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언더독스에서 진행하는 하나 소셜벤처아카데미(HSVA) 과정을 밟았다. 우울증을 겪는 청년들을 위한 '무언가'를 제공해서 사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원대한 비전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HSVA 선정 소식을 접한 후에도 이 사람들이 나를 도대체 왜 뽑았은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아무 준비도 계획도 없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우리 팀은 열정 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뽑은 쪽에서는 그거면 된단다. 그래서 8주간 참 별 걸 다 했다. '회사 스트레스가 좀 있는 편이에요'라는 말에 송도까지 가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우울증을 겪었던 분들을 모아놓고 글 모임 그림 모임을 매주 진행하기도 했다. 마스크에 색칠을 하기도 하고, 잡지를 오려 붙이기도 하고, 하다 하다 못해 벽에다 물감을 던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게 터져서 한국일보 기사에 소개되기도 했다만.
수상은 못했지만 200명 앞에서 사업을 발표하는 경험도 했고 이 기간 동안 느낀 '사업'이라는 거대한 실체를 절감하며 팀이 깨어지기도 했다. 사실은 내 역량이 팀을 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말이 맞겠지만. 매주 2차례씩 쟁쟁한 창업팀들과 한 주의 성과를 보고하며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못 할 스트레스였다. 내가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1년이 지난 오늘.
감사하게도 그 당시 참 열심히 MVP에 임했다는 이유로 2기 모집에 대한 인터뷰 영상에 참여했다.
3억짜리 사업을 따내신 소셜벤처 대표님과 나란히 앉기에는 나의 현 위치가 명백히 초라한 자리였다. 사실 주저했다. 지금 뭐 그리 좋은 상황이라고 다른 이에게 사업을 권하나. 거절할까 했지만 찾아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불편한 마음으로 나갔다.
부지런히 사업을 키워가고 계신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 이맘때 같은 출발선상에 섰던 우리의 차이를 담담히 느낀다. 속상하다고 울어버려야 할까? 왜 이번에도 세상은 내 편이 아니냐고 절망해야 할까? 얄궂은 자존심은 그 와중에도 나에게 환한 미소를 띠게 하더라. 발표용 미소를 생글생글 지으며 가만히 이야기를 듣노라니.지난여름이 새록새록하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준비도 없이 의욕만 가득했던 그때.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깨어지는 과정은 눈물 나게 아팠지만, 문득 어느 하루도 후회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최소한 그때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문제는 지금이다.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때
우리는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정하거나, 무시하거나.
나는 지금껏 상황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해왔었구나.
명함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브로슈어를 새로 제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비즈니스 모델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
주저하는 것은.
상처가 두렵기 때문이다.
실패가 무섭고 배신과 충격으로 얼룩진 작년 겨울이 반복될까 겁이 난다. 한 번 더 그런 일을 겪어도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다시 새로운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세상은 아름다워질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힘을 낼 수 있을까.
회의감에 젖은 나에게 1년 만에 만난 대표님과 멘토님은 잔잔한 응원을 보내신다.
"제가 대표님 나이면 어휴 몇 번을 더 하죠."
분명 힘내라고 해주신 말인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동안에도 나는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내 심장에 불을 지폈던 문장들을 떠올린다. 세상을 바꿀 혁신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민첩하고 용감한 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업의 정의가 '수틀리고 무너지고 넘어지는 과정을 이겨내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무모할 정도로 큰 꿈이 필요하다.
가능한 수준의 계획 말고,
평생 쫓아도 도달하지 못할 원대한 꿈.
10분의 1이라도 맞춰보려 애쓰다 보면 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는 만들어질지 모를 더 나은 세상을 그려야 한다. 그 정도가 아닐 바에야 시간과 돈과 에너지와 내 젊음을 바쳐 이 고생을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망설임은 오늘까지로 충분하다. 이제 꿈을 꾸고, 다시 작게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