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지 않은채로 그냥 살기

by 윤성씨

캠핑을 다녀왔다. 내 인생 첫 캠핑이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캠핑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비가 오더라.


우중캠핑, 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그건 타프와 텐트를 혼자서도 뚝딱뚝딱 치는 전문가에게 어울리는 낭만이지, 텐트를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는 우리에게는 아주 무리수였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텐트며 살림의 절반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남자친구와 나는 굵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노력했다.

집을 짓기 위해.


10분, 20분. 텐트 비슷한 모양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가 답답했던지 캠핑 도사처럼 보이시는 사장님과 저택같은 베이스를 만드신 여성분이 우리를 도와주셨다. 오늘 안에 잠은 잘 수 있을까 싶던 텐트에 도사님들의 손이 닿자, 순식간에 모양이 잡힌다.



텐트를 완성하고 테이블을 펼쳤더니 허기가 몰려왔다.

첫 캠핑을 준비한다고 아침부터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한 끼도 못 먹은 것이다. 고기를 굽기 시작하니, 빗소리가 한층 거세졌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초여름 소낙비 아래서 씹는 고기맛이란! 캠핑 시작 30분 만에 나는 이 매력에 홀랑 빠졌다.


남자친구는 고기와 라면을 해치우기가 무섭게 누워버렸지만, 나는 보이지도 않는 야산을 향해 앉았다. 멀리서 웅얼이는 말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는 상태가 - 편안했다. 불멍 대신 비멍이랄까.


생각이 제멋대로 떠다니도록 내버려두기를 한참.

스물 두어살의 야망과 가장 최근의 걱정이 투닥거리기도 하고, 남자친구에 대한 불만과 고마움이 나란히 떠오르기도 하는 것을 바라본다. 내 속에 이렇게 다채로운 생각들이 숨어있었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생각이 많은 여름이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미술공방 주인장의 발목을 잡고. 창작과 경영 사이에서 시소를 타는 뱁새의 가랑이는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니. 어떤 것을 해도 불안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휴식이라기보다는 도피였다. 동서남북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막막함은 이골이 날 만큼 익숙하지만,


매일 밤 오늘과 같이 보낼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먹고 살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나는 글을 쓸 것이다 -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것은 내가 밥벌이의 문제와 매일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품는 소망인지도 모른다.

막상 어느 날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된다거나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부모님이 남몰래 준비한 내 명의로 된 빌딩 여러 채가 있다거나

(절대 그럴 리 없다)

빌게이츠가 평생 나를 후원해준다고 전화가 오면

(뭔 말인지 못알아 들어서 날려버릴 수 있다)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라는 소망 대신 새로운 열망을 가질 지 모를 일이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예상할 수 없는 법이니.


그렇다면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걸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부터도 벤츠 컨버터블에 앉아 자유로를 달려보고 싶고, 천정고 높은 펜트하우스에 샹들리에를 설치하고 싶은데.

목표 자체는 죄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목표한 삶에 다가갈 것인지, 그 방식에 대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안정되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매일 현명한 선택을 하고, 더 나은 투자를 하고, 더 좋은 조건의 기회를 만들어간 끝의 끝에 자유라는 당연한 결과가 오는 것이지, 살아지는대로 사는 일상이라는 '원인' 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공평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내일을 위한 원인을 사는 것은 오늘의 쾌락을 선택하는 것보다 무료하다. 저녁 드라마 앞에서 치킨을 참기 힘든 것처럼.


그래서 몇몇은 더 빠르게 그 길을 가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킨다. 돈 때문에 가족에게 빚을 떠넘기고, 친구와의 신의를 저버리고, 부모님의 전재산을 날리는 일이 영화 속 스토리 같지만 이 중 몇몇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희생자의 삶은 억울하고 비참하다. 현명하지 못했다는 말이 가족을 믿었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 참담할 뿐이다.


나는 성공에 다다르는 방식에 대해 오래 고민한다.

남의 등을 부숴서 벤츠며 아우디며 전원주택을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만서도) 낙숫물이 바위 뚫는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한다는 말이 된다.

과정을 살아가는 태도가, 너무나 중요하다.

부자가 되면 여행을 갈거야, 라고 말하기보다 오늘 저녁 등산을 하고, 성공하면 잘할게 엄마, 하기보다 엄마가 씻는 동안 설거지를 하는 게 낫다.


빗방울이 잦아든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시작한 생각은 언제나처럼 오늘 잘 먹고 잘 자자는 결론에 도착했다. 대단한 내일을 위해 희생하지도 말고, 한심스럽게 게으르지도 말고.

오늘을 나의 최선으로 살았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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