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되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도 어릴 때부터 입에 오르내린 질문이라.
사람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나오는 상상이라.
그 가정의 옳고 그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헛헛하다. 자고 일어 난 어느 날 갑자기
10억, 100억이 생긴다면 나는 그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
돈을 감당한다는 것. 다룬다는 것은 늘 어려운 주제이지만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한 가지는 또렷하다.
내 그릇 이상의 돈은 담을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는 것.
많은 돈을 벌거나 유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에 걸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로 많은 돈을 감당하는 사람은 그만의 노하우, 노력, 보이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인데. 기름종이처럼 투명하게 공개된 지구인의 일상이 그 과정을 삭제한다. 모르겠고 일단 이 햇살 좋은 날 뚜껑 열고 달리는 슈퍼 카, 직장인 월급을 껑충 뛰어 넘는 가방을 몇 개씩 담은 주홍 쇼핑백, 쾌적한 여행지와 끝내주는 집에 사는 사람, 사람들을 손가락 몇 번 넘기는 것으로 수 천, 수 만명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내가 덮은 이불은, 꾀죄죄해 보이는 것이다.
비교는 그렇게 무섭다. 당장 오늘, 그 반열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대출, 카드론, 제 2, 3 금융권의 부지런함은 손쉽게 눈에 보이는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라고 부추긴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그 돈을 즉시, 라는 문구에 비해 매달, 아니, 매일 불어나는 이자에 대한 안내는 얼마나 깨알 같은가, 그 작은 글자를 읽고 있는 행위에서 느끼는 부끄러움과 백화점에서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화들짝 놀라 뛰쳐나오는 민망함이 잘못 학습된 탓임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른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것은 잘못되었다, 미래의 돈을 끌어다 오늘을 위해 쓰는 것은, 그것도 뭔가 생산적인 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작고 반짝이는 오늘의 욕망을 위해 쓰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소중한 교훈은 언제나, 더 큰 갈망 앞에서 우습게 바스러진다.
지금 규모에서 사람을 늘리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매주 부지런히 떨어지는 매출에 얼마 전 결혼기념일에는 남편 품에서 엉엉 울지 않았나. 이따금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짜 팀이 필요한 게 맞는 지.
사실은, 너무 외로워서. 누구라도 이 사무실 안에 함께 있어 주길 바라는 건 아닌지.
어제는, 이제 3명째가 된 상세페이지 선생님을 (직원이라는 말은 너무 수직적이라 도저히 입에 붙질 않는다.) 데려다 드리고 오는 길에 아주 푸르른 숲을 보았다. 조각 나지 않은 넓은 하늘과 푸르른 연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을 아깝게 바라보면서 언젠가 밑줄 쫙 그은 말을 되뇐다.
혼자서는 멀리 갈 수 없다.
나의 갈망은 내 생에 갈 수 있는 가장 높이, 멀리 가보는 것인데. 그 높고 먼 어드메를 혼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몇 번의 고꾸라짐 끝에 아프게 배웠고.
운 좋게 홀로 오른 등산에서 100억도 나오고 주홍 쇼핑백도 나온다 한들
그 산꼭대기 위에 백년 가게를, 무슨 수로 혼자 세울까.
다시 도착한 사무실에서 창문을 연다. 봄바람 끝에 꽃향기가 묻었다. 작년 이맘 때 대박을 쳤던 상품이 올해는 쪽박이다. 고로 내 봄은 작년에 비해 몹시 초라하다. 그래도, 삭막했던 사무실에 조명을 새로 달았고, 천정도 (반쪽이지만) 하얗게 다시 칠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짐들을 적재할 선반도 수두룩 빽빽 채웠고 책상 역시 6개나 붙여 두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없던 이 사무실에 이제는 세 사람이 함께 일한다.
이 사실만 생각하면 불안하고, 든든하고, 기쁘고, 무섭다.
입고 먹는 것, 들고 차는 것, 앉고 타는 것들에 대한 욕심을 내려 놓고 내려 놓아서 도리어 소비가 어색할 지경이라도. 아직 나는 돈이 필요한 이유가 많다.
로또는 안 사겠지만 손은 바쁘고 싶다.
돈벼락이 우르르 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