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EBS 라디오에서 메일이 왔어!

나도 작가다 공모전 당선 후기

by 윤성씨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두 번을 읽었다.

안녕하세요 EBS 라디오입니다.
안녕하세요 EBS 라디오입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그 EBS가 맞다.

와. 브런치 북 공모 4차 때도 5차 때도 내리 떨어졌는데, 좋은 생각 수필 공모전에도 떨어졌는데 자그마치 4,100건의 글이 응모된 '나도 작가다'공모전에 당선되다니.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https://brunch.co.kr/@feys514/258


선정 메일을 두 번 읽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에 <임금님>을 검색하고 통화버튼을 누른 것이다. 아침 8시 19분에.


아빠는 두 달 전부터 파주에 숙소를 잡고 생활 중이시다. 표면적인 이유는 '현장 관리'지만 내막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어느 날 파주 현장의 관리인력 부족을 이유로 왔다 갔다 하시겠다던 분이 일주일이 훌쩍 지나도 집에 오지 않으시니 나와 엄마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주소라도 알려달라고 반찬을 챙겨가겠다고 해도 직원들 보기 민망하다며 철벽방어를 하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불안은 극에 달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엄마랑 싸우신 걸까? 개 냄새나는 거 싫다고 하신 게 장난이 아니셨던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더라.


"아빠. 집에 언제 올 거야?"


"나중에. 다음에."


"다음에 언제?"


"일이 많아서...."


잔소리를 퍼붓는 여자 친구의 모양새로 나와 엄마 여동생이 번갈아가며 전화를 하자 아빠는 어버이날에 맞춰 마지못해 집에 오셨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잔에 생맥주를 따르시는 아빠의 모습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아빠. 집 나가니까 좋아? 딸들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허허(너털웃음. 할아버지 웃음.)"


근데 왜 집에 안 들어오냐는 푸념을 원천봉쇄라도 하듯 아빠의 미소는 너무너무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말없이 아빠의 생맥주 잔에 맥주캔을 맞부딪혀 드렸다. 지글지글 익은 생고기가 한 점 두 점 사라지고 버섯 자투리만 남았을 때쯤. 아빠는 전원생활의 만족에 대해 고백하셨다.


"윤성아. 아빠는 요즘 참 좋다."


7년째 주말농장을 다니실 만큼 풀과 흙을 사랑하는 아빠에게 서울의 공기는 너무 탁하다. 순천에서 용 났다고 소문이 파다했을 만큼 대학원을 거쳐 대기업까지 턱 하니 붙으신 아버지의 액자 뒤에는 - 맏형으로서의 무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켜켜이 쌓여있지 않을까.


아빠도 숨을 돌리고 하늘을 보고 싶으셨을 텐데.

하고 많은 진로 중 첫째는 미술을 하겠다고.

둘 째는 연기를 하겠다고.

셋 째는 해외로 보내달라 하니,

아빠의 허리는 하늘과 얼마나 멀었을까.


말 같은 딸 아들 다 키우셨으니 이제 호강하셔야 하는데 아빠의 청춘을 먹고 자란 삼 남매는 자기 앞가림도 시원치 않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4시간씩 ETF를 공부하신다는 아빠의 말씀에 눈시울이 시큰했다.

그 날, 우리 가족은 아빠의 바깥살림에 암묵적 동의를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건 너만 행복하면 된다 식의 양육법은 엄마와 아빠 서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듯하다. 나와 엄마, 여동생은 지금도 세 명의 바가지 긁는 여자 친구들처럼 번갈아가며 '뭐해, 언제 와, 왜 안 와'를 반복하고 아빠는 여전히 '나중에, 상황 봐서, 이따 통화하자'로 일관하시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기형적으로 보일 가족생활임에도 우리는 나름 잘 지내고 있다.

아빠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나도 아빠를 많이 존경한다.

당선 후기를 쓰다 보니 다시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카카오톡이 컴퓨터와 연결이 안 되어 있다며 메일로 글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아빠의 메일로 우리의 물고 뜯던 과거가 적힌 글을 전송하노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우리 아빠, 그때는 망사스타킹 신은 딸을 보며 억장이 무너지셨을 텐데. 15년 전 기억에 비추어 당신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흐뭇해하시는 저녁이 되길 바라본다.

Feat. 아부지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신 브런치 X EBS 라디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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