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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Jun 22. 2024

양날의 검, 지원사업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예전에 문화예술교육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한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셨다.

“대한민국은 지원사업 공화국이에요!”

그만큼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도전해볼만한 지원사업이 많다는 이야기셨다. 꼭 그 분야만일까, 지자체, 중앙 정부, 크고 작은 재단과 기업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들이 한 해에만 몇 천개씩 쏟아지니 정말 대한민국은 지원사업 공화국이 맞는지도 모른다. (2024년 6월 기준 현재 진행중인 지원사업 공고는 3,3317개다. – 네이버 정책지원금 기준)


 지원사업을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선정될까’가 주를 이룬다. 특정 지원사업 선정 템플릿을 사고 팔거나 컨설팅 해주거나 심지어 대신 작성해주는 경우도 많단다. 물론 땅 파서 100원 한 장 안 나오는 시대에 ‘공짜 돈’ 몇 백, 몇 천만원이 생긴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다. 대부분 지원사업은 아주 필요하고 정말 도움이 되지만 때에 따라 오히려 시간만 잡아먹고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짚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참여했던 지원 사업들을 헤아려본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9기,11기, 하나소셜벤처 아카데미, GKL 소셜온, 디지털 바우처, 일자리 지원, 안전 인증, 상표권 지원, 크고 작은 지자체의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 통장을 개설해서 현금으로 직접 지급받는 사업도 있었고 특정 카테고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간접 사업들도 있었는데 금액으로 어림 잡아 1억 3천정도 되지 싶다. 100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정말 알뜰살뜰 참 애썼다. 그래도 그 때는 최선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것도 있더라. 참여했던 사업들을 돌아보며 지원사업을 신청하고 운영할 때 기억하면 좋을 점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이 지원사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대체 뭐지?

레이저 커팅기나 UV프린터기, 플로터 같은 기자재들을 구매한 건 제품을 다양하게, 빨리 만들어서 시장을 살피는데 아주 도움이 됐다. 인건비 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지금 당장의 회사 규모로는 추가 채용할 수 없는데 좋은 분과 일하게 해준 좋은 기회였고, 상표권, 안전 인증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 역시 3-400만원이 통으로 나가는 영역을 지원해 주다 보니 고맙기 그지없다. 이런 사업들은 우리 회사의 방향과 일치한다. 남쪽을 향해 가는 배에 불어오는 북풍과 같다. 올 해, 다음 해 필요한 것들의 리스트를 적어 보고 각각에 필요한 지원사업을 신청하면, 그 지원사업은 항상 북풍이 된다. 우리 회사에 필요한 게 뭔 지 모르겠지만 일단 돈부터 받고 보자,는 생각이나 사실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은 남쪽인데 북쪽인 척 해야 돈이 나올 것 같으니 그렇게 신청해 보자, 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선정 되더라도 고생길만 열린다. 가고 싶은 방향도 아닌데 돈 나오는 쪽 입장에 맞춰 움직인만큼 되돌아오는 시간이 더 길다.

 한여름 산들바람 같은 지원 사업을 만나기 위해서는 올해, 다음 해, 앞으로 우리가 뭘 할 건지를 두루뭉실하게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의 첫 지원 사업 목표는 ‘그냥 사업을 하고 싶음’ 이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어디로라도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는 무책임한 사장님을 가르치고 이끌어준 지원 기관에 참 감사한 마음이다. 많은 멘토링과 다른 기업의 모습을 보며 왼쪽 손 들면 나도 따라 들고, 오른쪽으로 가면 방향을 틀면서 삐걱 삐걱 회사의 모양을 갖춰갔지만 사실 모양만 있고 실제는 없었다. 실제 돈을 버는 능력이 없었다는 소리다. 동아리 지원사업이 아닌 경우 에야 사업의 첫 째 목적은 수익활동이다. 지원 사업 역시 수익 활동을 위한 좋은 도구여야 하지 지원 사업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4천 만원 가까운 돈을 지원받고 감히 만나기도 힘든 분들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1년을 보냈는데 창업 첫 해 실적은 참혹했다. 1천 만원도 안되는, 수익도 아니고 매출. (연 매출이다!) 비즈니스 모델도 변변치 않은데 이제 월세도 직접 벌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비로소 지금껏 사용한 예산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요즘은 무자본 창업이라는 말도 많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사업은, 좀 더 쉽게 장사는, 돈을 놓고 더 큰 돈을 버는 일이라는 설명이 더 와 닿는다. 그렇다면 큰 예산을 투여한 기업은 최소한 그 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 지원금, 이라는 호주머니 바깥의 돈을 수익, 이라는 지갑 속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나의 첫 번째 지원사업은 들인 돈의 반의 반도 벌어들이지 못했을까?


2.  지금 이 사업은 수익에 어떻게 도움이 되지?

