기를 하건 그랬니, 잘했구나, 힘들었겠네로 끝나는 대화 패턴은 여전하시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그 똑같은 말에도 다른 비율로 섞이는 감탄과 걱정과 위로를 알아서 느낀다.

아빠는 요즘 전화를 끊을 때쯤 '고맙다'는 말씀이 느셨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 아빠,라고 하면 아빠를 생각해주는 게 고맙다고 하신다. 아빠가 나를 생각하고 이해해준 시간만큼 쏟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오늘은 아빠에 대한 글을 썼다는 주제로 10분 통화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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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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