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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Jun 08. 2024

혼자서는 한 발도 못 간다 - 외부인력과 함께 일하기

 다른 사람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걸어가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혼자 냅다 달리는 게 낫지, 다리를 한 데 묶어 느릿느릿 달리는 이인삼각은 답답하지 않나. 학창 시절에도. 회사를 다닐 때도. 팀보다는 혼자가 낫다는 생각에 잔뜩 사로잡혀 있었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쇼핑몰을 시작하기 전에 – 일곱 개의 직업을 거치면서였다. 무엇을 하든, 언제나, 전체 일의 크기는 내 역량보다 훨씬 컸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해왔던 건 내가 대단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두 가지 일을 맡아온 덕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회사를 다니다 창업을 한 사람들의 생각은 퇴사한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한 가지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답장을 하고, 물건을 사고, 도착한 물건을 뜯고, 디자인하고, 홍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만나는, 팀을 이루어 해왔던 일들을 혼자 해야 하니까, 과부하가 오는 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게다가, 나는 내가 과신했던 것만큼 그렇게 육각형 인간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해야 하는 아주 많은 일들 중 한 두 개 – 라도 잘 해내면 다행인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한 발을 더 내딛고 싶었다.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진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맨 처음 손을 뻗었던 건 디자인 역량이었다. 정말 뛰어난 색감과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를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마침 소소한 부업을 찾는 중이었다. 나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서 도무지 그놈의 색감을 어떻게 짜야할지, 상세페이지는 또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제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도록 나열하는 건 하겠는데 이게 멋지게, 감성적으로, 디자인적으로! 보이게 하는 건 못하겠더라.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프리랜서 계약이 체결됐다. 그녀는 나로서는 도저히 못 찍을 멋진 사진과 아름다운 레이아웃으로 ‘백드롭 페인팅’ 상세페이지를 만들어 주었다. ‘꽃신 박스’도, ‘용돈 박스’도 그녀의 손에서 한층 더 멋들어진 제품으로 탈바꿈됐다. 6개월 정도 함께 일하면서 나는 어깨너머 그 유려한 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 전문가와 함께 일하는 건 그 사람의 역량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상세페이지가 멋있어지고(!) 예쁜 색감의 제품들이 나오다 보니 매출도 조금씩 올랐다. 함께 작업하면서 있어 보이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도 조금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계속 필요한 역할이다 보니 아예 자리를 만들어 팀 안에 이 일만 담당할 분을 모셨다. 그래도 필요한 게 아직 많았다. 광고 역시 그중 하나인데, 마음이 잘 통하는 담당자를 만나는 게 정말 어려웠다. 내가 바라는 건 너무 많고 쓸 수 있는 광고비는 적고. 적은 광고비로도 성심 성의껏 살펴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을 거쳐야 했다. 모든 사장님들이 그렇겠지만 처음 스토어를 개설하면 광고 전화가 무진장 많이 온다. “사장님, 검색 광고 하셔야 해요~” 로 시작되는 다채로운 전화들을 받을 때마다 우선 그들의 말 대로 다 해봤다. 특히 네이버 검색광고의 경우 전체 광고비에서 네이버가 한 달에 한 번 10% 페이백해주는 금액을 직접 운영하면 내가 받고, 아니면 대행사가 받는 식이다 보니 광고비 이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금액이 없어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맡겼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면 알게 된다. 처음 전화에서 한 말처럼 진심으로 우리 제품을 살펴주는지, 그냥 무수한 업체 중 하나가 더 필요했던 것인지. 후자라는 느낌이 들면 또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업체를 바꾸고, 또 전화를 받고, 바꾸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계속 트래킹 하지 않으면 잘 되고 있는지 아닌 지 판단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참 많이도 질문했다. 우리 전환율은 업계 평균 낮은 건지, 높은 건지,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광고비는 적정한 건지. 그렇게 묻고 또 물으면서 이 분들이 우리 제품의 광고를 관리해주기도 하지만 내가 네이버라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는 데 모르는 부분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직은 계속해서 바뀌고 바뀔 때마다 나오는 공지사항은 무진장 길고 네이버 상담원에게 물어보려면 엄청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해결 전화 한 통에, 한 달 광고비의 10%면 엄청 싼 거 아닌가? 소통이 잘 되고 운영에 문제가 없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대행사를 바꿀 일도 줄어들더라. 내가 하는 것보다 그들이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계속 들면 그냥 맡기는 것이고, 그 반대면 그만하면 된다.