 첫 번째 지원사업 후 나에게 남은 2가지는 ‘수업 프로그램’과 ‘공방’ 이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돈을 벌어야 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맞은 새 해에 코로나가 왔다.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싼 돈 주고 만든 프로그램을 팔 수 있는 방법은 온라인뿐이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벌었다. 공방에서는 많아야 10명 남짓 수업을 할 수 있었는데 인터넷 바다에서는 200명도 함께 그림을 그렸다. 두 번째 해 매출은 작년 보다 쑥쑥 성장해서 10배 가량 늘었다. 첫 해 매출이 워낙 적었던 것도 있지만 1년을 갈아 만든 프로그램이 좋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많은 수업을 하고, 수업 관련 키트를 판매할 수 있었을까. 대구까지 내려가서 전문가를 모시고, 6개월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 보고서까지 쓰면서 난리를 친 ‘검증된 프로그램’을 들고 나간 덕분에 첫 해에는 바꾸지 못한 돈을 통장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원 사업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도 그렇지 않을까. 좋은 아이템 –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 돈으로 잘 만들어서 세상에 도움이 되라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만큼 호주머니도 두둑해질 테니.    

 그렇다면 좋은 아이템은 어떻게 만들까. 사람들의 필요를 듣고 만든다. 사람들을 만나고, 모으는 데에도 돈이 든다. 아이템이 결정되기 전이라면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듣는 (설문조사, FGI) 데에 쓰는 돈 역시 지원사업을 통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광고나 패키지, 디자인은 맨 나중이다. 고객 - 제품/서비스 - 홍보의 역순이 되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 서비스를 아주 열심히 만들게 된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은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


3.   좀 더 효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명확한 목표를 두고 방향에 맞는 지원 사업에 참여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증빙의 시간’이다. 국민 모두가 피땀 흘려 번 돈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만큼 별 요상한 곳에 돈이 흘러가지 않도록 증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 이 작업이 사업 이외의 시간을 퍽 많이 잡아먹게 된다면 문제다. 그래서 지원 사업에 참여할 때는 항상 이 질문을 되뇌게 된다.

‘이게 최선인가? 더 ‘크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전에 지원사업을 통해 재료를 종류별로 다양하게 산다고 자잘자잘하게 썼다가 영수증만 100여개를 모아 제출해야 했던 적이 있다. 세상에, 그 영수증을 하나하나 복사 붙여넣기, 출력하는 내 시간이나, 그 걸 검사하는 지원 기관의 시간이나 모두 아깝다. 지원금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지원 사업이 아니면 도전해보지 못할 일에 크게 사용하는 편이 낫다. 두고두고 자산이 되어줄 기자재를 사거나, 나와 우리 팀의 자산이 되어줄 멘토링을 받거나 콜라보에 사용하거나,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광고를 하거나, 몽땅 상품 개발에 쓰거나. 예산을 한 번에 크게 사용하면서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증빙의 시간도 줄어들고 아깝지 않다.


4.   ‘예산’ 이외에 내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뭐가 있지?

 지원사업을 지원금과 동의어로 사용하기에는 좀 아깝다. 그 안에 담긴 인프라가 너무 많다. 하나의 커뮤니티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이기도 하고, 더 크고 넓은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같이 선정된 사람들과 콜라보를 하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하고, 선배 기업을들 소개받으면서 엄지손가락만하던 생각을 손바닥만큼은 넓힐 수 있다. 내가 아는 방법 말고도 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그 걸 실제로 해내는 사람도 정말 많은데 그 노하우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지원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참여 팀 뿐 아니라 기관과 연결되는 기회도 많다.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주체, 유관 기관들에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어필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잘 사용하기만 하면 참 좋은 브릿지다.


 결론적으로 지원사업은 참 좋은 칼이다. 잘 쓰면 맛있는 요리가 되고 못 쓰면 내 손만 다친다. 내가 세운 기준은 시간과 돈인데, 하고 싶고 해야할 일들이 폭포수같아서 24시간이 모자랄 때는 증빙 받고 기타 등등 처리할 것이 많은 지원사업보다 나와 팀의 힘으로 헤쳐나가는 게 낫고, 여기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자본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올 때는 지원사업이 필요하다. 내 경험상 그렇게 우리의 단계와 방향에 꼭 알맞은 지원사업은 선정될 확률도 높았다.

 최근에는 어린이 안전인증 지원과 인건비 지원을 받고 있다. 금액의 크기와 사용 범위는 좁지만 준비해야 할 서류와 시간 사용이 적다. 내부적으로 다져야할 것들이 많아서 뭘 많이 준비하고 적어야하는 사업은 엄두가 안 난다. 끊임없는 돈과 시간의 싸움이다.

 무수히 많은 할 일의 바다 속에서 힘을 덜어줄 지원 사업을 현명히 찾아내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지원사업이 필요없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오늘, 숫자를 셈하며 한숨을 내쉬어도 작년보다 나은 올 해와 내년을 기대하면서 주어진 일을 한다. 그렇게 충실한 하루가 쌓여

세상의 모든 회사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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