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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Dec 15. 2023

최선을 다해 들이키는, 허전함.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일까, 한탄하던 날이 있다. 

100원 한 장 벌어오지 못하는 생각은 왜 이리 많아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인지. 

무언가 생산적인 것, 그러니까 좀 더 돈을 벌어올 수 있는 행동을 해야지, 해가 지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앉아 사색하는 일 따위는 너무 사치스럽다고.


부지런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무어라도 좋으니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내는 것만이 생에 대한 예의다. 머리털 나고 가장 오래 해 온 일이 연필 깎고 붓 놀리는 일이었으니 미술 공방을 열었고, 코로나로 사람을 모을 수 없으니 온라인에서 재료를 판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많이, 더 다양하게 팔다 보면 그 곳엔 더 나은 일상이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달린다. 달려왔다. 그런데 뭐랄까, 숨을 곳이 없어진 기분이다.

두 다리를 뻗고 한숨 돌릴 몸에 딱 맞는 소파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단골 카페가 문을 닫은 듯한.

보통 그런 류의 헛헛함은 더 폭신한 소파, 새로운 카페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의 목마름도 어떤 식으로 채울 수 있으리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남편과 부딪히는 와인 잔, 훌쩍 떠나는 여행, 반가운 단체 주문, 그런 것들. 


참 희한하기도 하지. 분명 그 때, 그 순간순간 나는 충분히 기뻐했는데. 불을 끄고 이불을 매만지면 마음이 까끌하다. 아직 더 먹을 수 있는데 내려놓은 수저처럼, 모자란 느낌. 
 


 

기를 쓰고 자기 다움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에게 찾아오는 공허. 무미건조한 매일을 얼마나 걸었나.

낯익은 기시감에 되짚어보니, 우습다. 나 답게 살고 싶어서 회사원이길 포기했는데 5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금 건조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구나.


가만보면 나는 삶이 레고 블럭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 네모반듯한 빨강 노랑 블럭을 다 쌓아 놓고 나면 그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꽃이든 나비든 붙여 넣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어리석은 착각. 

블럭을 쌓는 시간도 내 삶인데, 말이다.


오늘도 나는 내가 만든 작은 블록 안에 들어선다. 왁자지껄 이사를 끝내자마자 찾아온 2월. 일단 짐만 옮기면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전과 다른 공간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물건을 포장하는 건, 너무 어렵다. 1년 넘게 함께 해왔던 사람들 없이, 오롯이 혼자 송장을 뽑고, 물건을 포장하는 일은 다시 창업 첫 날로 돌아간 것처럼 버겁다. 그나마 남편이 방학이라 다행이지.


오늘은 생각지 못한 지원군이 사무실을 찾았다. 작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라 는데, 우연히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됐단다. 고등학교는 천안에서 다닌다고, 선생님이 중학교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그나저나 여기 신기한 거 정말 많다고.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여고생들의 에너지에 차가운 사무실이 한결 밝아진다.

예고편도 없이 들이닥친 성장 드라마 덕분에 낮 시간이 내내 즐거웠다. 레이저를 돌리느라 충분히 수다를 나누지 못해 아쉽지만,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으며 듣는 열 일곱 소녀들의 하루는 해맑기 그지없다. 

요즘에는 청소년들도 그렇게 온라인 쇼핑몰을 많이 한다며, 호기심을 내비치는 친구들에게 나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사장님이지 못한 것을 미안해 한다. 

너희가 만들어 갈 미래가 나보다 훨씬 멋질 거라고 박수 치는 수 밖에. 


오후 3시를 넘어갈 때 쯤, 남편 손에 미래의 사장님들을 붙여사무실 밖으로 밀어낸다. 이제 일한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낼때다. 얼마되지 않는 사례금에, 체육 선생님과 함께하는 보드게임 데이트를 더해 친구들의 남은 하루가 아주 행복하기를.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왁자지껄한 사무실을 휘휘 둘러보니, 확실히 MZ세대의 화사함을 담기에는 너무 칙칙하다. 조명이 문제인가. 괜시리 불을 껐다, 켜본다. 그래. 이 형광등은 좀 무섭다. 천정과 벽면도 어둡고 누리끼리한 것이, 하얗게 색을 칠해주면 한결 낫지 싶다. 그리고 - 책상. 그래, 포장하는 책상도 좀 작다. 


무작정 사무실만 넓히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그대로니 모든 것이 삐걱인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 휘덩그런 사무실이 차갑기만 하다.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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