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 띄워주기' 놀이에 빠졌다. 쉬는 시간에 내가 연구실에서 회의를 하거나 수업준비를 하고 교실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바른 자세로 교과서를 펴고 앉아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칭찬 샤워를 시작한다.
어제는 우리 반 개구쟁이 준이가 시작했다.
"선생님, 불 좀 꺼주세요!"
"응? 수업해야 되는데 불을 왜 꺼?"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선생님 미모에서 빛이 나서 너무 눈이 부시잖아요!"
준이가 큰 소리로 외치고 아이들이 와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맞아요! 너무 눈부셔요!", "선생님 절대적으로 아름다우세요!" 하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주책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절제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하하하하. 얘들아, 이제 그만해. 요즘 선생님이 1년간 너희를 너무 세뇌시킨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 정도야.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 때만 얘기해 줘. 진심으로! 선생님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것 같아. "
"어? 선생님, 배 아픈 거 괜찮으세요? 저희는 늘 진심인데 너무하세요."
맨 앞에 앉아있던 부반장이 짐짓 심각한 척을 하며 연기톤으로 대답했다.
맙소사, 내가 졌다.
"이야.. 선생님이 올해 너희들의 사회성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구나. 너희들은 크게 성공할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사회성이라뇨! 정말 진심이라니까요? 저희들을오해하지 말아주세요!"
... 어마어마하다.
며칠 전, 상담 선생님께서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1시간씩 아동 정서 지원 프로젝트 수업을 해주셨다. 나에게 감사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크리스마스 키링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내가 아이들이었어도 당연히 부모님께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두 명의 아이가 나에게 편지를 써왔다.
우리 반 공식 선비, 모범생 완이가 쓴 편지는 선생님께서 일 년간 엄마처럼 돌봐주시고 유쾌한 입담으로 매일 웃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내년에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부반장 원이가 쓴 편지는 항상 올바르고 즐겁게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스승의 날도, 종업식 날도 아닌데 이렇게 편지를 써준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나도 답장과 함께 작은 학용품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행복을 준 것처럼 나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간직될 수 있기를...
얼마 전에는 친하게 지내는 동학년 경이 언니가 타지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해서 배웅하러 언니의 교실 앞에 갔더니 언니가 나에게 예쁜 무지개 물고기 키링을 선물로 주었다.
내가 줘도 모자라는데.. 항상 베풀려고 하는 따뜻한 언니에게 감사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잘 다녀오라고, 다 잘될 거라고 꼭 안아주고 밝은 얼굴로 배웅했다.
나는 언니가 버스를 타는 시간에 알람을 맞춰놨다가, 검사 끝나고 사부님과 따뜻한 토피넛라떼라도 달달하게 함께 하고 오라고 스타벅스 쿠폰을 보냈다.
언니는 역시 언니답게 씩씩하게, 잘 다녀왔다. 나는 따뜻하고 씩씩하고 담백하고 진솔한 경이 언니가 너무 좋다.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로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밤이 지나고 계엄 해제가 된 날, 지난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 있는 카톡방에 예쁜 일출 사진이 올라왔다.
우리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일출을 보며 출근하고 있다는 선배언니의 카톡을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잔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가,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날, 집주인에게 전화가 와서 전세계약을 연장해서 1년 더 살고 내년 말에 이사를 해도 된다는 전화가 와서 나에겐 더 기쁜 날이었다. 주거 고민이 해결되니 너무 행복해서 이 날 아들과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밤 10시까지 기쁜 마음으로 우리만의 축제를 즐겼다.
전 날에는학교에서 오해가 있어 며칠간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동료 선생님을 방과 후에 우리 교실로 초대해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오해를 풀었더니 마음이훨씬 더 편안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내 마음도 불편하고 힘들어진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이 결국은 나를 평온하게 한다.
어제 퇴근 전에는 절친한 옆반 희언니가 버스를 타고 유치원 하원하는 아이를 학교 앞에서 받아 데려오면서 따뜻한 붕어빵을 사다 주었다.
점심 먹고 내가 "아~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다. 오늘 저녁에 사 먹어야지!" 하는 말을 듣고 사 온 것이다. 지나가는 말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나를 생각해 준 언니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경이언니도 불러서 함께 붕어빵을 나눠 먹으며 희언니 아들을 내 무릎에 앉히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가치인지 늘 기억해야지.