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씨 Apr 05. 2021

연매출 150억 사장님이 날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

"여기 올 시간이 있니?"

때는 바야흐로 작년 7월.

타이다이 염료가 미친 듯이 잘 팔리던 때였다.

그때 연을 맺게 된 도매처에 지금까지 거래한 금액이

천만 원을 바라보는데, 알고 보니 이 곳이

생긴 지 40년도 넘은 역사와 전통 깊은 곳이었다.

나 빼고 화방용품 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매일 전화 주문만 하다가 사무실을 옮기면서

직접 사러 가게 되다 보니

목소리만 듣던 분들의 얼굴을 보는 기분이 참 묘하다.

실제로 만난 건 한 달이 채 안되는데

엄청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쨌든, 오늘도 그놈의 봄기운 탓에

누구는 1년 만에도 수익 1천만 원씩 잘만 찍던데

나는 뭐가 모자라서

아직도 쇼핑몰로 월 수익 300을 못 만드나

자괴감을 곱씹으며 도착한 도매처.

장님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명세표를 체크하고 계시는데

매일 그 수량이 진짜 어마 무시하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큼직한 사업을 일구나

늘 궁금했는데, 오늘은 물건 챙겨주시는 분이

창고로 찾으러 가신 동안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사장님, 여기는 생긴 지 얼마나 됐어요?"


안경을 고쳐 올리며 여사장님은 세월을 셈하신다.


"우리 벌써 근 40년 넘었지."


"우와!"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나에게 사장님은 홀홀 웃으시며

말을 이었다.


"내가 스물여섯 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그렇게 됐지."


"... 사장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사장님도 그림을 그리셨냐는, 되바라진 말까지 덧붙여놓고

혹시 민폐가 될까 눈치를 보는데.

사장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아니. 원래 회사 다니다가 나는 잘 안 맞더라고.

그래서 공무원 준비를 해서 공무원 생활도 좀 하다가..

나는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싶더라고. 그래서 시작했지."


우와, 우와.


설명은 세 문장이었지만,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심과, 노력들이 담겼을지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마스크 너머 한껏 벌어진 내 입이 보이기라도 하셨는지,

도매라기엔 소매에 가까운 양일지언정 매일 사다 파는 내가 안쓰럽거나, 혹은 기특하셨던 지.


"근데 나는 시작하고 나서 새벽 1시.. 에서 3시 되기 전에는

퇴근을 해본 적이 없어. 일이 너무 많아서. 밥도 한 끼만 먹고 일하고 그랬다니까."


"일이 많으면 좋죠..."


순간 나를 볼 때마다 사장님이 하시던 말이 스친다.


"아, 그래서 사장님이 저 볼 때마다 여기 사러 올 시간이 있냐고 하시는 거구나!"


살짝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사장님.

그저께는 주로 파는 게 뭐냐고 물으셨고

어제는 그렇게 포장에 손이 많이 가면

시간이 많이 쓰이지 않느냐고, 물론 그래서

가치가 만들어지면 괜찮지만..이라고 하셨는데.

마침 창고에서 캔버스 뭉텅이를 가져오신 분 덕에

값을 치르고 오늘의 대화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가 했다.

묵직한 짐을 받아 들고 떠나려는 나에게

사장님은 지금까지 귀에 맴도는 말을 덧붙이셨다.


"근데, 뭘 하든 최선을 다해서 해야 돼.

젊었을 때는 그러는 게 맞아."


"...! 감사합니다. 밤을 더 새워야겠어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그림자 위로

웃음소리가 쏟아진다.

순간 내가 뭐 때문에 우울해했더라, 싶다.

우울할 시간이 어딨나, 흐르는 시간을 붙잡기에도

모자란 이 청춘에.

묵직한 쇼핑백을 힘주어 잡아본다.



YOUTUB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