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퇴근해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070으로 시작했으면 안 받았을 텐데 010으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라 혹시 주차 때문에 전화가 왔나, 해서 조심스럽게 받았다가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000 부동산입니다. 오늘 저녁 8시 반쯤 집을 보러 오신다는 분이 계신데 괜찮으세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나는 직장 때문에 타지로 이사를 하면서 3년을 살고 다시 고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계약할 때 비록 2년 전세계약을 하긴 했지만 집주인분이 3년을 살아도 된다고 했고, 계약기간 만료가 딱 두 달 남았는데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묵시적 전세계약 갱신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을 보러 온다니!
"네? 부동산이요? 저는 집주인한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는데요?"
그러자 부동산에서는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내놨다며, 자기가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확인을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부동산 소장님의 전화를 끊고, 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매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며, 계약종료 기간이 1월 31일까지이니 그때까지 집을 알아보시라고,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하다고 하셨다.
주말 저녁 평온했던 마음이 와장창 깨지며 급격히 혼란스러웠다. 바로 2시간 후 우리 집에는 50대의 중년 아주머니께서 아까 나에게 전화한 부동산 소장님과 함께 집을보러 오셨다. 애써 평정심을 지키며 집을 보여드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겨우 잠을 청했다.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하는 사람인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아이의 어깨를 꼭 안고, 눈앞에 주어진 상황을 잘 해결해 나가리라 생각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데 1년간 출퇴근을 하더라도 친정부모님이 계시는 내가 살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1년 뒤에 고향으로 가야 하는데 미리 집을 사놓는 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이사 갈만한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조건에 맞는 집을 볼 수 있는지 물어봤다. 부동산에서는 세 개 정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바로 그날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에 타지에서 친해진 두 명의 언니 선생님들을 만나 집을 갑자기 이사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더니 언니들은 나에게 따뜻한 커피를 사주시고 다독여주시며 이 상황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으니 마음 편히 가지고 먼 길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셨다. 바들바들 떨렸던 마음이 언니들의 포근한 위로에 한결 차분해졌다.
결연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가면서 나와 같은 지역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먼저 돌아간 선배 L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대해이야기를 하고, 혹시 시간되시면 집 보고 나서 연락드릴테니 커피라도 한 잔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부동산에 대해 잘 아는 친구와도 통화를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처음에 전화한 L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혼자 집을 보러 가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같이 가준다는 연락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호의에 너무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막막했는데 이렇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언니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부동산에 대해 잘 아는 타지에 사는 친구도 나에게 전화해서 다음번에 집 보러 갈 때는 자기가 같이 가주겠다며, 조건에 맞는 집을 '함께' 찾아보자고 말해주었다.
내가 모은 자금 현황을 듣더니 그 정도나 모았으면 대출 좀 받아서 좋은 집을 살 수 있겠다고,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1년간 출퇴근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 수 있으니 이사를 2번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라고 다양한 시각에서 진심 어린 조언도 해주었다.
6년 전 대출받을 때 친해진 은행에서 근무하는 언니께도 연락을 드렸더니 오랜만의 연락임에도 따뜻하게 받아주시며, 월요일에 은행에 가서 계약기간까지 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봐 주겠다고 하셨다.
은행에서 일하는 언니는 제일 중요한 건 나와 아이의 편안함이니 우선 집주인에게 계약을 연장할 수 없는지 한 번 더 말해보라고, 1년 출퇴근하면서 아이를 챙기기는 힘들지 않겠냐고 살뜰히 걱정해 주셨다.
임대차보호법이 있으니 이렇게 너무 급박하게 집을 내놓은 것은 그쪽 과실이 있을 수도 있다고도 이야기해 주셨다.
카톡과 전화로 나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친구들과 언니들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는 참 주변에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났다.
두렵고 막막했던 순간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함께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인생이 늘 내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며 또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미션 같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