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잘 지내기

지겨워도 데리고 살아야하므로.

by 윤성씨

눅눅한 무기력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나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스믈스믈 기어다니는 것 같다.

눈물도, 분노도, 변화에 대한 노력도 한 풀 꺾인 적막.


울 준비가 되어있던 절망의 초입을 지나오면 모든 것이 허망해지는 단계가 온다. 친한 언니는 그 상태를 두고 '그게 바닥이야, 감정의 바닥.' 이라고 했다. 힘을 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기분.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여러 번의 바닥을 경험한다. 예전에는 그게 꼭 재정적 실패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감정의 바닥은 통장 상황과 별 상관이 없다. 귀찮다,로 일축되는 그 시즌이 어려운 것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멈추면 일도 삶도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지, 갓물주라는 단어를 만들었는 지, 지긋지긋한 무기력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피부로 깨달았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


아, 솔직하게 적어버리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다면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발견했을 때 스스로에게 무진장 실망 했었다. 넌 어쩜 애가 그렇게 게으르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떨어진 의욕은 다그친다고 북돋아지지 않는다. 몸과 생각 구석 구석에 자리잡은 피로감을 떨쳐내고 다시 열심을 꽃피우기까지는 - 시간과 칭찬과 꿈들이 필요하다.


항상 같은 방식으로 무기력을 대해 온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때는 십년지기 친구의 구구절절한 '니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나를 일으켰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숨이 막혔을 때는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응원이 되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들었을 때는 등산과 달리기가 괜찮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정의 바닥을 쓸고 일어나고 다시 주저앉고를 반복해 왔다만.

올 때마다 이 지하실은 참 쾌쾌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이 습한 무기력을 떨쳐내볼까.


먼저는 한바퀴 뛰자.

작년 이맘때였는데, 세상 만사 귀찮고 비관적이라는 핑계로 남자친구 앞에서 추태를 부린적이 있다. 그의 해결책은 운동을 안해서 그래, 였는데 - 그 말에 짜증이 나서 냅다 뛰어버렸다. 따라 오던지 말던지 방향도 없이 아무데로나 달렸는데, 숨이 가빠오니까 숨 쉬는 것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났다. 땀을 흘리고 나니까 개운했고, 다시 맥박이 돌아올 때쯤 작은 성취감도 들었다. 달리기가 어느 것도 해결해주지 못할지라도 밥맛은 돌게 해준다. 최소한 한 가지 욕구는 만들어 주는 것이다.


두 번째, 샤워를 하고 예쁜 옷을 꺼내 입자.

원피스를 입으면 립스틱을 바르고 싶고, 립스틱을 바르고 나면 햇살 아래 산책을 하고 싶어질 지 모른다. 산책을 하다보면 일상에 흥미가 생기고 그러다보면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뭔가를 하고 싶어진다. 막상 책상에 앉으면 다시 무기력이 뻗칠지언정, 한 낮의 기분전환이 쌓이면 조금씩 활기를 되찾게 되리라고 믿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조차 나라는 존재는 특별하고 소중하다.


세 번째는 오늘 할 일만 생각하고, 그 일을 해내자.

내일과 다음주와 다음달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형체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오만 걱정을 주렁주렁 달고 와서 괴롭힌다. 걱정에 대항할 힘이 있을때는 상관없지만 묵직한 무기력을 달고 내일 일까지 신경써 줄 필요가 있나. 그냥 오늘을 잘 살자. 끝내주게 숨쉬고 작살나게 잘 먹고 오늘이 가기 전에 마쳐야 하는 그 하나만 잘 하면 그 걸로 됐다.


네 번째는 책으로 숨자.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만큼 유익한 은신처가 또 있나 싶다. 무기력을 피해 각종 미디어로 도망치는 것도 스트레스를 덜어주긴 하지만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재미와 의미의 영역이 다른 법이니. 올해 초 무기력이 극성을 부렸을 때는 자기개발 서적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세계 각지의 대단한 사람들이 보내는 따뜻한 응원을 300페이지 정도 읽고 나면 중증 무기력도 누그러지더라.


마지막으로는 번 물어보자.

너 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는데, 지금 나를 옥죄는 무기력은 새로운 국면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바꿔야하고, 그냥 찍어둔 영상을 올리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생방송으로 수업을 해야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이건 또 뭐야, 무서워, 도망쳐버리자는 현실도피 센서가 눌린 것이다. 그렇게 도망칠수록 더 나은 삶과는 멀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안전지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도전에 대한 공포가 무기력을 초대한 셈이다.


처음 발표를 했을 때가 그랬고,

처음 설문조사를 했을 때가 그랬고,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늘, 그렇게 무섭고 긴장되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한 번 더 해보면, 고작 이 것때문에 내가 주눅들었던거야? 허탈해진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냥 해보자.

무기력의 근원을 끌어내 마주해보자.

막상 부딪혀보면 생각보다 날서지 않고, 무겁지 않고, 의외로 나와 잘 맞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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