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는 모자라서 3개의 동아리 활동을 하고 노는 건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 전국 클럽 투어를 하질 않나 3년 내내 축제 때만 되면 무대에서 춤출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일 욕심은 또 오지게 많아서 스무 명 남짓한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언어, 외국어 과외도 하고(그래서 수능날과 모의고사 날이면 PC방에서 문제를 풀고 있었더랬다) 여름이면 페스티벌에서 서빙을 하거나 표를 끊어주는 일도 했다. 큼직한 패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공고가 뜨면 직무가 뭐건 ‘저요! 저요!’ 하고 가서는 떨이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스와치를 오려 붙이기도 하고 화보 촬영에 쓸 옷을 정리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열심히 닥치는 대로 하면 성공한 30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스물여섯의 나는 또 우울증에 걸렸던 걸까, 왜 스물아홉의 나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인 이석증을 4번이나 겪었던 걸까, 왜 그 지난한 10년의 시간 동안 지금의 행복에 감사하기보다 멀리서 반짝이는 성공을 쫓아 달리기 바빴던 걸까.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일이 필수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거로는 모자라더라. 무작정 시간과 땀을 들이는 것보다 똑똑하게 방향을 설정하고 우직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낫다는 것을 10년의 생쇼 끝에 배웠다. 왜 누군가 나에게 ‘20대에 이렇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고 말해주지 않았나 속상하다. 하긴, 말해줬어도 오만함이 정수리 위로 5m쯤 쌓여있던 나에게 들릴 턱이 없었겠다. 나는 몰라서 겪었던 고생을 누군가는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생각’ 세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이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반드시 실패하고, 반드시 불행하다.
첫 째, 까짓 거, 인생은 한 방.
그딴 건 없다. 실패도, 성공도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 웹툰과 소설에서는 꼭 주인공이 쌔빠지게 고생하고 빌빌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람’이나 (해그리드처럼) ‘소식’ (너 나의 동료가 돼라, 처럼) 덕분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거지에서 왕자가 된다. 우리 삶에도 이야기처럼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온다. 반드시 그렇다. 문제는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남의’ 기회지 ‘나의’ 기회가 아니란 말씀.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를 입에 달고 살던 스물 다섯 입사 첫 해. 학창 시절 이따금씩 공구를 열던 친구 하나는 패션 회사에 입사한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고 블로그 마켓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업이 커지더니 급기야 우리 회사 근처에 오프라인 매장을 차리고, 자체 제작을 하고, 지금은 어엿한 여성복 브랜드 대표님이 되었다. 20대 중반에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아 역시 인생은 한 방이야’라는 생각이 있었다. 한참 블로그 마켓 인기일 때 시작한 덕분이라는 철없는 판단이. 하지만 조금 성숙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그 친구의 브랜드가 지금까지 고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꾸준히 인스타그램을 관리하고, 시즌에 맞춰 상품을 셀렉하고, 예쁘게 찍은 사진을 업로드해 온 5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스타, 브랜드, 콘텐츠, 이런저런 유행들이 얼마나 많나. 성공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절대로.
실패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한 방이라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어차피 한 번 잘되면 평생 잘 풀풀 릴 테니’라는 밑도 끝도 없이 무식한 생각을 맹신하게 하고, 오늘을 대충 흘려보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3년 3개월의 회사 생활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회사생활 내내 200% 집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그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빠져, 오늘의 작은 일을 ‘하던 대로’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일상적인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쌓여 탁월한 문제 해결력이 되고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걸, 그땐 정말 몰랐다. 정수기 물통을 쉽고 빠르게 교체하기 위해, 회의 참여자 20명에게 나눠줄 A4용지를 효과적으로 출력하고 정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더라면. 아주 작은 문제에도 열심을 내는 습관이 큰 문제 앞에서도 쫄지 않는 배짱을 길러줬을 텐데. 대충 보낸 오늘, 그 1도의 하락이 365일이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생산성에 있어 2배의 차이가 생긴다. 하루하루 더 나은 나를 위해 걷는 사람과 하루하루 그냥 이 정도에 만족하는 사람의 격차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섭다.
둘째, 우리 ‘누구’가 도와줄 거야.
그 ‘누구’도 자기 살기 바쁘다. 이 세상에 학벌, 인맥만 믿고 자기 계발 안 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다. 문제 해결의 키가 되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 능력이며 행운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당신이 합당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어쩌라고’가 될 뿐이다.
퇴사 첫 해에 파티플래너 자격증을 따면서 대학 시절 내가 참 좋아했던 교수님이 행사 기회를 연결해주신 적이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패션 브랜드의 행사였는데, 이제 막 3개월, 실무는커녕 이론으로 행사를 배운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내 수준을 인정하고 행사 기획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배움의 발판이 되었을 텐데! 나는 혼자서 해보겠다고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들을 졸라 팀을 만들고 기획서를 쓰고 몇 차례 미팅을 가졌다. 하지만, 내로라할 기획사들과 일해왔던 브랜드 실무진 입장에서 우리의 미숙함이 얼마나 투명하게 드러났을지, 다시 돌이켜도 부끄럽다.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가 기회를 준다한들 받아먹을 팔근육이 없으면 나만 창피한 게 아니라 나를 믿어 준 그 사람에게도 엄청난 민폐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누구인지를 헤아릴 게 아니라, 나의 수준을 헤아리자. 교수님이, 부모님이, 팀장님이 떠 먹여줘도 씹어 삼킬 이빨이 없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셋째, 리셋하고 새 출발 하자.
키보드로 두드려 맞아야 될 소리다.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다. 회사에서 경력을 부르짖는 것도 1년이건 6개월이건 아니, 한 달이라도 그 바닥을 몸으로 체험해본 사람과 눈으로 읽은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택배 박스를 포장하는 일을 하다가 설거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택배 박스를 포장하며 배운 것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박스 양면을 잡고 부드럽게 돌려 안착시키는 노하우라거나) 리셋은 스스로의 경험을 무시하는 행위이자 경험에서 배운 지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무식한 일이다.
퇴사 후 7번 직업을 바꾸면서 이렇다 할 성과도, 딱히 배운 것도 없이 1년 반을 보낸 것이 저놈의 리셋병 때문이었다. 도전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일에서 다음 일로 넘어갈 때 적용할 점을 단 한 가지도 남기지 않고 ‘휴지통 비우기’ 해버렸던 것은, 진짜 어이가 없다. 패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파티플래너를 하다가 시장 활성화를 하다가 에어비앤비를 조금 하다가 … 나는 시작할 때마다 그 전의 교훈은 싹 지우고 다시 밑바닥부터 쌓아 올렸기에 1년이 지나도 늘 고만고만했던 반면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와서 지금까지 해왔던 노하우를 살린 동기는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매우 잘 살고 있다. 똑같은 시간을 열심히 보내도 매번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과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배운 것을 발판 삼아 시작하는 사람의 1년은 다르다.
새로운 도전을 생각한다면 신세계 지도를 펴고 ‘우와 우와’ 하기에 앞서 내가 있는 장소에서 신발끈부터 고쳐 묶자. 내가 해 왔던,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방식으로 신대륙을 개척해야지, 무턱대고 남의 말만 듣다가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엉엉 울기 딱 좋다.
그렇게 서른한 살이 된 나의 1월도 열 하루째가 지나고 있다. 아직도 내 무의식에 남아있는 인생 한방 주의, 인맥 우선주의, 리셋병을 이 기회에 말끔히 청소해야겠다. 새로운 10년 동안에도 또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겠지만 같은 짓을 반복하지만 않으면, 매일 1도씩 발전하는 셈이라고 생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