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생일은 귀찮았다. 뭔가 굉장한 의미부여를 해야 할 것 같은 나이지 않나.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날이자, 꽉 찬 계란판 같은 나이. 게다가 지난 20대에 벌여놓은 생일파티 리스트가 좀 시끌벅적했어야지.
20대 조윤성이 해온 생일 파티들을 떠올려보면.
스물셋, 뉴욕에서 리무진 파티를 했었고 스물넷, 카페테라스에서 에코백을 팔고 저녁에는 파티를 했고 스물여섯, 5층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화관 쓰고 홍대의 노을부터 야경을 보며 즐거워했고 스물일곱, 장미덩굴이 있는 루프탑에서 한 생일파티 때는 버스킹 하는 친구가 엠프 들고 와서 노래도 불러줬고 스물여덟, 선유도에 있는 카페 2층에서 낮에는 비눗방울 불고 저녁에는 한강 야경을 보며 자기소개도 하고 스물아홉, 2개 층의 파티룸을 빌려서 보드게임도 하고 사업 설명회 비슷한 이야기도 했다. 하, 뭘 저렇게 부지런하게 파티를 해왔나 싶다. 이제 진짜 뭘 더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사람을 초대해서 거창하게 축하받고 어쩌고 하는 것이, 아, 너무나도 귀찮은 것이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부산스럽게 계획하는 것을 그만두고 잠잠히 스스로를 축하하기로 했다. 일단 생일 하루 전날은 엄마랑 신명 나게 수다 떨다가 푹 잤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생각하기를, '나를 살뜰히 챙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세수를 할 때마다 눈에 거슬리던 거뭇한 가르마가 생각났다. 좋아, 뿌리 염색 접수. 회사원 시절에는 비교적 꼬박꼬박 챙겨하던 네일아트도 못한 지 꽤 오래다. 벌거벗은 손톱에 봄 기분을 내보는 것도 좋겠다. 공방 근처에 있는 헤어숍과 네일숍을 예약했다. 당일 예약이 될까 싶었는데 다행히 시간도 딱 알맞게 잡아주셨다. 11시부터 12시 반까지 뿌리 염색을 하고 1시부터 3시까지 조금 빠듯한 시간이었는데 네일숍 사장님은 5G 속도로 손톱 위에 노란 젤을 얹어주셨다. 발가락 위에는 은빛 펄이 반짝이고 손톱에는 햇빛을 닮은 노랑이 내려앉으니 기분이 좋았다. 4시 반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하면서 네일아트를 받는 동안 울려온 생일 축하 메시지에 꾹꾹 감사를 눌러 보냈다. 혼자 걸어도 여럿이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남자 친구가 있는 천안아산역으로 향하는 동안 [언컨 택트]를 읽었다. 접촉 불안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대체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에 1시간 반이 짧긴 짧다. 그래도 심심할 틈 없이 천안에 도착했다. 남자 친구는 하얀 SUV를 빌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맨날 노래만 불렀던 "천안 호두과자"가 원조라는 집에서 (모두 다 원조라고 써져있어서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끈한 호두과자 열두 알을 사 먹었고, 단대 호숫가에 있는 예쁜 카페에서 잔뜩 찌푸린 하늘을 원 없이 바라봤다. 원래는 아산만 방조제에서 노을을 보려 했지만 날이 흐렸고, 조갈 찜을 먹고 싶었지만 그 날따라 하루 종일 배가 아파서 도무지 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대 호수가를 한 바퀴 걷고는 기진맥진한 채로 남자 친구가 끓여준 닭죽을 먹고 잘 잤다. 그게 다였다.
나의 서른 번째 생일은, 그렇게 조용하고 별 일없이 흘러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일날이 복닥 시끌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나는 줄 알았다. 비단 생일뿐 아니라 무엇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일이 나에게는 너무 많았다. 월급이 끊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상황에 속이 상하고, 많이 슬프고, 울기도 했지만 별로 큰 일은 나지 않더라.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지는 않는 것처럼 내가 '절대 안 돼'라고 생각했던 일이 상상만큼 잔혹하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를 기억하고 축하해 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행복했다. 내가 애써 잡아놓으려 했던 인연은 사실 생각보다 가깝지 않았고,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소소한 감사로 빽빽했던 나의 서른 번째 생일.
서른 한 번 째 생일에는 어떤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로 초를 불게 될까. 어떤 장소에서 무슨 꿈을 꾸며 두근대고 있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참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내가 스무 살 생일 때처럼 세상이 궁금하고 살아갈 많은 날들에 설레 한다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이 뚜껑 저 뚜껑 열어보러 다니던 20대에게 감사를 보내며, 서른의 나는 좀 천천히 하늘도 보고 물도 마시면서 걸어가야겠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잘 알았으니까. 솔직히 좀 귀찮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