 누군가와 함께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는 것보다 낫다’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알고 그 구덩이를 채워 줄 사람, 팀, 서비스를 찾아서 채우는 것이다. 내가 메우고 싶은 구덩이의 크기와 깊이를 모르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사실 그렇게 깊은 구덩이가 아닌데 초특급 전문가에게 손을 뻗어서 필요 이상의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것은 낭비다. 무진장 깊은 구덩이인데 적은 비용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일을 맡은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만 하게 된다. 둘 다 별로 유쾌한 경험이 아니니까, 내 문제를 제대로 진단해야 돈도 시간도 정신건강도 지킬 수 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 지 모르는 상태로 손을 뻗어서 나도, 상대방도 지치게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잘 모르겠고 지금 이 까만 바닥을 멋지게 바꾸고 싶다, 이런 두루뭉술한 계획에는 동참해 줄 사람도 없고 아주 착한 사람이 동참해 주어도 절대 ‘멋지게’ 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멋짐이 무엇인 지는 나 말고 아무도 모르니까. 최소한 하얀색으로 칠할 건지, 잔디를 깔 건지, 뭐 좀 정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어도 벌어지는 사고는 정확한 사람에게 요청하지 않을 때 벌어진다. 페인트를 칠하고 싶으면 페인트칠 전문가에게 물어야 하고 나무를 심고 싶으면 나무 전문가에게 가야 하는데, 대- 충 비슷해 보인다고 ‘알아서 잘해주세요’ 하면 절대 알아서 잘 되지 않더라. 일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들도 분명 있지만, 다섯 걸음 앞으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한 두 걸음에 대해서는 알아야 같이 걸어갈 수 있다. 이런 건 그냥 터득하면 좋겠는데 나는 꼭 경험하고, 후회하고 나서야 몸에 박힌다.

 그러니까 그 아픈 기억의 시작은 작년 여름이다. DIY키트 특성상 재료가 무진장 다양하다.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7~8개의 부자재가 들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니 우리가 발주하는 제품들의 전체 가짓수는 어마 무시하게 많다. 이 헷갈림을 정리하기 위해 재고관리 경력이 있는 분과 일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사이트와 상품들을 보시고 재고 관리 시스템을 짜주세요~ 정도로만 가이드를 드리고 맡겼는데 2달이 지나도 진척이 없었다. 나중에 엑셀시트를 받아보니 실무와 전혀 상관없는 정보들로 빼곡히, 아주 열심히 채워져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는 우리만 알고 있다. 나는 ‘우리 바닥 까만 거 보기 싫으니까 멋지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어떤 정보로 어떻게 정리해 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돈은 돈 대로 시간은 시간 대로 쓰고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할 템플릿도 얻지 못했으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제대로 된 사람에게 맡기기만 해도 많은 게 절약된다. 그런데, 원하는 것도 명확하고 제대로 된 사람에게 부탁도 했는데 허무한 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목적이 없는 경우다.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이유는 팬을 찾기 위해서다. 자사몰을 운영하는 이유도 진짜 우리 고객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가슴으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했다. 대행사에게 한 달에 몇십만 원 들여서 6개월 정도 운영하면 유명해지겠지, 자사몰 만들고 제품 꾸준히 올려서 광고 돌리면 멋진 브랜드가 되겠지. 브랜드가 뭔지, 고객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 꾸준한 경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1도 없이 수단만 찾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브랜드라는 것은 모호하기만 하다. 목적 없는 이벤트는 머리 없는 팔다리 같아서 결코 ‘멋진 세상’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또 아프게 배웠다.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하는 것과 팀 외부의 사람과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나보다 큰 역량’을 빌려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못한 사장과 일하고 싶어 하는 직원은 없다. 하지만 외부의 전문가들은 바로 그 자신보다 못한 사람, 기업을 기꺼이 돕기 위해 문을 열어 준다. 세상은 넓고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먼 길을 빨리, 더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어떤 길을 선택해서 어디로 갈 것인 지 결정해 줄 수 없다. 지도를 크게 그리고,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새로운 곳까지 이동할 수단을 현명하게 고르는 게,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잘 데리고,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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